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꽃의 마중, 신지영

꽃의 마중



신지영



꽃은 걷지 못해 향기를 키웠지


먼 데 있는 벌더러


잘 찾아오라고



마음으로는 백 리라도 걸어 마중 가겠지만


발로는 걸어갈 수 없으니


향기로 마중 나갔지



[태헌의 한역(漢譯)]


花之出迎(화지출영)



花葩不步養芬馨(화파불보양분형)


遙使遊蜂識道程(요사유봉식도정)


心也甘行百里遠(심야감행백리원)


難能脚走以香迎(난능각주이향영)



[주석]


* 花之出迎(화지출영) : 꽃의 마중. ‘之’는 ‘~의’에 해당되는 구조 조사이다. ‘出迎’은 마중을 나가거나 나가서 마중함을 뜻하는 말이다.


花葩(화파) : 꽃. / 不步(불보) : 걷지 못하다. / 養芬馨(양분형) : 향기를 기르다. ‘芬馨’은 꽃다운 향기, 곧 아름다운 향기라는 뜻이다.


遙(요) : 멀리, 아득히. / 使遊蜂識道程(사유봉식도정) : 꿀벌로 하여금 길[여정]을 알게 하다. ‘遊蜂’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꿀벌을 가리키는 말이고, ‘道程’은 여행 경로나 길을 가리키는 말이다.


心(심) : 마음, 생각. / 也(야) : 주어나 목적어[빈어] 뒤에 쓰여 앞말을 강조하는 조사(助詞). / 甘行(감행) : 기꺼이 가다. ‘甘’은 ‘달게, 기꺼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 百里遠(백리원) : 백 리 멀리까지.


難能脚走(난능각주) : 걸어서 가기가 어렵다, 걸어서 갈 수가 없다. / 以香迎(이향영) : 향기로 맞이하다, 향기로 마중하다.



[직역]


꽃의 마중



꽃은 걷지 못해 향기를 키웠지


멀리 꿀벌더러 길을 잘 알라고


맘은 백 리 멀리도 달게 가겠지만


발로 갈 수 없어 향기로 마중했지



[한역 노트]


트로트 가수 나훈아씨가 노래하고 작사와 작곡까지 하였던 <잡초>라는 가요의 가사에서 잡초는 발이 없어 님 찾아갈 수도 없고, 손이 없어 님 부를 수도 없다고 하였지만, 꽃은 다행히 향기가 있어 님을 부를 수가 있다. 과학자들의 실험에 의하면 공기 분자 10억 개 안에 꽃향기를 내는 분자가 단 한 개만 있어도 꿀벌은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꽃이 들려주는 희미한 밀어(蜜語)를 먼 데 있는 님인 벌이 듣고 불현듯 찾아오면, 꽃의 연애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꽃은 연애를 하며 꿀을 주지만 벌에게 화분(花粉)을 나르게 한다. 꽃과 벌의 연애조차 공짜가 아닌 것이다. 꽃이 달콤한 향기로 벌을 부르는 것과 벌이 그 향기를 따라 꽃을 찾아가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이자 숭고함이다. 세상사 무엇이 저절로 생겨나겠는가? 시인의 얘기처럼 꽃이 향기로 벌을 마중하지 않는다면, 벌이 어찌 저 외진 들녘까지 찾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꽃의 마중은 소중한 것이다.


꽃향기가 좋던 어느 해 봄날에 역자가 호젓한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아래와 같은 시구를 얻었다.



花留其所香浥世(화류기소향읍세)


꽃은 그 자리에 머물지만 향기는 세상을 적신다



너무도 기분이 좋아 바로 몇몇 SNS 동호회에 올렸더니 벗 하나가 즉각적으로 이를 패러디한 댓글 하나를 달아주었다. 그 순발력도 순발력이지만, 그 의미가 범상치 않아 임시에 한시 구절로 만들어 메모장에 저장해두었던 것을 이제 다시 꺼내본다.



똥은 그 자리에 있지만 악취는 하늘에 닿는다


糞在其所臭薄天(분재기소취박천)



내용이 다소 뭣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역자가 생각하기에는 지금에도 정말 무서운 얘기로 들린다. 사람이 풍기는 냄새가 꽃처럼 아름다운 향기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사람에 따라서는 똥과 같은 악취를 풍기기도 한다. 어디 한 개인만 그러겠는가? 한 집안이 그럴 수도 있고, 한 집단이 그럴 수도 있으며, 또 한 나라가 그럴 수도 있다. 풍기는 것이 악취라면 그것이 개인이든 집안이든 집단이든 나라든 슬프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작으로 더 슬픈 것은, 자신이 풍기는 것이 역겨운 악취가 아니라 고상한 향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풍기는 냄새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판단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고 내 편이 아무리 향기라고 우겨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쪽에서 악취라고 한다면 그건 악취가 맞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늘 겸손해 하면서 자신의 향기를 가꾸는 사람들 앞에 서면 역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봄날의 어느 꽃인들 그보다 아름다울 수가 있으랴! 저마다 인생을 살며 향기의 뜰을 가꾸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여도 우리가 포기하지 못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2연 6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칠언절구(七言絶句)로 한역하였다.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馨(형)’·‘程(정)’·‘迎(영)’인데 ‘馨’은 인운자(隣韻字:이웃한 운자)이다.


2020. 3. 31.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