[책과 영화에 기대어 쓰다] 영화 <아무르>, 여전히 ‘사랑’ 인 이유
조발성 치매에 걸린 의사였던 남편에 대한 19년간의 간병 기록인 ‘낯선 이와 느린 춤을'(메릴 코머 저) 은 “나와 한집에 사는 이 남자는 내가 사랑해서 결혼했던 그 사람이 아니다”란 말로 시작된다. 사랑해서 결혼했던 나의 반쪽이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을 속수무책 바라봐야 하는 심정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흔히 치매라고 알려져 있는 병의 대부분은 알츠하이머병을 일컫는다. 늘 사용하던 어휘가 기억나지 않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사소한 것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중요한 일을 잊어버려 일상생활이 점차 망가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치매는 우리 자신을 다른 누군가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에서 슬프고 무서운 병이다. 최근 연구결과에서 알츠하이머의 병의 87%에서 우울 증상이 동반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기억력이 사라지고 생활 전반에 걸친 능력이 하나 둘 상실되면서 결국은 존재 자체가 상실되는 경험을 하는 치매환자의 경우 우울은 당연히 동반되는 증상인지 모른다. 어쩌면 환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시선이 더 견디기 힘든 건 아닐까?

살아보지 않은 나이를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아무르>는 그 상상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메워준다. 생의 종착역은 죽음이다. 그리고 종착역에 이르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화와 질병을 동반한 고통스러운 간이역을 통과해야 한다.

음악가로 은퇴 후 파리에서 조용한 삶을 영위하던 조르주와 안느 부부. 어느 날 집안에 도둑이 들고 예고 없이 찾아온 도둑처럼 평온한 일상 속으로 불청객이 방문한다. 안느의 발병과 수술 실패, 반신불수가 된 아내를 홀로 돌봐야 하는 조르주의 삶은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한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안느 역시 존엄이 손상당하는 수치심으로 괴로워한다.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는 안느를 위해 묵묵히 병수발을 들고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주며 애쓰는 조르주. 그는 평소 아내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병세가 깊어진 아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몸조차 가두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해 손찌검을 하고 만다. 이쯤 되면 이제 조르주를 두렵게 하는 것은 안느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도 할 것이다. 두 노인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설상가상으로 딸은 엄마를 왜 병원에 모시지 않냐고 불평만 한다. 조르주와 안느가 처한 개별적인 상황은 가장 가까운 피붙이인 딸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냉혹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우리는 쉽게 타인의 삶을 판단하려 하지만 어떤 것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이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수고로움을 감내할 때만이 우리는 겨우 일 할의 진실에 다다 갈 수 있을 뿐이다. ‘죽음’은 언제나 개별적으로만 존재한다. 개별 자아의 죽음 속에는 보편성이 없고 일반화 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도 정확히 동일한 상황에 처할 수 없고, 오로지 그 상황 속에서만 이해되고 가능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들 자신 외에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삶’ 이란 그런 것이다.

​마침내 조르주는 아내를 위해, 자신을 위해, 혹은 사랑을 위해 ‘그 일’을 결행한다. 그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냐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노부부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룬 영화의 제목이 여전히 ‘사랑(아무르)’인 이유다. 영화의 마지막, 조르주는 아프기 전 생기 있는 모습의 안느와 함께 집을 나선다. 죽음 후에도 영혼의 동반자로서 함께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는 그렇게 음악도 없이, 어떤 설명도 없이 갑자기 끝난다. 마치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 길고 힘들었던 병과의 사투를 끝내고 마침내 ‘죽음’으로 사랑을 완성하는 두 사람. ‘죽음’을 택한 조르주의 선택은 삶을 포기하는 의미의 죽음이 아니다. 경계를 뛰어넘는 죽음, 사랑의 완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영화 속에서 한 번도 끝까지 이어지지 않던 음악처럼 노부부의 인생 시계는 어느 순간 멈추고 말았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딸이 검은 옷을 입은 채 부모님이 앉았던 의자에 망연자실 앉아 있다. 마치 다음 순서는 자신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듯. 이제 그녀에게도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책과 영화에 기대어 쓰다] 영화 <아무르>, 여전히 ‘사랑’ 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