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후 브레턴우즈 (Bretton woods) 협정 중심이 미국(美國)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한국, 중국도 없으며 나아가 지구 상에 자유무역도 없었다.


그리고 세상은 아마도 1944년 후 약 70여 년 동안 유럽의 식민주의 시대처럼 강한 나라, 승자들이 패전국과 약소국을 약탈하고 유린하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이 브레튼우즈 협정을 삼분의 일 정도만 알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전부를 알아야 그동안의 70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 미중 패권 전쟁, 포스트 코로나 및 새로운 격변의 시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 글은 의미가 있다.


이 글은  10월 26일 칼럼으로 게재한 “①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때리는 이유” 후속편 이다. 필자는 11월 6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경기도 금촌 소재 파주병원에서 11월 21일까지 보름간 격리 치료 중에 이 글을 정리하였다.

[박대석칼럼] ②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때리는 이유

▲ 75년 전으로 잠깐 돌아 가보자. ( 피터 자이한 (Peter Zeihan)의 “The Accidental Superpower”를 빌려서…)


1944년 7월 1일, 44개 동맹국과 식민지에서 온 730명의 대표단이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튼우즈라는 스키 휴양지에 있는 마운트 워싱턴 호텔에 모였다.


바로 2차 세계대전 후 세계가 맞을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고위급 금융인, 경제학자, 정부 각료, 캐나다. 그리스, 뉴질랜드, 페루의 미래 지도자 등을 망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모였다.


그들은 뉴저지 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는데 휴양지 시설은 엉망이었다. 수돗물도 공급되지 않는 호텔방이 태반이었고, 얼음이나 코카콜라도 모자랐다. 호텔 종업이 부족해서 근처에 사는 보이스카우트들이 차출되었다.


거의 3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이 회의를 준비해온 주최 측과 주요 대표단인 미국의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와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염두에 두었던 개막일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박대석칼럼] ②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때리는 이유

그러나 시작은 이렇게 불길했지만, 대표단은 화이트와 케인즈가 제시 한 의제 검토에 착수했고 3주에 걸쳐 다자간 협상을 한 끝에 결론이 났다.


세계은행(the World Bank), 국제 통화기금(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부흥 개발은행(th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 기구들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유럽을 회생시키고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자유무역이 지배하는 세계 경제 체제의 근간을 마련했다.


적어도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고 대부분 이 부분을 중심으로 브레튼우즈 체제를 기억하고 있다.


▲ 그러나 참석자들은 미국인의 두 가지 얘기를 듣고 경악했다.


두 은행과 기금 신설,  협상 자체는 사실상 지엽적인 안건에 불과했다.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이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미국과 처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화이트를 비롯한 미국인들이 하는 얘기를 경청하러 왔을 뿐이었는데 예상치 않은 미국의 두 가지 발표가 그들을 놀라게 했다.


첫 번째, 미국은 미국이 지배하는 평화를 강요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소득이나 무역이나 재산에 대해 제국으로서 새로 확보한 전진기지마다 총독을 파견할 생각고 없었다. 물자가 집중되고 배분되는 기지 설치도 관세 규제도, 할당량 규제도 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미국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미국 대표단은 밝혔다. 미국에 수출하고자 하는 나라라면 누구든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


미국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유럽이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은 미국 산업계와 경쟁할 처지가 전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고, 따라서 시장 개방은 대체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취하는 정책이었다.


미국은 관세를 인하하는 새로운 세계 체제의 구상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차후에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는 미국은 자국 해군력을 동원해 누가 사고파는 화물이든 관계없이 모든 해상무역을 보호하겠다고 제안했다.


예상했던 바와 전혀 딴판인 첫 단계만으로도 모두 놀랐는데, 두 번째 단계를 접한 유럽 대표단들은 까무러칠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과 아무 상관없는 제3국끼리의 무역조 차도 미국의 막강한 해군력으로 보호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각국에 부과한 무역 관세로 자국의 곳간을 넘치도록 채워 넣을 미국이 지배하는 체제는커녕 정반대의 체제를 제시하고 나섰다.


미국이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모든 해상 무역을 철저히 보호하는 동시에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인 미국에 대해 무제한의 접근 기회를 부여했고, 미국이 제시한 이 체제에 동참하는 국가들이 자국의 시장을 미국 상품에 개방하리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은 회의에 참석한 모든 나라의 경제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사실상 약속한 셈이었다.


