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어둠이 되어, 안도현

어둠이 되어



안도현



그대가 한밤내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의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한역]


爲黑暗(위흑암)



吾君誠願作華星(오군성원작화성)


的的悠悠通宵在(적적유유통소재)


吾人須欲爲黑暗(오인수욕위흑암)


廢眼掩耳立君背(폐안엄이립군배)



[주석]


* 爲(위) : ~이 되다. / 黑暗(흑암) : 어둠, 암흑.


吾君(오군) : 그대, 당신. / 誠(성) : 진실로, 정말.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願(원) : ~을 원하다. / 作(작) : ~이 되다. / 華星(화성) : 빛나는 별, 아름다운 별.


的的悠悠(적적유유) : 초롱초롱. / 通宵(통소) : 밤을 새다, 밤새도록. / 在(재) : 있다, 존재하다.


吾人(오인) : 나. / 須(수) : 모름지기, 마땅히.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欲(욕) : ~을 하고자 하다.


廢眼(폐안) : 눈을 감다, 눈을 막다. / 掩耳(엄이) : 귀를 가리다, 귀를 막다. / 立(입) : ~에 서다. / 君背(군배) : 그대의 등, 그대의 뒤.



[직역]


어둠이 되어



그대가 정말 빛나는 별이 되어


초롱초롱 한밤 내내 있고 싶다면


나는 마땅히 어둠이 되어


눈 막고 귀 막고 그대 뒤에 서리



[한역 노트]


세상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낮이라고 빛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밤이라고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에는 어둠의 속성을 지닌 그림자가 있고, 밤에는 빛의 속성을 지닌 달과 함께 별이 있다. 그리하여 빛과 어둠은 밤낮에 관계없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어떤 요소가 더 강하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밤과 낮이 갈릴 뿐이다.


별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존재이다. 그리고 어둠이 짙을수록 그 빛은 더욱 찬란하게 된다. 이 시의 줄거리는, 그대가 그런 별이 되겠다면 난 그대의 빛남이 아름답게 할 어둠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의 빛과 어둠은 상호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의 관계이다. 어둠이 있어 별이 돋보이고, 빛이 있어 어둠이 적막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빛이 차단된 공간이 있다면 그곳은 무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적막한 정도를 넘어 두려운 곳이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해주느냐 보다는 무엇이 되어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산이 되어주고 난로가 되어주고 그늘이 되어주는 것이,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보석을 치렁치렁 달아주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석처럼 빛나게 해주는 것은 고귀하기까지 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노래를 하면 반주가 되어 주고, 춤을 추면 음악이 되어주듯 별이 되면 어둠이 되어주는 것, 그것보다 더 고귀한 사랑이 또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기꺼이 배경이 되어주겠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감동이다.


“눈도 막고 귀도 막고”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자에게는, 시적 화자가 타인의 간섭에 영향을 받거나 자발적으로 심경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사랑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쉽사리 흔들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흔들림의 원인을 제공할지도 모를 바깥 정보를 애초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단호하고 결연한 자세인가! 이런 자세 때문에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 질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적어도 모든 것을 건 사랑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연 구분 없이 6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4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 과정에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시어의 순서를 바꾸거나 원시에 없는 말을 임의로 보태기도 하였다.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며 압운자는 ‘在(재)’·‘背(배)’이다.


2020. 8. 25.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