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경험의 나라들에 둘러싸인 한국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 질서 전환기에 주역이 될 수 없는가?

세계질서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유럽의 베스트팔렌 조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중국과 이슬람의 질서는 무엇인지,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는 무엇이 다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한국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미래의 방향을 잡기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다른 나라 눈치를 늘 보지 않아도, 다른 나라에 의하여 운명이 결정되지도 않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제 한국도 헨리키신저, 브레진스키  수준의 세계질서 거대 담론(巨大談論)이 필요한 시점이다.




▲ 한반도 주변은 세계 패권을 경험한 세계 최강의 나라들이 둘러싸고 있다.     

중국은 수천 년을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으로 이어온 나라이고 미국과 지금 세계 패권을 놓고 전쟁 중이다. 러시아 역시 미국과 세상의 주도권을 놓고 반으로 나뉘어 냉전을 벌였다.

일본은 몽골의 3번 침략을 물리치고(태풍 도움도 큼),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승전하였다. 또 아시아 전체를 대동아(大東亞共榮圈)라 할 만큼 점령하다시피 하였고 유럽의 독일, 이탈리아 등과 연합하여 세계대전을 치렀으며 태평양 건너 미국 진주만을 공격한 나라다.

미국은 명실상부하게 현재 지구의 질서를 주도하고 있다. 네 나라 모두 패권을 가지고 있거나 패권을 경험 또는 도전하고 있는 나라들이 한국을 둘러싸고 있다.  거기에다 한술 더 떠 동족인 북한은 핵을 가지고 한국 머리 위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패권(霸權)은 국제정치에서 군사, 사상을 포함한 문화, 경제력 등으로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이다. 헤게모니 (hegemony)라고 한다. 주도권을 쥐고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는 힘이다.

  ▲ 베스트팔렌조약 이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질서는 없었다.      


베스트팔렌조약은 1648년 현재 독일 서부지역인 신성 로마 제국령 베스트팔렌 지방의 오스나브뤼크와 뮌스터에서 체결된 평화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신성 로마 제국에서 일어난 30년 전쟁과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종결되었다.


이는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국제 협약으로 평가되며, 이 조약의 영향으로 민족과 종교, 문화적 구별이 뒤섞인 전근대적 국가관이 허물어지고 외교 주권을 가진 ‘국민 국가(國民國家, nation state)’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였다.


1세기에 걸쳐 중부 유럽 전체를 휩쓴 종교 갈등과 정변은 1618~1648년의 30년 전쟁으로 끝이 났다. 대참사와도 같던 이 전쟁은 정치 분쟁과 종교 분쟁이 뒤섞여 전투원들은 인구 밀집 지역을 향해 총공세’를 펼쳤고, 중부 유럽의 인구 4분의 1 정도가 전투와 질병,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


지칠 대로 지친 참전국들은 유혈 사태를 막을 일련의 협정을 맺기 위해 만났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프로테스탄티즘이 살아남아 확산하면서 종교적 통일성에 금이 갔고, 무승부로 끝날 때까지 싸운 다수의 자율적인 정치 단위에 정치적 다양성이 내재하여 있었다. 따라서 유럽의 상황은 현대의 상황과 비슷했다.


유럽은 다수의 정치 단위가 존재하는데 어떤 정치 단위도 다른 단위들을 물리칠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으며, 다수가 자신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중립적인 규칙을 추구하면서도 모순되는 철학과 내부 관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은 독특한 도덕적 인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실용적 적응을 의미했다. 이 조약은 서로의 국내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전반적인 세력 균형을 통해 서로의 야심을 억제하는 독립적인 국가들로 이루어진 체계에 의존했다. 각 국가에는 자국 영토에 대한 주권의 속성이 부여되었다.


유럽의 각 국가는 자신의 질서가 유일무이한 존재로 생각하였고 유럽의 다른 국가는 야만적이라고 여겼다. 흡사 중국이 자신 이외에는 전부 오랑캐로 취급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베스트팔렌조약은 이웃 국가들의 국내 제도와 종교적 소명을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을 탄생시킨 17세기의 협상가들은 자신들이 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체계의 기초를 놓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베스트팔렌조약은 인접한 러시아 등 유럽 이외에 다른 대륙이나 문명은 대부분 개입하지 않고 심지어는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유럽 일부 지역의 지엽적인 협약에 불과했을 뿐이다. 세계질서라는 개념은 그 시대 정치인들에게 알려진 지리적 범위까지만 적용되었다. 이 패턴은 다른 지역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그 당시 과학, 기술로는 통합적인 글로벌 체계를 운영할 상상도 못 했고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스트팔렌 체제는 유럽 국가들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자신들의 국제 질서에 대한 청사진을 함께 전달했기 때문에 다수의 문명과 지역을 아우르는, 국가를 기초로 한 국제 질서의 토대로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였다.

