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여음(餘音)]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사설(辭說)]


1절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2절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3절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4절


산천에 초목은 젊어나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태헌의 한역]


阿里郎(아리랑)



【餘音(여음)】


阿里郎阿里郎哦囉哩(아리랑아리랑아라리)


郎君越過阿里郎山嶺(낭군월과아리랑산령)



【辭說(사설)】


郎君棄我離我側(낭군기아리아측)


未行十里足生病(미행십리족생병)



靑天虛空星辰多(청천허공성진다)


吾輩人生心語盛(오배인생심어성)



豊年云來豊年來(풍년운래풍년래)


槿域江山總歲登(근역강산총세등)



山川草木益少柔(산천초목익소유)


人間靑春漸老硬(인간청춘점로경)



[주석]


* 阿里郎(아리랑) : 우리 민요 ‘아리랑’의 한자어 표기.


◎ 餘音(여음) : 시가(詩歌)나 노래에서 본 가사의 앞, 뒤, 가운데에 위치하여 의미 표현보다는 감흥과 율조에 영향을 미치는 어절이나 구절을 이르는 말이다. 오는 위치에 따라서 앞 여음[初斂], 가운데 여음[中斂], 뒷 여음[後斂]으로 나누어진다.


哦囉哩(아라리) : 아라리의 한자어 표기.


郎君(낭군) : 여음 부분에서 생략된 것으로 추정하여 보충한, 우리말 ‘님’에 해당하는 한자어이다. / 越過(월과) : ~을 넘어가다. / 阿里郎山嶺(아리랑산령) : 아리랑 고개.


◎ 辭說(사설) : 시가(詩歌)나 노래에서의 본 가사.


棄我(기아) : 나를 버리다. / 離我側(이아측) : 내 곁을 떠나다.


未行十里(미행십리) : 아직 10 리도 가지 못하다. / 足生病(족생병) : 발에 병이 생기다.


靑天(청천) : 청천, 푸른 하늘. / 허공(虛空) : 허공, 하늘. / 星辰多(성진다) : 별들이 많다.


吾輩(오배) : 우리, 우리들. / 人生(인생) : 인생살이, 사람살이. 원문의 ‘살림살이’를 역자는 이렇게 이해하였다. / 心語盛(심어성) : 마음속의 말이 많다. 곧 할 말이 많다.


豊年(풍년) : 풍년. / 云來(운래) : 온다고 하다. ‘云’을 조사로 보아 ‘오다’는 뜻으로만 보아도 무방하다. / 豊年來(풍년래) : 풍년이 오다.


槿域江山(근역강산) : ‘槿域’은 과거에 우리나라의 이칭으로 쓰던 말로 무궁화가 많이 피는 땅이라는 뜻이다. 역자는 이 말로 ‘삼천리 강산’의 ‘삼천리’를 대신하였다. / 總(총) : 모두, 다. / 歲登(세등) : 풍년, 풍년이 들다.


山川草木(산천초목) : 산천의 초목. / 益(익) : 더욱. / 少柔(소유) : 아래의 ‘老硬’과 짝을 맞추어 젊어 부드럽다는 뜻으로 사용하였지만, 그냥 젊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人間靑春(인간청춘) : 인간세상의 청춘. 곧 인간세상의 젊은이들. / 漸(점) : 점점, 점차. / 老硬(노경) : 위의 ‘少柔’와 짝을 맞추어 늙어 딱딱하다는 뜻으로 사용하였지만, 그냥 늙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직역]


아리랑



【여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님이)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사설】


1절


님이 날 버리고 내 곁을 떠나니


십 리도 못 가 발에 병이 나리라



2절


푸른 하늘 허공에는 별도 많고


우리네 인생살이 맘속 말도 많다



3절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오네


무궁화 강산이 모두 풍년이네



4절


산천에 초목은 더욱 젊어지는데


인간 세상 청춘은 점점 늙어가네



[한역 노트]