유럽 대표단들은 주저하지 않고 미국의 제안에 동의했고 1944년 7월 22일, 마운트 워싱턴 호텔의 골드 룸에 서 미국이 제시한 조건을 비준했다.


▲ 그동안의 전쟁 승리국의 약탈과 식민주의 관행을 미국이 과감하게 깬 것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진영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시실리에서 노르망디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미국이 미국 장비와 미국 연료를 가지고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전선에서도 미국의 군사력이 대부분의 전투를 수행했고, 미군은 다른 모든 연합국과 연합국에 대항한 추축국(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전투인력을 모두 합한 것보다 2배 정도 많았다.

[박대석칼럼] ②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때리는 이유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대규모 전투 정도가 다국적군의 결의를 보여준 전투라는 찬사를 받았다. 태평양에서 미국은 홀로 고군분투했다.


미국은 연합국 등에게는 단순한 구세주나 진행 중인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지원군이 아니라 미군 자체가 전쟁의 주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제적인 의미에서 “국제적인 체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 유럽 국가들은 예전의 제국주의 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한 별도의 무역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 체제 하에서 유럽 국가가 지배하는 식민지는 원자재를 공급하고 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원자재로 최종 상품을 생산해 식민지에 판매했다.


유럽 제국들 간에 거래된 무역 품목은 원자재든 특정한 제조 품목이든, 주로 각자의 “폐쇄적 “ 체제 내에서 조달할 수 없는 상품에 한정되어 있었다.


식민지를 보유한 제국 간 무역은 대부분 제국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협상을 중재하는 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네덜란드인처럼 상술의 뛰어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개별적인 제국의 무역활동은 자국의 해군력의 보호 하에 이루어졌다. 국적 상선을 보호하고 경쟁국의 상선들을 약탈하는 데 해군이 동원된 관행은 너무나도 당연한 국제 질서였다.


브레튼우즈 회의에 참석한 대표단이 그들이 알고 있는 과거의 체재는 막을 내렸다고 깨닫게 된 것은 바로 이 해군력이라는 요소였다.


그들이 미국 도움 덕분에 추축국으로부터 고국을 수복한다고 해도 해군력이 없었다. 해군력을 구축하기란 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가장 번영하는 시기에도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프로젝트다.


따라서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데다 점령까지 당했던 나라는 언감생심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당시에도, 미래에도 해군력을 재건하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향후 수십 년 동안 그들에게 국가안보나 경제적 번영 또는 두 가지 모두를 누리도록 도와줄 대상이라면 그게 누구든 그 대상의 처분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케인즈를 비롯한 대표단은 예측 불가능한 중요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앞으로 닥칠 놀라운 신세계에 관한 한 적어도 한 가지 측면만은 분명히 보였다.


해군력은 오직 하나만 존재하게 되리라는 점이었다.


미국이 뒤늦게 전쟁에 뛰어들기 전에 나치는 영국, 프랑스, 일본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의 해군을 초토화시킬 역량이 있었다. 게다가 독일군이 프랑스 국적선을 장악하지 못하게 영국은 알제리 항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함대를 침몰시켰다.


그리고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이 독일과 일본을 격퇴하고 나면 자기들은 기껏해야 상선을 띄우는 데 그치리라고 믿었다.


케인즈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듯이, 영국이 여전히 상당한 해군력을 보유한다고 해도 미국 함대에 비교하면 별 볼일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영국 영토에 주둔한 미국 지상군의 수가 영국군의 수를 능가하기 전에 이미 드러난 사실이었다. 이와 같이 명명백백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식한 케인즈는 미국 대표단이 ”다른 대표단들은 개의치 않고 자기들의 생각을 밀어붙이려고 한다.”라고 기록했다.


프랑스 대표단은 독일의 손아귀에서 모국을 구해준 미국에 대해 안도와 감사하는 마음 못지않게 불신과 우려를 품었다.


자국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대상이 적이 아니라 우방이기는 했지만 취약 한 처지에서 “협상”을 해야 했고, 그래서 아마도 그들은 18세기에 그들의 전임자들이 부지불식간에 만든 괴물이 이제 자신들을 삼키려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운트 워싱턴 호텔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는데, 이는 단순히 기온이 높고 차가운 음료가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프랑스를 비롯해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덴마크, 벨기에, 인도, 멕시코, 브라 질,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쿠바, 페루, 도미니카공화국 등에서 온 각국 대표단들은 화이트와 미국 대표단이 과거에 제국들이 늘 써왔던 방식대로 미국이 지배하는 평화 체제, 즉 팍스 아메리카나의 청사진을 공개하리라고 생각했다.


