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벼락같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다들 어렵겠지만 나 같은 구멍가게 소상공인들은 더욱 어렵다. 우선 아무리 볼 넓은 걷기 신발이 많이 팔린다 한들 틈새시장 중의 틈새시장이라 한몫 단단히 잡을 만큼 크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팔아 내일 물건 사는 식의 하루살이 비즈니스이다. 우리 동네인 성신여대 먹자거리, 보문시장, 돈암시장의 상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장을 보다 보면 모두 근심 어린 얼굴을 한가득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축 사회가 오네, 기대 감소의 시대가 오네 하면서 사람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손님도 줄어드는 판국에 코로나19는 슬그머니 다가왔다. 아는 사람들이야 알았겠지만 중국 공산당 간부 말고는 대부분은 미국 트럼프나 한국의 문재인조차 오는 줄도 모르게 왔다. 그저 중국에서 몇 사람이 감기 비슷한 폐렴에 걸렸다는 소문만 듣고 꿀 넣은 생강차를 열심히 마시면서 면역력만 높이면 제 까짓게 감히 김치 대왕들인 한국 사람들에게 달려들지 못할 줄 알았다. 그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가 우한이 봉쇄되고 중국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비로소 실감 나기 시작했다. 중국 공장에 주문한 볼 넓은 걷기 신발이 납기를 훨씬 지나고도 배에 실기는커녕 만들지도 못하는 것이다. 자금도 넉넉지 않은데다 시장 규모도 작아 대량 주문이 어려운 상황에서 팔릴 만큼 빠듯하게 주문하던 구멍가게 사장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이랄까 다행이랄까 정부에서 가급적 나돌아 다니지 말라는 정부의 권고에 사람들은 집에 콕 막혀 있기 시작하면서 주문은 줄어들기 시작하고 재고 부족의 염려를 어느 정도는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정부에서 더욱 강력하게 사회적 거리두기, 학교 개학 연기, 교회 예배 연기하기, 신천지 집단 감염 등등이 벌어지면서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아예 온 국민이 돈 쓸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라에서도 경제가 돌아가지 않아 걱정이지만, 사람 목숨이 먼저라고 하니 달리 할 말도 없게 되었다. 여러 가지 소상공인 지원금이 나온다지만 나같이 이리저리 빚 투성이인데다 신용불량을 겨우 벗어난 구멍가게 장사꾼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게 전부이다. 그나마 얻어걸린 게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정도이다. 빨리 이런 상황이 풀렸으면 좋겠지만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를 상황이다. 끝을 알기라도 하면 버틸 방도라도 만들 텐데 그마저 불확실하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는 오히려 코로나19가 4차 산업 혁명을 더 빨리 끌어당길 거라며 그 사이에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오프라인 매장을 주로 하는 구멍가게들은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남의 나라, 하늘나라 이야기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여기저기에다 글을 쓰면서 내 볼 넓은 발등높은 필맥스 맨발 신발 사세요~하며 소리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뭐라도 방도를 만들어야 하겠다 싶어 나름대로 기회와 위기 분석을 해보았다. 필맥스(FEELMAX)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순발력이다. 하긴 아내와 둘이 하는 구멍가게가 방향 전환하는데 어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다. 직원이 대여섯 명 만되도 업종 전환 등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기가 만만치 않지만 1인 기업이나 마찬가지인데 순발력 빼고 무엇이 있겠나 싶다. 문제는 무엇을 해도 늘 부족한 자금력이 최대의 약점이다. 기회라고는 이미 15년 이상 해온 온라인 비즈니스 기회의 확대가 기회라면 기회이고, 대신에 오프라인 기회 축소가 위기라면 위기이다. 이를 조합해서 SWOT 분석을 해보니 위의 그림처럼 나온다. 결론은 새로운 사업 분야를 벌리기보다는 기존 상품의 유통경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격적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아마 다른 구멍가게 사장들도 그러지 싶다. 당분간은 걷기 신발과 양말 두 개로 발바닥에 관한 비즈니스를 열심히 해야 할 듯하다.
일주일간 여수를 다녀왔다.낯선 곳에서 한 달을 살면 책을 쓰고, 해외에서 몇 년을 살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기에, 짧은 체류에도 여수 사용설명서라는 다소 도발적인 글을 쓸 수 있으리라.여수에서의 일주일은 우연처럼 다가왔다.시작은 행정안전부의 '다시 활짝' 재도전 프로젝트이다. 서울의 50플러스 중장년 10명이 여수의 청년 10명과 함께 멘토링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에서는 '세컨드투모로우'가, 여수에서는 '여수와'가 공동 기획하여 중장년과 청년이 서로에게 묻고 대답하면서, 결국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현지 체류형 프로그램이다.장소에 대한 기억은 사람과 함께하여야 더욱 강렬해진다. 사람이 없고, 장소만 있는 여행은 휘발성이 강하다. 장소와 사람에 대하여 모두 이야기 하려고 한다.여수의 풍경은 낮과 밤이 다르고, 평일과 주말이 다르다.일주일 단기 체류자의 설익은 조언은 다음과 같다. 여수의 속살을 경험하고 싶으면 평일의 여수를 방문하고, 주말이 오기 전에 여수를 떠나라.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여수 주민들의 삶에 들어가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주말 여수의 밤바다는 열정과 젊음의 장소이지만, 외지인들의 홍수로 진정한 여수를 즐기기 어렵다.여수의 보통 사람들여수의 사람들을 만나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여수의 버스는 서울과는 다르다. 한번 버스를 놓치면 15분 이상을 기다려야 하고, 30분 이상을 기다리기도 한다. 버스는 엄청나게 많은 정류장을 빠르게 지나간다. 인구 27만의 여수는 지방에서는 큰 도시이지만, 현실적으로 버스가 자주 다니기에는 어려운 곳이다. 정류장마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어느 곳인지 알려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들은 야단이 ‘생각이 없다’였다. 조금 약한 핀잔은 ‘생각이 짧다’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였다. 가장 심한 욕은 ‘생각 없는 놈 같으니라고’였다. 야단칠 때는 언제나 “사람은 딱 생각한 만큼만 행동한다.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고 마무리 지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듣고 자라 토씨까지 외운다. 말귀를 알아듣기 전부터도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나 “그렇게 생각해서 행동하는 거다”라는 최고의 칭찬을 듣고부터 ‘생각’이 비로소 내 귀에 들어왔다. 원주에 사시는 친척 집에 아버지 편지 심부름을 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잘 찾아가 전달했다. 문제는 오는 길에 생겼다. 원주에서 제천역에 내려 기차를 갈아탈 때 시간이 남아 역 승차장에서 파는 가락국수를 사 먹느라 기차를 놓쳐버렸다. 마지막 기차를 눈앞에서 떠나보내고 한참을 울었다. 역에 불이 들어올 때 집 쪽으로 가는 홈에 낯익은 화물열차가 정차해 있는 걸 보고 몰래 올라탔다. 내가 내릴 역을 통과한 화물열차는 터널 입구 언덕에서는 힘이 부쳐 걷듯 달렸다. 전에 아이들이 타고 내리는 걸 봤던 대로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넘어지긴 했지만, 무릎에 상처가 났을 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눈을 흘기며 나를 반겼다. 꿇어앉아 그날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 아버지가 “잘 생각해서 잘했다”라고 칭찬했다. 아버지는 “넘어졌을 땐 바로 일어나지 말고 왜 넘어졌는지를 반성하고, 어떻게 일어날지를 먼저 생각해라”라며 “누구나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