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계절의 저녁

                                 빅토르 위고




지금은 해질녘

나는 문간에 앉아

일터의 마지막을 비추는

순간을 보고 있네.



남루한 옷을 걸친 한 노인이

밤이슬 젖은 땅에

미래의 수확을 한줌 가득 뿌리는 것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네.



그의 크고 검은 그림자가

이 넓은 밭을 가득 채우니

그가 계절의 소중함을 얼마나 깊게

생각하는지 알겠네.



농부는 드넓은 들판을

오가며 더욱 멀리 씨를 뿌리고

손을 폈다가는 다시 시작하고

나는 숨어서 혼자 지켜보네.



떠들썩한 소리 들려오는 저 그림자가

장막의 깃을 펴며

별나라에까지 이르는 것 같아서

씨 뿌리는 이의 장엄한 모습을 오래 바라보네.



밀레의 그림 ‘만종’을 떠올리게 하는 시다. 수확과 파종의 이중 이미지를 한 폭의 풍경화에 응축해 내는 시인의 눈빛이 깊고 그윽하다.

빅토르 위고(1802~1885)는 우리에게 《노트르담의 꼽추》 《레 미제라블》 등을 쓴 소설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는 불문학사를 통틀어 프랑스인이 제일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설문조사 결과 우화시인 라 퐁텐과 공동 1위로 뽑혔다. 위고의 작품들은 낭만적이고 장중하다. 그만큼 그의 인생도 파란만장했다.

파리 시내 보주 광장 남쪽 건물에 그가 살던 집이 있다. 그가 서른 살 때부터 마흔여섯 살 때까지 중년의 황금기를 보내며 수많은 고전 명작을 낳은 산실이다. 50년 동안 이어진 연인 쥘리에트 드루에와의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 무대도 여기다.

이 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큰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응접실이다. 오리엔트 문화에 깊이 빠졌던 위고의 취향을 반영하듯 중국풍의 도자기와 당초문양이 그려진 접시, 동양화로 장식된 가구들이 가득 전시돼 있다. 그에게 동방은 낭만적 상상력의 원천이기도 했다. 《동방시집》 서문에서 ‘시의 또 다른 바다인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중세시대처럼 위대하고 호화롭고 풍요롭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드루에가 위고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해 만든 나무책상도 있다. 잉크병 놓는 자리가 옴폭하게 파여 있고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펼칠 수 있도록 아주 넓다. 책상을 선물 받은 시인은 통나무에 옷장 문을 직접 조각해 그녀에게 화답했다고 한다.

위고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구차에 실려 무덤으로 가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파리 시내를 가득 메운 200만 명의 조문객이 거장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의 말처럼 아직도 ‘삶은 미완의 문장’이다. 파리 센강 건너 그가 묻힌 팡테옹 지붕 위로 긴 노을이 진다. ‘씨 뿌리는 계절의 저녁’처럼 고즈넉하면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