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의 셀프 리더십] 모범(模範)이 망가지면 모범(模範)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중국 우한 발 “코로나 19”로 인해 위험을 체감하는 공포 지수가 높아졌다. 그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공공장소엔 중국을 다녀온 적이 있는지 확인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크고 작은 모임도 줄줄이 취소되었다. 사람 간 접촉을 차단하다 보니 경제적 생산성까지 걱정하는 상황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19”가 인간의 일상적 삶을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매뉴얼의 나라 일본이 심상치 않다. 섬 전체가 화산대에 걸치다 보니 크고 작은 재난 재해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일본은 재난 극복 매뉴얼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한 나라로 인식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매뉴얼의 나라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위기관리 능력이 어설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오염 수를 바다에 버리겠다는 결정도 그렇고, 도쿄 올림픽 선수단에게 후쿠시마 식재료를 제공하겠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중국 우한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데려오면서 격리는커녕 공항에서 집으로 돌려보낸 조치도 납득할 수 없다. 요코하마 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 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확진 자가 발생했음에도 초기 대응을 소홀히 해 수백 명의 확진 자를 만드는 상황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가 찰 일은 크루즈 선내에서 발생한 코로나 19 확진자는 국가별 확진자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상한 셈법이다.

가령 일본 근해에서 잡힌 수산물 중 이상 있는 생물을 타국 사람이 잡으면 일본산이 아니라고 우겨도 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본질은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는 일이다. 하지만 취하는 조치를 보면 자국민의 안전보다 집권당의 정치적 손익만 계산하는 이상한 리더십이 엿 보인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리더십에 브레이크를 걸거나, 각성을 요구하는 그 어떤 국민적 행동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무관심의 극치라고 해야 할까? 편향적 우익 정치의 폐단으로 봐야 할까? 자국이 어떤 상황에 빠져 있는지? 또 자국 리더가 취하는 조치가 주변국과 어떤 마찰을 야기하는지 예측하고 판단하고 비판하면 애국심이 없다고 인식하는 것일까?

“모범(模範)이 망가지면 모범(模範)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 국가를 이끄는 수반이 맑아야 그를 돕는 행정부가 깨끗한 법이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모범을 보이라고 하면, 오히려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리더의 눈치를 살피면서, 불리한 것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문서를 파쇄하는 일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일본이 일하는 방식이라면 누구도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은 없어진다. 그들이 일하는 이상한 모범 답안이 소속 집단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소꿉장난을 예로 들어보자. 늘 싸우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의 소꿉장난을 보면 아버지는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술주정을 하고, 엄마는 거슬리는 말투로 남편을 치받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가르치는 부모는 세상에 없겠지만 알게도 가르치고, 모르게도 가르치는 부모는 많다(정작 자신은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리더도 마찬가지다. 이미지가 곧 영향력이고 호소력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리더가 보여주는 모습에 근거해, 형세를 판단하기 때문에 행동은 물론, 말투나 농담에 이르기까지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상시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정도를 말하면서 행동은 그와 상반되는 이상한 모범(模範)을 보인다면 그때부터는 리더라고 할 수 없다.
[이종범의 셀프 리더십] 모범(模範)이 망가지면 모범(模範)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