▲ 당시 중국, 황제로 천하를 다스리고 한국은 내내 당하여 왔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럽의 반대편에 있는 중국은 자체적인 위계질서와 이론적으로 보편적인 질서 개념의 중심지였다. 이 체계는 수천 년 동안 작동해 왔다.


로마 제국이 통일체로서 유럽을 지배하던 시기에 중국은 이미 국가의 평등한 주권이 아니라 끝이 없다고 추정되는 황제의 세력 범위를 기초로 세워진 체계였다.


이 개념에서 보면 유럽식의 주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황제가 ‘천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정치적, 문화적 위계질서의 정점에 있는 인물로, 특별하고 만능일 뿐 아니라 세계의 중심인 중국의 수도로부터 나머지 모든 인간에게까지 빛을 발하는 인물이었다.


나머지 모든 인간은 부분적으로 한문의 수준 정도와 문화적 제도에 따라 다양한 등급의 야만인으로 분류되었다. 이 관점에서 중국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장엄한 문화와 풍요로운 경제로 다른 사회에 경외심을 불러일으켜 그들과 ‘천하 화합이라는 목표를 수립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관계를 맺음으로써 세계를 다스려 나가려 했다.


중국의 인접국으로서 한국은 그러한 지배를 그동안 처절하게 당하여 왔으며, 지금도 그러한 과거의 상황으로 만들려고 중국과 국내 일부 세력이 동조하여 애쓰고 있어 안타까움을 넘어 자괴감을 느낀다.


▲ 이슬람은 하나의 제국만 필요하다고 해.    


유럽과 중국 사이의 지역에서는 이슬람이라는 또 다른 보편적인 세계질서 개념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를 통합하고 평화를 안겨 주는, 신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지배 체계를 세웠다고 생각했다.


7세기에 이슬람은 세 대륙에 걸쳐 전례 없는 속도로 종교적인 세력을 확장하고 제국의 범위를 확대해 나갔다. 로마 제국의 유물을 차지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포함하면서 아랍 세계를 통일한 이슬람 세계는 중동 지역, 북아프리카, 아시아의 넓은 지역, 유럽 일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슬람 입장에서는 질서는 이슬람교가 ‘전쟁의 왕국’까지 확대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모든 지역을 ‘전쟁의 집’이라고 지칭했다. 그 영역을 넘어서까지 이슬람교가 확대되면 결국 전 세계가 예언자 마호메트의 메시지로 화합되는 단일한 체계가 된다고 생각했다.


유럽은 여러 국가로 이루어진 질서를 구축했기 때문에, 터키를 본거지로 삼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단일한 정통 지배에 대한 요구를 부활시켜 아람의 심장부와 지중해 지역, 발칸 반도, 동유럽까지 패권을 확대했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막 구축되고, 있던 유럽의 국가 간 질서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유럽의 질서를 한 모델이 아니라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서양으로 확장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분열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정복왕 마호메트 2세는 15세기에 초기 형태의 다극 체제를 시험하고 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당신들은 20개의 국가입니다. (중략) 당신들은 서로 의견이 다릅니다. (중략) 세상에는 하나의 제국, 하나의 신앙, 하나의 주권만 존재해야 합니다.”


▲ 중국과 이슬람의 단일체제와 유럽의 다원체제    


중국과 이슬람은 황제와 마호메트로 유일 질서를 주창하며 주변을 정복, 통치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유럽은 국가 간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주변국들의 다른 종교, 문화 등 질서를 인정하였다.


문명의 역사는 대부분 제국의 흥망성쇠에 관한 이야기이다. 질서는 국가 간의 균형 때문이 아니라 제국의 내부 통치 때문에 세워졌다. 중앙 권력이 결집력을 갖춘 제국은 강했고, 지배자가 약해지면 우왕좌왕했다.


제국 체계에서 전쟁은 대개 제국의 변경에서 발생하거나 내란의 형태로 발생했다. 평화는 제국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와 동일시되었다.


중국과 이슬람 세계의 정쟁은 기존의 질서 체계를 장악하려는 목적 때문에 벌어졌다. 왕조는 바뀌었지만, 새로운 지배 계층이 등장할 때마다 자신들이 과거에 무너진 합법적인 체계를 재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그러한 발전 과정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 로마 제국의 통치가 끝나면서 다원주의는 유럽의 질서를 규정하는 특징이 되었다.


