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담의 삶삶한 글씨] '처음의 충동'과 '후반의 처리'


안녕하세요. ‘드림그래퍼 스담’입니다.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 소식의 아쉬움과,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한 3.1절을 기념하며
‘평화’를 생각해보게 되는 한주입니다.


지난 칼럼 중에 시각적 긴장감을 주는 글꼴의 형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오늘은 붓과 먹물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볼까 해요.
잘 읽히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새로운 글씨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버트도드슨(Bert Dodson)은 ‘처음의 충동’과 ‘후반의 처리’를
구분하는 것이 창작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하였습니다.
전자는 ‘생성’이고, 후자는 ‘변형’인 것인데요,
처음에 썼던 글씨를 여러 번 고쳐 써보며, 글꼴을 실험하고
글씨의 원형을 여러번 변형하며 보다 새롭고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로
만드는 과정이 창의적인 글씨를 만들어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방법을 얘기해볼까요?


글꼴은 흩어지지 않고 밀집되어 있어야 하고,
단어와 문장은 한 무리로 보여야 합니다.
자간과 행간에 불필요한 여백이 판독성을 해치지 않아야 하는데요,
그렇다고 한 개의 글꼴 안에서 결구를 지나치게 붙여 쓰거나,
자간, 행간이 붙어 있어서 읽히는 데 무리가 가지 않아야 합니다.
자간 사이가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시각적 바이브레이션’은 좋지 않습니다.
로고타입의 경우 쓰고 난 뒤에 멀리서 보며 확인하거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작게 보며 확인하는 것이 좋답니다.
그렇게 볼 때 잘 읽혀지고, 글씨의 먹 부분과 여백의 중량감이
고르게 분포 되어 있다면 최적의 글씨입니다.

[스담의 삶삶한 글씨] '처음의 충동'과 '후반의 처리'

방송 타이틀의 경우는 초 단위로 글씨가 보이기 때문에 가독성이 중요한데요,
포토샵으로 글씨의 자간, 두께 조정을 하기도 하지만
초안에서 완성도 있는 글씨를 완성 후 CG 작업은 최소화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보는 사람이 편안한 글씨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예요.

[스담의 삶삶한 글씨] '처음의 충동'과 '후반의 처리'

적당한 글자 간격을 위해서는 적당한 종이의 선택도 중요하답니다.
화선지를 구입할 때 번짐이 많은 화선지와 번짐이 적은 화선지가 있으니
강하고 날렵한 글씨를 쓸 때에는 번짐이 적은 화선지를 선택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글씨를 쓸 경우 번짐이 많은 화선지를 선택하세요.
작품지는 연습지보다 가격이 다소 높지만,
먹의 번짐이 균일하게 퍼져서 자잘한 글씨를 쓸 때 특히 좋습니다.
처음 연습하실 때는 4분의 1절지를 구입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4분의 1절지는 70*35cm 크기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책상에 펼쳐 놓기에 부담 없는 크기랍니다.


상황에 맞는 화선지를 정했다면
첫째, 붓에 먹물을 묻히는 양을 달리하여, 화선지에서 먹물이
어느 정도로 번져 나가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둘째, 필압(筆壓)에 집중해야 하는데 붓을 누르는 힘에 따라서
선의 굵기가 틀려지니 여러 필압으로 선을 그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완급과 지속(緩急, 遲速)을 익히는 것인데요.
붓이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선의 굵기가 틀려지므로
적당한 선의 굵기와 여백의 크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먹물을 묻히고 첫 획을 그릴 때에 속도가 완만하면 번짐이 크고,
먹물이 거의 없을 때 글씨의 종성을 마무리를 해야 한다면
속도를 늦춰서 쓰는 것이 좋아요.
붓에 먹물이 거의 빠져나갔다고 한 개의 글자를 쓸 때 먹물을
여러 번 찍는 것은 글씨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판독성을 고려하면서도 글씨에
시각적 긴장감을 주는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글꼴의 강약에 대한 ‘형태적 요소’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 차례의 변형을 통해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글씨가 나와야 하고,
그것이 흔히 보던 글씨체가 아니라 조금 낯선 형태라면 더 좋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글꼴의 요소인 초,중,종성 간의 대비를
약간은 과장되게 표현해 보는 것도 좋고,
자·모음의 형태를 다소 왜곡해서 써 보는 것도 좋아요.
기존에 글꼴을 쓰는 순서와 반대로 쓰는 방법도 좋답니다.
자유롭게 쓰지만 장난스러운 시도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담의 삶삶한 글씨] '처음의 충동'과 '후반의 처리'

글씨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비하면 다소 ‘즉흥성’을 가지고 있어요.
빠른 시간 안에 결구의 강약을 표현해야 하지만,
붓글씨의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좋은 글씨를 쓸 수 없어요.
‘급한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것’이 캘리그라피의 모태인
서예(書藝) 정신이기도 하니까요.
일본에서 서예를 ‘서도(書道, しょどう)’라고 하여
정신적인 깊이와 수양을 의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글씨를 쓸 때 느끼는 몰입감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가져온답니다.

[스담의 삶삶한 글씨] '처음의 충동'과 '후반의 처리'

글꼴의 요소 중 특정 부분을 그림으로 장식하는 방법은
입문 당시에는 재미있게 응용해 볼 수 있는 방법이지만,
프로페셔널하게 보이지는 않아요.
글씨 주변에 먹그림을 그리고자 할 경우에는
그림이 글씨를 누르지 않도록 아주 간결하게 그리는 것이 좋습니다.
점, 선, 먹의 패턴도 캘리그라피와 잘 어울립니다.


하얀 여백의 종이 앞에 붓을 들고 있을 때
작가들은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설레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초월하는 평화를 느끼기도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무에서 유’를 만들어갈 테니까요.


 오늘 하루도 작은 것에 기뻐하고, 의미를 둔다면
행복한 하루가 되실 거라 믿습니다.
다음 칼럼에서 또 만나요^^


한경닷컴 칼럼리스트 스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