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진심이 의심받으면 목소리를 높인다. 거짓을 참으로 포장하려는 자도 목소리를 키운다. 한데 목소리 크다고 참은 아니다. 역사의 진실은 고요한 적이 많았다. 여럿이 한목소리를 낸다고 그 또한 진실은 아니다. 광장의 외침에도 참과 거짓이 섞여 있다. 역사의 진실은 홀로인 적도 많았다. 우리는 여전히 광장을 빌려, 이구동성이란 표현을 빌려 진리를 외친다. 하지만 거기에도 허점이 많다.

전국시대 위나라 대신 방총이 인질로 조나라 수도 한단에 가는 태자를 수행하게 됐다. 자신이 위나라에 없는 동안 신하들의 음해를 우려한 방총이 출발을 며칠 앞두고 혜왕에게 물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않을 것이오.” 방총이 재차 물었다.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 또한 믿지 않을 것이요.” 방총이 다시 물었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땐 믿을 것이오.”

방총이 말했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명확한 사실입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뢰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 신이 가게 되는 한단은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먼 곳입니다. 더구나 신이 떠나면 신 뒤에서 참언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듣지 마시옵소서.”

“염려 마시오. 과인은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은 믿지 않을 것이오.” 혜왕은 먼길 떠나는 방총을 안심시켰다. 아니나다를까. 방총이 떠나자 신하 여럿이 왕 앞에서 그를 헐뜯었다. 수년 후 태자는 불모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혜자가 의심을 깊이 품은 방총은 끝내 고국땅을 밟지 못했다. 의심은 독보다 빨리 퍼지는 법이다.《한비자》내저설편에 나오는 얘기다.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면 호랑이도 만든다. 거짓도 여러 번 되풀이하면 참으로 여겨지고, 가짜도 여럿이 진짜라 우기면 진짜로 들린다. 니체는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말이 많다”고 했다. 뭔가 속이는 자는 잡다한 수다로 주의를 다른 데로 쏠리게 하고, 시선을 감추고자 하는 데서 멀어지게 한다는 거다. 여론은 민주주의의 가늠자다. 한데 그 여론이란 게 때론 사익의 포장이다. 이미지의 시대다. 이미지 또한 겉으로 안을 덮는 경우가 많다. 진리는 다중 속에만 있지 않다. 때로는 고독히 홀로 서있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시인
[바람난 고사성어] 삼인성호(三人成虎)-이구동성이 진실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