유럽 제국들의 광대한 보유지를 비롯해 유럽 국가들 자체의 영토까지도 미국의 제국적 체제에 편입시키는 구상 말이다.


소련은 미국이 그렇게 하리라고 예상했고, 과거의 관계에서 미루 어볼 때, 유럽과 미국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유럽 국가들도 틀림없이 미국을 유럽이 지배하는 체제에 편입시키려 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미국 대표단은 천하무적의 막강한 힘을 지닌 입장에서 정중한 태도로 전혀 다른 2단계,  즉 승전국인 미국의 개방과 미국 해군으로 모든 나라의 무역을 보호해준다는 계획을 제시한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원군도는 일본과 변변히 싸우지 않으면서 오히려 각종 이유로 조선만 괴롭혔다.


미국은 독보적인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면서 행세는커녕 자국에게 패전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들이 물건을 거꾸로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미군의 힘으로 무역항로를 누구든지 보호해 주었다. 미국은 왜 그랬을까? 조금 더 살펴보자.


▲ 미국은 완벽한 나라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탐을 낼 필요가 없었다.

[박대석칼럼] ②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때리는 이유

미국은 가장 단시간에 가장 적은 피를 흘리고 매우 저렴한 가격에 세계에서 가장 알짜배기 땅을 물려받았다.


북아메리카에는 초기 미국인들을 경쟁 관계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거주하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준 자연적인 장벽이 있다.  미국 영토는 영국보다 원양 항해에 훨씬 적합하고 독일보다 산업화에 훨씬 적합하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인들은 자기 파멸적인 전쟁에 골몰하느라 곧 자기들을 무색하게 할 신흥 국가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이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어느 한 가지만으로도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데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수로(水路) 망과 세계 최대의 경작지를 가지고 있으며, 수로 망과 경작지가 중첩되는 덕분에 경제 개발의 기회가 풍부하다.


미국은 세계 무역 체제에 대한 의존도가 역사상 GDP의 15퍼센트를 넘어본 적이 없다.


미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세계 최고의 명당자리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세계 때문에 미국이 경기침체를 겪은 적은 없지만,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면 어김없이 세계 경기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토지, 노동력, 자본이 너무 많아서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민간 기업가와 사업가들이 산업화를 주도했다.


독일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미국에서 경제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졌다.


미국은 농업, 기술, 금융, 산업 부문에서 세계 최대이며, 여전히 성장할 여지가 많은 나라이다.


세계 모든 해양 국가는 본질적으로 하나같이 공격적이다. 그러나 1815년 이후로 부분적으로나마 미국 본토를 침략하려고 한 나라는 단 하나도 없었다.


미국이 공격은 가차 없이 하지만, 전략적으로 패배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미국은 해외에서 참혹할 정도의 손실을 입어도 미국이 지닌 힘의 기반은 손상되지 않는다.


미국은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영토를 모조리 잃는다고 해도 여전히 인류 역사상 가장 막강한 나라이다.


국제적인 상황 변화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지정학적 입지 덕분에 미국은 세계 무대에 다시 등장하자마자 세상사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자가 되었다.


운송의 균형은 부와 안보를 결정하고, 원양 항해 기술은 도달 범위를 결정하며, 산업화는 경제적 근력을 결정한다.  미국은 운송의 균형, 원양 항해 기술, 산업화 등으로 볼 때, 세계 최고의 지리적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1890년부터 세계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함으로써 세계 군사적 갈등의 진행 방향을 결정하는 것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미국은 세상의 모습을 모두 뒤바꿔 놓았으며, 그로 인해 현재의 세계는 지정학이 먹혀들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만약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위치를 중국, 소련, 독일, 일본, 영국 등이 대신했다면 세상은 약 70여 년 동안 암흑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번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는 이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 아무튼 브레튼우즈 협정 이듬해 제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은 패망했다. 미군은 소련 제국과 인접한 서유럽의 국경을 지켰다.


미국의 원조 덕분에 서유럽이 다시 제 발로 서게 된 데는 미국의 원조물자도 한몫을 했지만, 유럽을 기사회생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미국 시장이 서유럽이 생산한 볼트, 탁자, 자동차 등을 닥치는 대로 사들인 덕분이었다.


