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지금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 프롤로그>

과학적 발달로 생활은 훨씬 편리해졌고, 물질적으로도 더욱 풍요로워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지만, 마음속엔 항상 채워지지 않는 상대적 결핍과 복잡한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으로 정신적 고민이 가득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같은 무서운 질병에 걸려 기억이 사라진다면, 지금의 고민은 스스로의 존재감을 인식할 수 있는 행복한 증거이기도 할것이다. 영화(스틸 앨리스, Still Alice,2015)를 통해서 여전히 당신이라는 고귀한 존재감이 있을 때, 도전하고 베풀고 사랑을 실천해 보자.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지금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 영화줄거리 요약>

미국 명문 콜롬비아대학의 존경받는 언어학 교수이자, 세 아이의 엄마, 그리고 사랑받는 아내로 행복한 삶을 살던 “앨리스 하울랜드(줄리안 무어 분)”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강의 도중 익숙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조깅을 하던 중 정신이 멍해져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매일매일 해왔던 평범한 음식 조리도 애써 기억해 내야만 레시피가 생각날 정도이다. 찾아간 병원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 결과가 나온다, 바로 “조발성 알츠하이머” 즉 50세라는 젊은 나이에 찾아온 불치의 기억상실 유전병이다.
가족들은 갑자기 닥친 그녀의 불행을, 배려라는 명목으로 그녀를 점점 외톨이로 만들게 된다. 반면, 평소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둘째 딸은 평소와 다름없이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면서 앨리스를 발병 전의 엄마로 평범하게 대해준다. 다른 가족들처럼 무조건적인 배려와 친절보다, 둘째 딸의 평소와 같은 케어는 앨리스에게 스스로를 정리할 시간을 찾게 해 준다. 어느 날 알츠하이머 협회에서 특별강사로 초대되어 연설을 하게 된 앨리스는 딸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의 충고대로 3일간 준비한 현학적이고 딱딱한 연설문 대신 그냥 그녀 자신의 투병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게 된다. “제가 고통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전 애쓰고 있습니다(I am not suffering, I am struggling).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죠.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순간을 사는 것과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상실의 기술을 배우라고 스스로를 밀어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한때 사회적, 가정적으로 완벽했던 앨리스 교수의 솔직한 연설에 많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큰 감동과 위안을 받게 된다.
마침내 집안의 화장실도 신속히 찾지 못해 옷에 실수를 하게 되는 등 점점 앨리스의 증세가 심해지자, 가족들도 자신의 삶의 길로 떠나버리고 (의대교수인 남편은 새로운 직장을 찾아 미네소타로 떠나고, 첫째 딸도 자신이 낳은 쌍둥이 육아에 전념하게 된다) 평소, 가장 애를 먹이던 둘째 딸이 앨리스의 곁에서 투병생활을 묵묵히 돕게 된다.
이 영화는 슬픔과 안타까움보다는 기억이 사라져 가는 자신에 대해 고민하며 병과 싸워가는 앨리스의 투병 스토리를 통해, 우리들도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시간을 준다. 또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수 있는 시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재감과 존엄성 유지에 소중한 의미가 됨을 생각하게 한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지금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 관전포인트>

A.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협회에서 연설할 때 실수하지 않기 위해 취한 행동은?
“얼마 후면 모두 잊혀질 자신의 연설이지만, 모든 걸 잃고 기억은 없어져도 나는 예전의 내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앨리스는 연설문의 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형광펜으로 한 줄 한 줄 덧 칠하면서 연설을 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본 청중들은 한때 최고의 석학이던 앨리스의 현실적 애환과 투지에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B. 마지막까지 앨리스의 곁에서 케어해주게 되는 사람은?
평소 엄마의 바람대로 사회적으로 명문대학을 나와서 훌륭하게 성장한 큰딸과 아들과는 달리, 둘째 딸 리디아는 대학 진학보다는 고집스럽게 자신이 하고 싶은 연극배우일을 배우며 삶을 가꾸어 간다. 그런 점에서 결국 엄마 앨리스와 가장 닮은 열정과 순수성을 지닌 딸이라고 할 수 있다. 앨리스의 병이 깊어지자 아버지는 자신의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게 되지만, 리디아는 자신이 애써 일군 LA스튜디오의 일을 접고 뉴욕의 엄마 곁으로 와서 끝까지 엄마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게 된다.

C.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후 가장 두려워한 것은?
보호자 전화번호가 적힌 “기억상실자”라는 팔찌를 차게 된 앨리스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행복한 추억,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까지도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앨리스는 “남편을 처음 만난 그날 밤, 제가 쓴 첫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아이를 가졌을 때, 친구를 사귀었을 때, 세계여행을 했을 때, 제가 평생 쌓아온 기억과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이제 모두 사라져 갑니다.”라며  두려워한다.
우리도 스스로가 알츠하이머 같은 무서운 질병에 걸려 기억이 사라질 수도 있음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병에 걸려 나와의 기억들을 잃어가는 상황일때도 큰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지금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 에필로그>

영화 (스틸 앨리스 Still Alice)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가정적으로도 행복했던 사람도, 한순간 알츠하이머 같은 질병으로 평생을 쌓아온 지적 업적과 행복했던 추억조차 모두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면서, 우리는 평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기억들과 함께 작지만 주어진 소중한 선물들을 즐기고 아낌없이 나누면서 살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여전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도전해 나가는 “나 자신”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최근 탈렌트 김혜자씨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할머니로 열연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 에서 했던 마지막 감동적 대사를 떠올려
본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