이 칼럼의 제목이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인데 오늘은 아주 특별하게 <아리랑>의 가사(歌詞)를 한역한 시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역자가 다소 무모하게 이 일을 시도하게 된 까닭은 한 열정적인 독자분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공이 공학(工學) 쪽이면서도 우리 고대사(古代史)와 한시(漢詩)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고 소양도 매우 깊은 동서대(東西大) 이훈재(李焄宰) 교수께서 역자에게 <아리랑>의 한역을 제안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그 임시에 역자가 바로 확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정도를 넘어 남한과 북한의 통일 국가(國歌)로 일컬어질 정도의 민요라면, 역자와 같은 소가(小家)가 아니라 어느 대가(大家)께서 번역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 어느 대가도 여태 번역을 한 것이 없는 듯하고, 또 무작정 어느 대가의 작업을 기다릴 수만도 없는 듯하여 마침내 용기를 내어 시험 삼아 번역을 해보게 되었다.


역자가 한역(漢譯) 저본으로 삼은 <아리랑>은 가장 대중적인 <아리랑>이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명 ‘나운규(羅雲奎) 아리랑’으로 일컬어지는 <본조(本調) 아리랑>이다. 이 <본조 아리랑>은 경기 아리랑을 계승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26년에 서울 단성사(團成社)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무성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서 제작자 나운규 선생과 단성사의 음악대에 의해 만들어진 곡으로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그러나 특히 사설(辭說) 부분이 완벽하게 나운규 선생의 창작이라 하더라도, 이 노래는 세상에 발표된 직후부터 우리 겨레의 노래가 된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아리랑>의 대성공에 힘입어 식민지 조국의 선조들 가슴에 음표를 깊이 새긴 이 노래는, 우리 선조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우리 선조들과 애환을 함께하였다. 그리하여 남태평양 외딴섬에 사는 조선 징용군 후손들에게도, 러시아의 고려인(高麗人) 후손들에게도 이 ‘아리랑’은 유전자처럼 각인되어 오늘까지도 불리고 있다. 그러니 어찌 우리 겨레의 노래가 아니겠는가!


‘아리랑’과 ‘아라리’의 뜻이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만큼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는 것 역시 한 가지로 정해지지 않은 듯하다. 황현(黃玹) 선생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아리랑을 ‘阿里娘’으로 표기하였는데, 오늘날에는 보통 ‘阿里郎’으로 적고 있다. 그리하여 역자는 아리랑은 ‘阿里郎’으로, 아라리는 일단 황현 선생의 표기인 ‘哦囉哩’를 따랐다. 아리랑 고개는 ‘阿里郎’에 고개를 뜻하는 한자어인 ‘山嶺’을 더하여 에멜무지로 ‘阿里郎山嶺’으로 옮겨보았다.


역자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본조 아리랑>의 정전’으로 얘기한 4절까지의 사설(辭說)을 여음(餘音)과 함께 한역하였다. 여음 부분은 구언(九言)으로 이루어진 두 구로 옮기고, 사설 부분은 각 절 별로 칠언(七言) 두 구로 옮겼는데, 모두 짝수 구에 압운하였다. 여음 부분의 압운자는 ‘嶺(령)’이고, 사설 부분의 압운자는 ‘病(병)’과 ‘盛(성)’, ‘登(등)’, ‘硬(경)’이다.


♣ 여적(餘滴) : 역자에게는 아주 특별한 독자가 두 분이 있는데 이훈재 교수가 그 가운데 한 분이다. 이 교수는 역자가 집필한 칼럼에 대해, 정확하게는 역자가 한역한 한시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비교적 긴 비평을 작성하여 역자에게 보내주셨다. 역자에게는 지음(知音)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역자는 아직껏 이 교수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멀지 않은 날에 뵙게 되면 밤을 새워가며 시를 얘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나머지 한 분 특별한 독자 얘기는 다음 기회에 들려드리도록 하겠다.


2020. 4. 28.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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