유럽을 폐허로 만든 폭탄 세례를 완전히 피해 간 미국 경제는 유럽이 과거에 진출했던 그 어떤 시장보다도 드넓었고 유럽은 그런 시장에 접근함으로써 수출을 통해 전쟁 전의 풍요를 되찾았다.


초창기에 브레튼우즈 체제로 미국이 떠안은 부담은 거뜬히 견딜 만했다. 유럽은 폐허가 되었고 미국은 경제적으로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인 유럽 수출품들은 자선 활동보다 약간 더 안는 부담도 커졌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미국은 브레튼우즈에서 타결한 협상의 적용대상을 동맹국들에 국한하지 않았다.


협정 내용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국가들, 즉 식민지였던 신생 독립국들, 패전국들, 그리고 한때 앙숙이었던 경쟁국들에게까지 점차적으로 확대 적용되었다.


▲ 약 70년 동안 미국의 선심으로 만들어진 국제질서가 이어졌다.


냉전은 종식되고 전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지향성이 바뀌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체제가 적용되는 지역도 계속 확장되어 마침내 거의 전 세계가 미국이 보장하는 네트워크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브레튼우즈 협정의 유지비용은 점점 증가했다. 


브레튼우즈 협정은 일본과 한국에서 경제성장의 기적을 일으키고, 유럽 경제공동체와 그 후신인 유럽연합을 구축하고, 중국을 세계무대에 등장시켰다.


미국은 이전의 주요 강대국들이 그러했듯이 직접적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는 대신 역사적 선례를 거스르고 자신의 나라를 식민지로 내주었다.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보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여전히 이 거래를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미국이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현재 세계의 작동을 가능케 하는 이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미국은 얼마나 강하게 느끼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들이 오늘날 세계의 틀을 구성하고 있다.


케인즈를 비롯해 유럽의 대표단들은 1944년 7월, 세상이 천지개벽하고 위태롭다고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당시에 구축된 세계 체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브레튼우즈 협정 당시 미국은 세계 GDP의 4분의 1을 생산했는데, 이는 2014 년에도 그대로다.


브레튼우즈 협정 당시 미국은 세계 국방비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는데, 이 역시 2014년 현재 그대로다. 브레튼우즈 협정 당시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해군 함정의 절반을 좌우했는데, 이 역시 2014년에도 변함이 없다.


브레튼우즈 협정 당시 미국은 그 이전 80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십 년 단위로 경제 규모가 확대된 유일한 국가였고, 그 이후 70 년을 보태 150년 동안 그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야기한 참화로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랜 기간 동안 중단 없이 정부를 구성한 나라가 되었고 2014년 현재 여전히 이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브레튼우즈 협정 당시 미국은 한 세기 동안 자국 영토가 외국 군대의 군홧발에 짓밟히지 않은 유일한 나라였고, 이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 그런데 미국이 기존에 관행의 틀을 허물어 만든 국제질서를  중국이 깨버렸다.


미국은 식민지의 개방형 무역을 통해 배타적 식민지를 없앴다.


배타적 식민지란 예를 들어 영국이 지배하고 있는 인도에서는 영국만이 교역을 할 수 있고. 이외의 나라들은 발을 붙이지 못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개방형 식민지는, 예를 들어 중국처럼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 세계열강이 동시에 들어와서 장사해도 되는 방식이다.


세계 최대의 개방형 시장인 중국이 공산주의로 편입되면서(1949 이후) 미국은 스스로 개방형 식민지가 되기를 자처한다.


미국은 마셜플랜으로 서유럽을 지원하고 스스로 개방형 식민지가 되어 자유 민주 진영의 상품을 받아준다.


그런데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다. 1991년 12월 소련 붕괴다.


공산주의는 무너졌으며 전 세계는 자유시장경제로 편입한다. 이로써 세계는 인류공영의 공통된 윤리 코드를 만든다. 현재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역의 플랫폼은 무엇인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이다.


미국은 달러로 중국 등 신흥국의 물건을 사주고, 그 돈은 미국 국채로 다시 모인다. 다시 거둔 달러로 미국은 삼성 등 신흥국의 기업의 주식 등에 투자하면서 세계를 지배한다.


이른바 ‘신비로운 길’이다.


