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창궐하는데도 한국엔 길가에 화장지가 쌓여 있다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눈에는 마트 앞에 쌓인 화장지 묶음이 신기하기만 해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과 함께 이 같은 트윗을 올렸다. 물론 우리나라도 초기엔 사재기 조짐이 있었지만 미국, 영국, 일본처럼 화장지 사재기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화장지 사재기 현상이 가장 심각한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화장지 사재기를 멈출 방안을 모색했고,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코로나19 생활 수칙에서 “불필요한 양의 식품과 생활필수품을 쌓아 놓지 않길 바란다.”며 사재기를 멈춰 달라고 거듭 당부했지만 사람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사재기를 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제조업체와 유통업계는 모든 종이 제품은 미국에서 만들고 재료도 주로 북미와 남미에서 공급받고 있기 때문에 화장지 공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지를 사재기하는 이유가 뭘까?

각 나라의 대통령이 직접 국가 비상상태를 선포하는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인지하는 위기 수준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게 된다. 극적인 상황에 극적인 대응을 해야 하는데 일상적인 손 씻기만 하고 있기는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상황에 맞는 뭔가를 한다는 느낌을 가지려 한다. 말하자면 사재기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모종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심리적 기제(psychological mechanism)’인 것이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자.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배터리도 나가서 구조 요청도 할 수가 없다. 어디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길을 잃은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은 공포심에 빠져 사방을 허우적거리며 정신없이 달리는 것이다. 캐나다 저널리스트인 로렌스 콘잘레스는 <생존>이라는 저서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 가장 확실한 생존전략은 ‘그 자리에 머무르며 힘을 아끼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인적이 드문 산에서 길을 잃으면 이 전략은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된다. 실제로 길을 잃은 사람들 중 99%가 이 전략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불분명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강렬한 행동 욕구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행동편향(Action Bias)’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행동편향을 보이는 인간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방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 있다.”

행동편향을 현명하게 극복한 한 인물이 있다. 미국의 프로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Floyd Mayweather Jr.)가 그 주인공인데, 50전 50승의 무패복서다. 메이웨더는 슈퍼 페더급부터 시작해 라이트급, 라이트 웰터급, 웰터급, 슈퍼 웰터급까지 단계를 밟아가며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진 적도 비긴 적도 없다. 오로지 승리뿐이었다. 그가 21세기 최고 복싱 슈퍼스타 자리를 유지한 비결은 제대로 때리고 적게 맞는 효율적인 복싱이다.

대부분의 복서는 행동편향적 욕구를 보이며 투혼과 근성을 앞세워 끝없이 주먹을 휘두른다. 하지만 메이웨더는 상대에게 닿지 않을 주먹은 잘 내지 않는다. 주먹을 적게 낸다고 해서 적게 맞추는 것은 아니다. 적게 내고 명중률을 높이는 거다.

2009년 멕시코의 레전드 복서인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Juan Manuel Márquez Mendez)와 경기한 통계결과를 보면 마르케스는 경기 내내 583개의 주먹을 냈고, 그중 12%인 69개를 명중시켰다. 반면 메이웨더는 496개의 주먹을 내면서 그중 59%인 290개를 명중시켰다. 마르케스보다 5배나 높은 명중률이다. 메이웨더가 전승을 거두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스포츠 스타가 된 배경에는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는 행동편향을 보이지 않고 상대를 맞춘다는 본질에 가까운 복싱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화장지 사재기로 돌아가보자. 행동편향 외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화장지는 바이러스에 대해 특별한 보호 기능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이나 식료품같이 비상사태의 필수요소도 아닌데, 왜 이렇게 화장지에 집착하는 걸까?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다. 외출조차 꺼려지는 상황에 강제 ‘집돌이’, ‘집순이’가 된 사람들은 화장지가 집안에 쌓여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낀다. 이에 대해 매리 알보드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휴지가 있어야 할 장소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 우리는 먹고 자고 배변하는데 이는 우리 자신을 돌보는 기본적 욕구이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특히나 제한된 예산으로 다양한 비상 물품을 구입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경우, 화장지처럼 저렴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부피가 큰 물품을 구입하면 보다 심리적 안정과 만족감을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화장지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집착인 것이다.

화장지 사재기의 마지막 이유는 공포심에 동요된 사재기가 또 다른 사재기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별 생각없이 마트에 갔는데 화장지 선반이 텅텅 비어있는 것을 보면 어떨까? 당장 필요치 않음에도 화장지부터 집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서로서로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안전한 것, 위험한 것에 대한 단서에는 더더욱 서로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다 하는데 나만 빠지면 안될 것 같은’ ‘군중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를 포모증후군(FOMO Syndrome)이라고 한다. 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포같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 말로 표현하면 ‘소외공포증’ 정도가 될 것 같다. 현대에 와서 이 포모(FOMO)가 하나의 사회 병리 현상이 되었다. 여기엔 SNS의 확산이 큰 역할을 했다. SNS가 퍼다 나르는 정보를 통해 남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비교하고 이런 정보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혼란 속에 지구촌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화장지 사재기 소동도 이 포모증후군과 맞물려 있다. 현대인의 심리에 자리잡고 있던 FOMO 증상이 불안감을 자극하고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너도나도 휴지 사재기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재난 상황에 직면한 우리는 평소보다 더욱더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조급함, 과잉행동에 맞서 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의 말처럼 FOMO(Fear of Missing Out)를 JOMO(Joy Of Missing Out)로, 절제를 즐기는 자세를 지녀보는 것이 어떨까?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을 회복하는 삶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니깐.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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