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근영의 Trend 토파보기] 페이스북의 타산지석(他山之石)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페이스북 본사 입구에는 페북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엄지 척’  즉 ‘좋아요’ 표시가 크게 붙은 입간판(立看板)이 서 있다.

그런데 이 간판을 자세히 보면 기존 간판에 천으로 뒤집어 씌워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얼마전 한국 금융ICT융합학회 회원들과 함께 페이스북 본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페이스북 본사 건물을 방문했을 때 함께 간 다른분들은 대부분 눈치채지 못했지만 필자는 ‘좋아요’ 입간판의 뒷면을 보면서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그 입간판 뒤쪽에서 우리가 방문한 페이스북 사옥 건물이 원래 2000년대 중반까지 아주 잘 나가던 IT 기업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사옥이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자바로 유명했던 중 소형 서버 전문 하드웨어 업체로 UNIX 계열의 서버를 전문으로 개발 판매하던 회사다.

2000년 초기까지 전 세계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한때 기세등등하게 잘 나갔으나 닷컴 붐 소멸 이후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특히 썬의 야심작이었던 SPAC 계열의 워크스테이션들이 인텔 계열 서버에 성능이나 사용상의 편의성면에서 밀리면서 판매에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설립자이자 CEO인 ‘스콧 맥닐리’는 마이크로소프트(MS)를 너무 싫어했는데  MS의 자바 특허 침해사건에 강력한 법적 대응으로 20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받아낸 적도 있다.

그리고 MS 운영체제로의 종속을 피하고자 자체적으로 썬OS와 솔라리스 같은 운영체제까지 개발하며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유닉스 서버 사업의 실패로 자바에 관심이 많던 오라클에 매각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썬이 어려움을 겪던 당시, 반대로 승승장구 하던 페이스북이 사세 확장으로 인원이 늘면서, 마운틴 뷰에 있는 여러 건물을 매입하면서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사옥도 매입하여 본사 건물로 지금껏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썬의 사옥을 매입하면서 진입도로 입구에 서 있던 썬 로고가 크게 새겨진 입간판을 철거하지 않고 썬의 간판위에 천으로 덧씌워 지금껏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입간판 뒷면에 있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로고를 그대로 남겨 두었다.

페이스북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간판 비용을 아끼느라 남이 쓰던 입간판에 천을 덧씌워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산업 Trend와 소비자 Needs가 바뀌고, 기술적 변화로 시장의 근간이 급변하는 시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사라진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경영진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가 썬의 입간판을 그대로 남겨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대부분 실패한 기업의 이미지는 재수없다는 생각에 M&A 로 인수한 기업이라도 어떻게 하던 실패한 기존 기업의 로고나 이미지를 없애려고 노력하며, 피 인수기업의 로고나 회사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에 ‘미래에셋 대우’ 그리고 ‘KEB하나은행’ 등이 흡수 합병된 기업의 이름을 앞 뒤에 붙여 사용하고 있지만 관계자들의 눈치를 보기위해 남겨놓은 것으로 보일 뿐, 언론을 통해서도 기존 기업과의 특별한 의미를 담아 보존한다는 얘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사업 실패는 형사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으며, 온갖 사회적 비난과 평생 실패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다.

이러한 우리사회 특유의 실패자에 대한 백안시 풍토은 결국 실패한 기업으로부터 배울게 없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산의 하찮은 돌맹이 하나(他山之石)라도 내 산의 옥(玉)을 다듬는데 사용되면 귀중한 것이다.

실패한 기업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스스로 자만하지 않겠다는 페북 경영진들의 무서운 내공이 읽혀지는 입간판을 보면서 이를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배웠으면 한다.

정상에 오른 후에도 지속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페북의 성공 철학은 이렇게 입간판 하나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주: ‘토파보기’란 샅샅이 파헤쳐 살펴본다는 ‘톺아보기’에서 나온 순수 우리말입니다.)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신 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