유럽이라는 지리적 이름으로, 기독교 및 왕실 사회의 표현물로, 혹은 지식 집단의 계몽과 근대성의 중심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럽을 단일 문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유럽은 결코 단일한 통치 체계나 통일되고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러한 다원 국가 체제인 유럽이 현재 영국 탈퇴 등 불완전하지만 아이러니하게 하나의 유럽연합(EU)으로 통합하였다.


▲ 미국, 미국이 만든 민주와 평화의 원칙과 질서     


유럽의 대서양 건너 ‘신세계’에서는 또 다른 세계질서의 기초가 놓이고 있었다. 미국이다. 17세기 유럽에서 정치적, 분과적 갈등이 고조되었을 때, 청교도 정착민들은 기존의, 그리고 그들이 보기에는 타락한 권위 체계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줄 황무지에서의 소명으로 하느님의 계획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존 윈스럽 총독이 1630년 매사추세츠행 배 위에서 설교한 대로 새로운 세계질서의 공정한 원칙들과 그 본보기가 가진 힘을 통해 전 세계에 영감을 안겨 주면서 신세계에 ‘언덕 위의 도시’를 건설하려 했다.


미국식 세계질서에서는 미국이 자국 통치에 대해 발언권을 갖듯 다른 국가들도 똑같은 원칙을 기초로 발언권을 갖는다면 평화와 균형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오래된 적대감이 무시될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외교 정책의 임무는 미국만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공동의 원칙들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미국은 유럽이 구상한 질서를 수호하는 매우 중요한 국가가 될 터였다.


하지만 미국이 그 노력을 입증하기는 했어도 양면적인 태도는 계속되었다. 미국의 비전은 유럽식의 세력 균형 체제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 원칙의 확산을 통해 평화를 달성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1961년, 젊은 학자로서 캔자스시티에서 강연 중이던 헨리 키신저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다. 대통령으로서 이룬 업적 중에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트루먼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가 적들을 완전히 패배시켜서 국제 사회로 복귀시켰다는 점입니다. 나는 미국만이 이 일을 해냈을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트루먼은 자국의 엄청난 힘을 알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의 인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가치를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미국이 거둔 승리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화해 정책 때문에 기억되기를 원했다.


트루먼의 뒤를 이은 모든 미국 대통령들은 트루먼의 방식을 추종하며 비슷한 특징을 지닌 미국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시기 동안 대체로 그들이 유지하려 한 국제 사회는 미국식 합의를 반영했다.


▲ 브레턴우즈로 약탈과 정복의 국제 질서에서 자유무역질서로 시대를 전환하고, 중국까지 보호     


다시 말하면 공동의 규칙과 규범을 지키고 자유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며 국권을 존중하고 개인의 참여를 허용하는 민주적 통치 체계를 채택한 국가들로 이루어진 협력 질서를 확대하여 반영했다.


민주, 공화 양당 출신의 미국 대통령들은 다른 국가들을 상대로 아주 열렬하고 거침없는 능변으로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하라고 지속해서 재촉했다. 많은 경우에 미국과 동맹국들이 수호한 이러한 가치들은 인간의 조건에 중대한 변화를 안겨 주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브레턴우즈 (Bretton woods) 협정 중심이 미국(美國)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한국, 중국도 없으며 나아가 지구 상에 자유무역질서도 없었다.


미국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승전국의 중심이고 천하무적의 막강한 힘을 지닌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정중한 태도로 지금까지 정복자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안을 제시했다.


승전국인 미국의 개방과 미국 해군으로 패전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무역을 보호해준다는 계획을 제시한 것이다.


영국, 프랑스 등 모든 나라가 깜짝 놀랐다. 미국은 완벽한 영토를 가진 국가로서 다른 나라를 탐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승전국의 중심이 미국이 아니라 독일, 일본, 소련, 중국이었으면 1944년 후 약 70여 년 동안 유럽의 식민주의 시대처럼 강한 나라, 승자들이 패전국과 약소국을 약탈하고 짓밟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브레턴우즈 협정 당시 미국은 그 이전 80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십 년 단위로 경제 규모가 확대된 유일한 국가였고, 그 이후 70년을 보태 150년 동안 그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을 끌어드려 소련과의 냉전체제를 미사일 한 발 쏘지 않고 승리했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과 수교하고 미국이 만든 자유무역주의에 무임승차시켜 경제를 발전시키면 민주주의 국가로 변하고 세상은 자유민주주의 단일체제로 될 것이라고 믿었다.


개인 인권과 자유를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고, 민주주의로 통치하는 국가 중심에 미국이 있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세계의 질서이고 규칙이라고 확신했다.