그 길을 지키기 위하여 미 항공모함을 배치한다. 그러나 중국이 일대일로 등으로, 위안화로, 남중국해 인공섬으로 그 길을 방해하며 도전에 나섰다. 나아가 지적재산권 등을 훔쳐 미국의 일자리와 무역적자를 키워 미국의 부채를 늘게 하였다.


브레튼우즈는 이면에서 중국을 세계무대에 등장시키고, 미국의 무역적 자라는 통계상의 괴물을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 돼버렸다.


중국은 미 패권에 위협을 주고 도전장을 내민 것을 넘어서는 행동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해온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만들어 놓은 이른바 ‘신비로운 길’ 위에서 번영을 누렸는데 아주 노골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가만 내버려 둘 이유가 없다. 이는 아직도 미국 대통령이 누가 확정될지 모르지만 바이든 이건 트럼프 건 차이가 없는 일이다.


▲ 미국이 중국 때리기를 늦추면 미국이 죽는다?


미중 간의 패권전쟁은 무역, 환율, 금융, 정보통신 및 첨단기술, 석유 등 에너지, 코로나 배상, 무력전쟁 등 6가지 형태로 단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문제가 불거진 부정선거 이슈도 하나 끼어들 판이다.


중국의 경제력(GDP 기준)은 1980년 미국의 11%였으나 2017년 66%로 치솟았다. 그로부터 반년 여 만인 다음 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은 대(對) 중국 무역·경제 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중국은 마치 샌드백을 두드리듯 매일 우리를 두들겨 패고,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는데 대체 대통령이란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했다.


통상적으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제압하려면 국력 격차가 3~4배 돼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미국이 정말 중국을 손보려 했다면 2008년 전후해서 조치를 취해야 했다.


2008년 당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14조 3000억 달러)은 중국(4조 4000억 달러) 보다 3배 이상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 중산층의 일상생활에 불가결한 값싼 생필품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중국이 잘 조달했는데, 미국 발 금융위기 발생으로 미국이 중국을 억누를 기회를 놓쳤다.


이후 중국은 성장을 거듭해 세계 최대 교역국이 됐고 2019년 GDP 기준으로 중국(15조 6000억 달러)은 미국(21조 8000억 달러)의 72%에 육박하는 무시 못 할 존재로 컸다.


이달 3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 측이 총체적인 부정 선거 문제를 제기하며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는 중에도 미국은 더욱 강하게 중국 때리기를 하고 있다.


▲ 미국,  이 순간도 중국을  때리고 있다.


이달 9일 미국 재무부는 홍콩 내 인권 탄압 혐의로 덩 중화(鄧中華)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부주임 등 중국 관료 4명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이들 4명은 미국 여행이 금지되고 미국 내 모든 자산이 동결된다.


사흘 후인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군(軍)의 소유이거나 통제를 받는 31개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 투자회사와 연기금의 투자 및 주식 소유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세계 최대 감시 폐쇄회로(CCTV) 카메라 회사인 ‘하이크비전’ 서버 기업 ‘인스퍼’ 등을 포함해 해당된 중국 기업 모두가 중국 인민해방군 현대화에 적극 가담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달 20일에는 키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차관 주도로 대만과 ‘경제번영 파트너십 대화’를 열어 중국이 미·중 외교의 근간으로 꼽는 ‘하나의 중국 원칙(One China Policy·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인정)’을 다시 무력화하며 중국을 자극할 예정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 “내정 간섭”(왕원빈 외교부 대변인), “패배한 집권 세력의 마지막 광기”(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 논평)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강력 대처하고 있다.


미국이 인도양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47년 전 폐지했던 제1함대 부활을 추진하고 있다.  미 해군이 새로 만들려는 함대의 명칭은 1함대로 싱가포르에 기지를 둘 것으로 보인다.

[박대석칼럼] ②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때리는 이유

태평양함대 소속이었던 1함대는 1973년 해체돼 임무를 3함대로 넘겼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인도양에서 세력을 확장하려 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1함대를 부활시키려 하는 것이다.


