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흑과 백!
<프롤로그>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고 소통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결별밖에는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긴 삶 속에서 싫어도 같이 가야 할 운명적인 관계는 있는 법이다. 그때는 최악의 상황(무인도에 두 사람만 갇혔다. 막강한 공동의 적을 상대해야 한다)을 가정하고 관계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아카데미 각본상과 촬영상을 받은 영화 <흑과 백(The defiant ones), 1958 >에서도 절대로 친해질 수 없는 두 사람이 만나 수많은 역경을 같이 헤쳐가는 여정에서 결국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도 불편한 관계로  힘든 상대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 뜻밖의 선의를 베푸는 낯선 모험을 시도해 보길 바란다.  언젠가 그 사람이 당신을 위기에서 구해줄 소중한 사람으로 재탄생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흑과 백!
<영화 줄거리 요약>
캄캄한 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죄수 호송 트럭이 언덕에 구르는 사고가 난다. 이때를 틈타 쇠사슬로 묶인 흑과 백 두 사람이 탈주하게 된다. 관계가 좋지 않던 흑인 ‘노아 컬린(시드니 포이티어 분)’과 백인 ‘조 잭슨(토니 커티스 분)’은 험난한 탈주 여정에서 서로 협력하여 극복해 나가면서 점차 친해지게 된다. 두 사람은 야간에 주유소에 잠입하여 먹을 것과 쇠사슬을 끊을 도구를 찾는다. 그러나 인부들에게 붙잡혀 집단 린치를 당할 위기에서 간신히 도망치게 되지만 두 사람의 갈등은 최고치에 달해 서로 쇠사슬을 찬 체 증오에 가득찬  격투를 벌이게 된다. 그 후 외딴 마을에서 아들을 데리고 사는 여인 집에서 도움을 받아 쇠사슬을 자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잘생긴 백에게 연정을 품은 외롭던 여인이 백과의 도망을 제의하자, 흑은 여인이 가르쳐 준 대로 각자 헤어져 길을 가게 된다. 흑이 떠난 후 여인은 자신이 흑에게, 추격하는 보안관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으로 험한 길을 가르쳐주었다며 실토하고 백은 그녀를 버리고 흑을 구하기 위해 뛰쳐나가게 된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흑과 백!
<관전 포인트>
A. 흑과 백이 탈주의 여정에서 관계가 깊어지는 계기는?
탈주 후 깊은 갈등을 겪게 되지만, 물살이 거센 계곡을 건너면서 서로 목숨을 구해주고, 깊은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때도 힘을 합치게 된다. 또한, 과거 흑이 일하던 주유소에 먹을 것과 체인을 자를 도구를 구하러 갔다가, 인부들에게 잡혀 린치를 당하게 될 위기에 처했지만, 마침 인부들의 대장이 과거 죄수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 그들을 몰래 탈출시켜주게 된다. 상처에 감염된 백의 손을 흑이 진흙을 발라 치료해주는 등 극한의 탈출 과정에서 서로의 생명을 지켜주는 관계로 거듭나게 된다.

B. 영화의 원제< The defiant ones>처럼 흑과 백이 가지는 반항심의 이유는?
@흑: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흑인이라는 차별에 시달려왔기에 백인 중심사회에 강한 반항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일하던 농장의 관리인 백인 지주에게 대들다가 살인미수죄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 항상 이글거리는 눈으로 백인사회를 혐오하기에 그런 심정을 한과 억울함이 맺힌 노래에 담아 자주 부르게 된다.  “오래전에 떠났지 녀석은 운도 좋아, 켄터키로 멀리 떠났네, 재봉틀 바느질이 너무 빨라 열한 땀을 꿰매네, 새끼 고양이의 꼬리에/내게 뭐가 남았나 봐, 잭! 감옥살이 20년 동안 비지땀 흘리며 돌이나 깨지, 멤피스에서 온 판사가 내게 판결을 내렸지, 그 자식을 다시 만나면 다시는 집에 못 가게 해줄 거야, 그 판사 놈은 오래전에 떠났어! 켄터키로, 이젠 놈도 심술 안 부리겠지!”

