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와 행동경제학
총무와 행동경제학
행동 경제학의 주창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다는 것을 ‘제한된 합리성 (bounded rarionality)’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이먼은 경제학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인간을 연구해야 하며 최적화 원리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선택한다는 만족화 원리에 입각하는 것이 맞다는 절차적 합리성도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의사 결정에 있어서 주류 경제학이 철저히 무시하는 감정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 심리학자들은 감정이 없으면 적절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심리학자 조너던 라이트는 ‘감정이 머리이고, 합리성은 꼬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할 정도이다. (김민주의 경제법칙 101 중에서)

동창회, 동호회, 향우회, 군대 모임 등이나 회사의 야구 동아리, 축구 동아리, 등산 동아리 같은 비공식 모임은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비즈니스적 마인드를 갖고 모이지 않는다. 때로는 비즈니스와은 완전히 거꾸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합리적이지 않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어떤 사람은 그 모임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의 많은 것을 기여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내 친구가 자주 나가는 등산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는 정회원과 일반 회원이 있다. 이 정회원들이 그렇다. 정회원은 연간 회비를 몇십만 원을 낸다. 일반 회원들은 매 번 모일 때마다 등산 일정에 따라 3-5만 원을 낸다. 이 비용은 정회원도 낸다. 그러니 정회원들은 일반 회원보다 더 많은 의무를 지니며, 일반 회원보다 더 많은 권리나 특권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 뭐, 연말에 정회원 회의에 참석하여 몇 가지 의결할 수 있을 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왜 그런 불이익을 스스로 감당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가보면 그냥 그 모임이 좋아서, 그 등산모임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더 많은 비용을 내고, 더 자주 참가하려고 애쓴다. 사내 동아리 모임도 그렇다. 다른 곳에서 하는 모임에 나가기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고,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참가하는 쉬운 마음에 사내 동아리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사내 동아리를 회사의 업무조직과 똑같다고 생각하며 참가하는 사람은 오히려 동아리 적응을 잘못하곤 한다. 사내에서 부장님이라고 해서 반드시 동아리에서도 부장님의 위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과장이나 대리급이 사내 동아리의 중심인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의 3대 모임이라는 호남향우회, 고대동문회, 해병대 전우회도 왜 그 사람들이 모이는지를 설명하려면 합리성만으로는 어렵다. 호남에서 태어나거나 부모님이 호남사람은 적어도 1,000만 명은 된다. 그 1,000만 명이 단지 비슷한 동네라고 해서 향우회 모임을 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고대 동문회도 그렇다. 대학은 고등학교처럼 나이나 입학 연도로 서열을 따지기 어렵다. 재수, 삼수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1년에 4,000여 명, 총 1,6000여 명이 한 학교에 다닌다. 같이 다니면서 얼굴도 못 보는 게 당연하다. 나이도 들쑥날쑥하고, 살던 동네도 전혀 다르고, 얼굴도 못 본 사람들이 고대라는 이름으로 뭉친다. 해병대 전우회는 더하다. 군대에서 서로 앙숙일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제대하고 누가 자기가 있던 군대를 좋아하겠나? 그런데 해병대는 제대하고도 군복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참 요상하다.

이처럼 총무가 참여하는 모임은 합리성이 많이 배제되는 모임이다. 그런 모임의 회원들과 부대끼면서 그들이 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리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누군가가 합리성을 주장한다면, 그는 그 모임에서 ‘자기를 알아 달라’고 소리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총무의 행동 강령은 ‘꽤 적당히’, ‘아주 그럴듯하게’, ‘거의 대충’이다. 총무는 적당히 합리적이고, 적당히 감정적이어야 한다. 총무를 하다 보면 행동 경제학이 내 경험에 비추어 쏙쏙 들어온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