7함대만으로 서부 태평양과 한반도, 일본, 동남아시아, 인도양을 모두 떠맡는 게 부담스럽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 코로나로 미국 등 세계 경제, 방역 비상 / 코로나도 중국 책임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 등이 내년 초까지 미국 경제가 최대 고비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손정의 회장은 보유자산을 매각하여  현금 90조 원 이상을 확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백신이 개발됐지만 보급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 최근 코로나 19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어서다. 또 코로나 19를 극복하더라도 과거 경제 구조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파월 의장은 17일 샌프란시스코 경제단체인 베이 에어리어 카운슬 주최로 열린 화상 회의에 참석해 “최상의 경우라도 광범위한 백신 접종은 몇 달 후가 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경기 하강 리스크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사람들이 코로나 통제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감염 위험이 있는 활동에선 발을 빼고 있다. 갈 길이 멀다”라고 했다.


파월 의장은 “화이자 모더나 등 제약회사들의 백신 개발은 좋은 소식이지만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감안할 때 내년 초까지가 문제”라고 우려했다.


미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코로나 사태를 완전히 극복하더라도 일부 업종은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게 그의 전망이다.


경제 구조 재편에 따른 선별 지원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3일 유엔 총회에서 신종코로나(중공 바이러스) 대유행 사태와 관련해 유엔이 중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과 공조해 사태를 악화하는 데 일조했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다른 나라들과 연합하여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책임을 중국에 돌리고 청구액이 무려 26조 달러나 되는 대규모 국제소송을 준비하다가 대선 국면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면 코로나 배상문제가 다시 본격화할 수 있다.

미중 패권 전쟁은 쉽사리 대충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항복하거나 미국이 납득할 만한 조건부 타협정도는 되어야 어느 정도 마무리 될 것이다.

▲ 원교근공(遠交近攻)과 용미(用美)가 절대로 필요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원칙이 있다. 가까운 나라가 패권을 잡으면 우리는 끌려가게 되고 수시로 두들겨 맞는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하는데 다른 이유가 있을 필요가 있을까?


미국은 우리를 한 개의 속국처럼 주 정부로 여길 수는 있어도 직접 지배를 하지 않는다. 1945년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여 완전한 패전국으로 점령당하였지만 미국은 일본을 풀어주었다.


기원전 300여 년 전에 알렉산더 대왕도 그리스 북부에서 인도 북서부까지 점령하였지만 돌아갔고, 13세기 초 칭기즈칸도 동유럽까지 진출했지만 몽골로 돌아갔다. 이유는 멀어서이다.


중국이 만약 미국과 패권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아니면 차선책으로 동북아의 패권을 잡으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중국의 조선족처럼 소수민족으로 살도록 하지 않을까?


국내 언론과 달리 미국의 통상적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빠르면 12월 초 늦으면 내년 1월 연방대법원에서 당선자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부정선거에 여부에 따른 당선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런 일이 민주주의 본산인 미국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의아스럽다. 그만큼 공산주의는 국제적으로 공조 활동을 하는 증표로 보인다.


그러나 당선자가 민주당이 되던 공화당이 되든 간에 관계없이 미중간의 패권전쟁은 격화할 것이다.


현재까지  당선 유력자인 바이든은 한국이 지금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중국 편을 들면 아예 미군을 철수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 한국을 버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등거리외교, 운전자 외교 등 비현실적이고 허구에 찬 외교정책을 버려야 한다. 권력안보를 잊어버리고 오로지 과감하게 국익을 보고 외교 전략을 수립하여 펼쳐야 한다.

미국은 사실상 독자적으로 살아도 되는 영토와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지구 패권을 포기하고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체제로 가게 되면 가장 골치 아픈 나라는 한국이다.


당장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면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하여 기름을 가져오기도 힘들고 비용도 막대하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의 항로는 항상 불안하다.


당장 중국과 일본, 러시아는 한국을 사분오열 나누어 먹으려고 달려들 것이다. 구한말과 다를 바가 조금도 없다.


한국의 정치인, 지식인들이 냉정하게 미국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고 자주독립, 국방, 평화를 이룩할 때까지 최대한 미국을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반중, 친미, 친일의 정략적인 계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지구상에 두개의 패권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미국은 독재와 공산주의 체재를 유지하면서 미국에 경제 등 다방면에 위협이되는 중국을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때 까지 더욱 강력하게 때릴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중에 간호사실에서 내일 퇴원 준비하라는 반가운 통보를 받았다. 격리 병실 창문에는 비 갠 후 환한 햇살이 창문으로 비친다.

[박대석칼럼] ②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때리는 이유

2020. 11. 20. 경기도 금촌 소재 파주병원 504호 음압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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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박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