@백: 열심히 살았지만, 항상 돈 많은 사람에게 굽신대며 사는 게 너무 싫었던 백은 자신의 꿈인 “주말에 술집에서 아가씨를 꿰찬 킹카가 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강도질을 하다가 감옥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그는 “Thank you sir”라는 말을 들으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불쾌감과 거부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둘 다 사회가 격리해야 할 흉악범이라기보다는 각박한 사회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의 모습이다.

C. 마지막 백이 여자를 버리고 흑에게 달려가는 이유는?
여자가 흑에게 기찻길로 가는 길을 거짓으로 가르쳐준 것을 알고 어느새 우정으로 친해진 흑이 위험에 처할까 봐 여자를 버리고 흑을 구하러 달려가게 된다. 하지만 여인의 아들에게 총을 맞은 백은 “난 안 되겠어”라고 하자 흑은 “어서, 너와 나는  아직 체인에 매여 있잖아”라며 뜨거운 우정의 손을 내민다. 화물열차에 먼저 오른 흑이 손을 뻗어 백의 손을 잡았지만, 백은 그만 기차에서 떨어지고 만다. 이때 흑도 아직도 쇠사슬이 연결된 것처럼 같이 굴러떨어지고, 서로 담배를 피우며 위로를 하는 사이, 보안관이 다가와 그들을 체포하게 된다.

D. 보안관이 보여주는 휴머니즘은?
두 도망자를 쫓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딫히자, 냉혈한 블라이 지구대장은 맹견인 도베르만을 풀어 도망자를 살상하자고 한다. 이에 뮬러 보안관은 자신의 임무는 도망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고 잡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만약 지구대장이 도베르만을 푼다면 권총으로 개들을 쏘겠다고 경고한다. 결국 도베르만 대신 ‘블러드하운드’ 등 추격견을 활용하게 된다.

E. 이 영화처럼 커플의 우정을 보여준 영화는?
@ 텍사스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올라온 시골 청년 ‘존 보이트’와 사기꾼 ‘더스틴 호프만’의 우정을 그린 <미드나잇 카우보이(Midnight cowboy, 1969>
@ 서부를 주름잡던 산골짜기 갱단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낭만적이지만 내일이 없는 우정을 그린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70>
@부인의 살해범이라는 누명을 쓴채 도망자 신세가 된 저명한 외과 의사 ‘해리슨 포드’와 자신을 쫓지만 동시에 무죄를 교감하기도 하는 연방경찰 ‘토미 리 존스’와의 정의 두사람을 그린 영화 <도망자(The fugitive), 1993>
@페덱스 물류회사 직원이었던 ‘톰 행크스’가 비행기가 사고로 무인도에 4년이나 갇히면서 배구공 ‘윌슨’과의 웃픈 우정을 그린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2000>
@만년설로 뒤덮인 브로크백 마운틴 양 떼 방목장에서 함께 일하게 된 두 청년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다룬<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흑과 백!
<에필로그>
이인삼각 달리기경기에서 상대와 호흡을 맞추지 못하면 서로의 발에 걸려 넘어지게 되지만, 사전에 규칙을 협의하고 적극적으로 협동하면 골인 지점에 1등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인생에 있어 친구, 가족, 회사 동료 사이에서 서로 맞지 않는 관계를 경험하기도 하고,  그런 관계에서 성과를 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흑과 백>에서도 혐오와 증오로 가득 찬 두 사람이 함께 쇠사슬에 묶였다는 사실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같이 행동하는 여정에서,  흑과 백이라는 피부색의 편견에서 벗어나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자신을 희생할 만큼 인간적으로 소통해 가는 과정을 보며 치유가 불가능한 관계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힘든 인간관계라도 역지사지를 통해 먼저 다가가고 따뜻하게 배려한다면 분명 더 큰 협력과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