▲ 새로운 국제 질서, 한국은 어디에


하지만 오늘날  미국의 만든 규칙을 기반으로 한 이 체계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브레턴우즈는 미국이 막대한 비용을 지속해서 지출하도록 하였다. 중국은 미국의 지원 아래 급성장하였으나 소련과 달리 계획경제로 성공한 공산주의를 만들려고 했다.


중화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중국몽(夢)의 포부를 열면서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를 뒤집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고 선포했다. 더구나 중국발 코로나 팬데믹으로 자유무역 체제는 흔들리고 신 고립주의가 고개를 들고있다.


글로벌 가치동맹이 균열되어 세계는 코로나 신자유주의(필자 명명) 또는 다층적 위기의 세계질서 전환기에 서있다.


출렁거리는 세계질서 격변기 중에서도  첨예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 한가운데 한국이 있다. 미국이 만든 질서의 세계를 거부하는 중국을 주저앉히기 위하여 미국은 더욱 공고한 한미일 동맹체제를 원하였으나 중국은 순순히 그 상황을 용인하지 않았다.


중국은 방파제인 북한을 은밀하게 도와서 핵을 가지게 하여 미국을 괴롭혔고, 또 한국을 조종, 압박하여 반미, 반일을 하도록 각종 경제, 정치력 등 방법을 동원하여 획책하였다.


그 결과 한국은 조금씩 미국과 동맹의 균열이 생기고, 미국은 빈 곳을 메우기 위하여 일본의 적극적인 대 중국 지원 역할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경 항공모함을 비롯하여 미국의 첨단 위성시스템 사용은 물론이고 타국에 대한 군사력 행사가 가능하도록 법제 보완 등으로 예전의 군사 대국 행세를 할 수 있는 위험 수위까지 서게 되었다.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감정적인 반일의 행위가 실제 국제 질서에서는 일본의 첨단 무장과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준 꼴이 되었다.


나아가 일본, 호주, 뉴질랜드, 미국을 포함한 인도, 이른바 쿼드 플러스알파(Quad+α)로 대(對) 중국 전선을 펼치는 인도 태평양 방위체제에 한국은 이편도 저편도 아닌 어정쩡한 외교적 위치에 서 있는 모습이 되었다. 위험하다. 구한말처럼 생존에 급급하여 여기저기 눈치만 봐야 하는 형국의 재판이 된 것이다.


구한말 남진하는 제정 러시아를 억제하려고 일본에 영국과 미국이 힘을 실어줄 때, 국제 정세에 무지한 고종과 지배세력들은 500년간 사대(事大)한 청나라가 패하자  대타로 러시아를 골라 아관파천(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하였다.


일본은 이 명분을 이용하여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이 일본의 지배를 인정하도록 하였다. 가쓰라-태프트 밀약(Taft–Katsura agreement)이다.


▲ 이제는 소아병적인 국제관 탈피해야     


국내 정치는 세계질서를 아우르는 패권적 시각에서 국제관계를 보지 못하고 각자 처한 처지에서 정략적으로, 소아병(小兒病)적으로 보고 싶은 대로 한쪽만 바라본다. 북한과 중국을 눈치 보며 반미, 반일을 말하고, 철 지난 민족주의, 우리끼리 말한다. 안타깝다.


주변국 의도대로 조종당하는 모습이다. 진짜 외세를 배격하는 자주독립은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잡거나, 힘이 부족하면 전략적으로 정확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기는 판을 강대국과 함께 만들어 확실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은 철저하게 자국 이익 중심의 국제 외교를 한다. 다만 미국은 일국의 이익을 넘어 민주주의로 세계 단일체제를 만들어 통 크게 패권을 행세하고자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당연히 한국은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함께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을 제외하고 몇 나라 남지 않은 공산주의 원조의 원조인 북한, 중국, 러시아가 한국과 인접해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과(過)가 있다고 해서 김일성을 스탈린을 모택동을 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 하여 공산주의를 할 수 있겠는가? 수정 보완하면 될일이다.


SNS상에서 벌어지는 논쟁 중 하나가 한국에 중국이 나쁘냐, 일본이 더 나쁘냐를 가지고 다툰다.


2014년경 북한은 중국은 천년의 원수요 일본은 백 년의 원수라는 구호가 등장하였다. 북한도 중국에 대하여 일본 이상으로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는 방증이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소수에 한국인 위안부를 강제 동원하였다면 중국은 50만에 이르는 한국의 환향녀가 있다.  일본은 왕비를 살해하였고 중국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왕의 머리에 피가 나도록 땅에 방아를 찌게 해 모욕을 주었다.


