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프롤로그>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인 보헤미안으로 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어느 공간만큼은 보헤미안적인 자유와 낭만을 꿈꾸며 실천해 보는 것은 우울감을 이겨내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2018>에서 그룹 퀸(Queen)의 탄생과 성공, 불화와 화해, 그리고 리더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성적 갈등과 뮤지션의 전설에서 자유로운 영혼과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코털을 붙이고 웸블리 스타디움(메가박스 MX 관)에서 싱어롱(떼창)을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코로나에 지친 삶에서 자유로운 보헤미안으로 돌아가 본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영화 줄거리 요약>
공항에서 수화물 노동자로 일하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이민자 출신의 아웃사이더 ‘파룩 부사라’는 보컬을 구하던 로컬 밴드 ’스마일’에 들어가게 되면서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 분/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라는 이름으로 밴드 ‘퀸’을 이끌게 된다.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적인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로 관중들을 사로잡으며 성장하던 ‘퀸’은 라디오와 방송에서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음반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려 6분 동안 이어지는 실험적인 곡 ‘보헤미안 랩소디’로 대성공을 거두며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던 ‘프레디 머큐리’는 매니저인 폴의 꼬임에 넘어가 솔로 데뷔라는 유혹에 흔들리게 되고, 결국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멤버들과 결별을 한다. 그후그는  외로움에 젖어 파티와 술에 빠져 몸과 마음에 깊은 병이 드는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하지만 자신을 찾아와 간절한 충언을 해준 여자친구 덕분에 용기를 얻어 기다려준 멤버들에게 다시 돌아가 아프리카 기아 돕기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Aid)’에서 공연하며 마지막을 멋지게 불태운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관전 포인트>
A. 퀸의 히트곡들은?
스스로를 “우리 4명은 부적응자들을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이라고 정의하며,<Bohemian Rhapsody>, <We are the champions>, <We will rock you>, <Killer Queen>, <Radio Ga Ga>, <Somebody to love>,<Don’t stop me now>, <The show must go on>,<Love of my life>,<I want to break free> 등 20여 곡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탄생시켰다.

B. 보헤미안 랩소디는 어떤 곡인가?
퀸은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적인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로 관중들을 사로잡으며 성장했다. 퀸은 라디오와 방송에서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음반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려 6분 동안 아카펠라, 발라드, 오페라, 하드 록 등 전혀 다른 장르들을 조합한 실험적 구성인 록 오페라 <보헤미안 랩소디>로 대성공을 거두며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른다. 랩소디(광시곡)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미친 듯이 격한 감정을 쏟아내는 노래’라는 뜻이다. 1975년, 록과 오페라, 헤비메탈이 이루는 광란의 축제인 이 곡이 영국 라디오에서 처음 나왔을 때, 대중들은 환희에 찬 광기와 뒤죽박죽된 상상력에 매우 즐거워했다.

C. 프레디의 첫사랑 연인은?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했던 자신의 장점을 인정하고 사랑해주었던 메리 오스틴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알게 된 이후에도 ‘내 인생에 머물러 줘’라고 하면서 평생 연인이자 친구 같은 깊은 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프레디는 메리를 위해 <Love of my life>를 작곡하기도 했는데, 피아노 연주와 하프 선율의 애절한 음색이 아름다운 노래다.

D.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는 어떤 아티스트인가?
영국 국적이지만, 인도계 동양인으로 아버지는 인도 국적으로, 8세기 무슬림들에게 쫓겨 인도로 망명한 조로아스터교의 후손으로 항상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프레디에게 강조한다. 이방인 프레디는 영국의 ‘일링(Ealing) 칼리지’에서 디자인 학위를 받았는데, 독특한 취향과 감각을 배우기도 했다. 1971년 런던에서 브라이언 메이(기타, 보컬), 존 디콘(베이스), 로저 테일러(드럼, 보컬)와 함께 록밴드 퀸을 결성하였다. 프레디는 4옥타브를 넘나드는 힘 있는 보컬과 라이브에서의 폭발적인 무대 매너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전설을 남기고 사라졌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에필로그>
프레디 머큐리가 밴드를 떠나 외롭게 지내던 어느 날, 첫사랑 메리가 찾아와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라고 진정 어린 충고를 하자 망설이던 프레디는 용기를 내어 매니저 폴과의 악연을 끊어내고 마음의 고향인 퀸 밴드로 돌아가서 병마를 딛고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보헤미안이 되지만 진정한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언젠가 자신의 소중한 삶 속으로 되돌아가 의미 있는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실황에서 프레디의 <라디오 가가> 열창을 들으며 우리 모두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길 기도해본다.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