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입구인 양재 분기점을 넘어서면 제한속도는 110Km를 가리킨다.

그러나 기흥 IC를 지나 잠시 더 내려간 일정 구간에서는 갑자기 제한 속도가  80Km로 낮아진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렇게 군데군데 제한 속도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왜 하나의 고속도로에 군데군데 제한 속도가 다를까?

물리학에 ‘상-전이’라는 용어가 있다.

상-전이(相-轉移, phase transition)는 통계역학적 계의 매개변수를 바꾸는 과정에서 물리적 성질 가운데 일부가 급격하게 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하나 이상의 제어변수가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벌어지는 시스템 행동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의미한다.

교통공학 연구원들은 이 ‘상전이’ 개념을 이용하여 더 좋은 고속도로를 설계한다.

교통량이 많은 곳에서 ‘제한 속도를 낮추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실제는 이런 조치가 작은 방해 때문에 (운전 초보자가 불필요하게 브레이크를 살짝 밟는 것 같은) 교통 체증이 유발될 가능성을 낮춰준다.

더 나아가 ‘진입로 통제’를 유동적으로 시행하는 고속도로도 있다.

고속도로 내의 차량 밀집도 나 속도가 임계 치에 가까워지면 진입로 신호를 조정하여 일시적으로 새로운 자동차의 고속도로 진입을 줄여 차량 흐름이 임계 치에서 멀어지게 조정하는 것이다. 즉, 상-전이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독일의 고속도로 연구에 따르면 일정 구간의 고속도로에서 ‘트럭 추월 금지조치’는 효과가 있다. 트럭의 흐름을 살짝 저하시키지만 승용차의 흐름은 개선되었다.(‘룬샷’/ 사피 바칼 지음에서 요약)

주식시장에도 투자자의 집단 움직임에 관한 분석을 통한 비슷한 연구 시도가 있는데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닐 존슨은 ‘상전이’의 임계치 분석을 통한 통계물리학 기법을 주식 시장에 적용하려고 오랜 시간 연구를 했으며 이 기법을 온라인 상에서 테러나 집단행동의 예측에 관한 연구로 확대 적용했다.

존슨 교수는 옥스포드 대학교에 재직할 때, 무작위처럼 보이는 숫자들 사이에 물리학 기법을 사용하여 숨은 패턴을 찾아내는 연구를 통해 30년 가까이 게릴라전과 테러리즘, 그리고 집단 투자자 분석을 통한 금융 투자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콜롬비아 내전의 사상자 숫자와 IS 등장 이후 온라인 상에서 가상 테러조직 196개에 접속하는 10만8,086명의 온라인 행태에 관한 데이터를 분단위로 수집하여 이들의 공격 시점을 예측하고 흩어지고 뭉치는 시점을 분석하여 집단행동의 다음 단계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측 자료를 기반으로 테러 조직이 확산되고 행동에 옮기기 전에 슈퍼전파자를 차단함으로써 해당 조직이 자연 붕괴되게 유도할 수도 있게 되었다.

통계물리학계에서 가장 많은 논문 인용수치를 자랑하는 “작은 세상 네트워크”(small-world network)는 인간 관계에서 몇 단계만 거치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인 이론인데,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교수인 던컨 와츠와 그의 지도 교수 스티브 스트로가츠가 ‘작은 세상 네트워크의 집합적 역학’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1998년 네이처지에 발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작은 세상 네트워크 이론’과 산불이나 전염병의 감염 확산을 설명하는 ‘수학적 침투이론’ 그리고 ‘상전이 현상’을 융합하여 기존의 주식 투자자들의 집단 행동을 분석하면 투자자들의 집단행동이 임계치를 넘어서는 시점(즉, 상전이 시점)

다시 말해 뉴튼이 독백처럼 얘기한 “천체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예측할 수 없다”던 집단의 대량 매도나 금번 코로나19 사태로 폭락한 주식을 동학개미들이 대량 매수하는 시점을 예측할 수 있는 기법이 이미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보인다.

세계최고 수준의 자동매매 시스템 펀드인 “메달리온 펀드”를 운용하여 매년 25% 이상의 놀라운 수익률을 30년 넘게 실현하고 있는 미국 르네상스테크놀러지사에서는 이미 이러한 이론을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프로그램화하고 실 거래에 적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새삼 금융투자 회사인 르네상스테크놀러지가 물리학자, 천문학자들을 고용하는 이유가 좀 더 명확해진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 금융투자 회사가 물리학자를 고용하여 투자 기법을 연구하고 투자에 반영한다는 뉴스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기술 굴기를 위해 미국과 일전을 치르고 있는 중국과 전통적 기술 대국 일본 사이에 끼어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우리나라 제조업을 바라보면서 혹시나 금융산업이 그 대안으로 될 것 같다는 기대는 버린지 오래다.

거기에 ‘타다’나 ‘암호화폐’와 같은 새로운 도전이 번번이 기득권 자를 보호하는 규제에 막혀 좌절되는 모습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떠 오르는 것은 필자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인공지능을 이용한 금융시장 예측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 눈에 띄인다는 것은 나름 희망을 가질 만 하다.

정부, 특히 금융당국은 우리나라 게임 업계가 상당기간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찾아 점차 전문화, 인공지능화, 자동화 거래가 심화되고 있는 금융투자 시장의 발전을 위해 이들 스타트업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주길 부탁 해 본다.



신 근 영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