중국은 1388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부터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까지 500년간 조선을 속국으로 사실상 지배했다.

1407년 태종은 중국을 숭모한다는 모화관을 세우고 영은문의 전신 홍살문도 세워 중국 사신을 영접해 오다가 중국의 강한 요구로 1539년 중종 때 중국의 은혜를 영접한다는 영은문으로 이름까지 바꿔 세웠다.


1894년 청일전쟁 패한 중국이 1895년 4월 17일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라고 선언함으로 조선은 중국의 500년 지배에서 일시 형식적이나마 독립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서대문에 있는 모화관 이름을 독립관으로 바꾸고 영은문 자리에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독립관이나 독립문은 36년간 지배해 온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503년 지배받던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을 중국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이 일본이고,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해방시킨 것이 미국이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이 더 나쁘냐 일본이 더 나쁘냐의 원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의 젊은 여인들을 강제동원한 일본이, 중국이 나쁘지만 그런 상황을 막지 못하고 자초한 우리 스스로가 더 밉고 나쁘다.


남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역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자주독립이 아니겠는가?.


▲ 국내 통합과 패권적 시선으로 국정을 이끄는 정치가 필요하다.     


미국은 중국발 코로나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새로 출범한 바이든 미 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 이상으로 중국과 북한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간에 무역과 금융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고 대만, 남중국해, 한국 등에서 무력 충동 우려까지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한국의 대북, 대중 관계에 대한 불만을 여러 채널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20세기 후반, 냉전 종식 후에 풍미하던 ‘단일 세계질서’의 꿈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수그러들었다.


종족, 문화의 다름을 넘어서 온 인류는 하나의 가족이라고 주장하던 정치지도자들의 구호도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이란 대재앙으로 모두 사그라지고 자국 우선의 고립주의로 세계질서가 브레튼우즈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과의 관계 회복 및 발전을 말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민주와 자유라는 가치 동맹 역시 중국과의 패권전쟁의 유불리에 따라 과감하게 한국과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은 앞에서 말했듯이 패권적 시선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다른 나라의 결정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어왔다.


한국이 지금처럼 양다리 외교를 지속할 경우 갈수록 한국의 입장은 어려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 중국 모두 한국의 이중적 태도에 불만이 커지기 때문이다. 양다리 외교의 한계이다.


지금은 패권적 시선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당연히 모든 부문을 냉정히 비교할 때 미국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어 미국 편에 확실히 서는 것이 좋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한국의 많은 기업은 이미 세계 정상의 패권적 시각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다만 정치는 아직 시야가 국내에 갇혀있는 편이다. 이제 한국 정치가 남들이 짜 놓은 세계질서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미국의 편에서 공격적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것이다. 한국이 그리하면 중국이 잠깐은 한국에 화풀이, 보복을 할 수 있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중국은 지정학 위험이 너무 큰 나라로서 목(북경) 밑에 있는 한국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확고한 한국의 방향성으로 중국은 한국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우리가 우려하는 일본의 군사력 증강 등 재무장을 억제할 수 있으며 인도 태평양의 주도권을 한국이 지닐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권 1년여를 남긴 현 정부는 당리당략에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가장 큰 걸림돌은 내부 분열이다. 정당은 어쩔 수 없이 이분법의 분열을 먹고 산다.


하지만 임기 후반의 대통령은 분열적 구조에서 벗어나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1년 후 새로운 대통령은 통합의 리더십과 글로벌 패권 시선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막강하고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 세계질서 재편에 당당하게 주역이 되어야 한다.


정치, 경제, 과학 기술, 문화, 군사력 등 모든 부문의 지표로 볼 때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미국 편에서 한다면 미국이 의도한 대로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성공할 확률이 아주 높다.


오히려 한국이 미국에 중국을 위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중국과의 관계도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패권 주도국 위치에서 얻을 수 있는 과실(果實)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두고두고 클 것이다. 북한 문제도 의외로 쉽게 풀릴 것이다.






설화에 따르면 높으신 분이 동물들에게 새해에 달리기 경주를 시켰다. 영리한 쥐는 가장 빠른 고양이에게 경주는 새해가 아닌 보름날 열린다고 하여 참가하지 못하게 하였고,  덩치 크고 성실한 소뿔에 매달려 일등을 하였다.


그래서 자축(子丑)이라 한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자력(自力)으로는 세계 1등은 커녕 생존하기도 벅찬 나라이다.  남이 시키는대로 하는 바지사장이 성공한 예를 본적이 없다.  나라 또한 남의 눈치만 봐서는 제대로 설 수 없다. 세계질서 전환기에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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