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또 다른 사랑, 곽재구

또 다른 사랑



곽재구



보다


자유스러워지기


위하여


꽃이 피고



보다


자유스러워지기


위하여


밥을 먹는다



함께 살아갈 사람들


세상 가득한데


또 다른 무슨 사랑이 필요 있으리


문득 별 하나 뽑아 하늘에 던지면


쨍 하고 가을이 운다



【태헌의 한역(漢譯)】


別外情人(별외정인)



愈得自由花開綻(유득자유화개탄)


愈得自由人食飯(유득자유인식반)


相與居人盈四垠(상여거인영사은)


何須別外有情人(하수별외유정인)


忽拔一星投靑冥(홀발일성투청명)


作音響亮素秋鳴(작음향량소추명)



【주석】


* 別外(별외) : 따로, 별도의. / 情人(정인) : 사랑하는 사람, 사랑.


愈得自由(유득자유) : 더욱 자유를 얻다, 더욱 자유스럽게 되다. / 花開綻(화개탄) : 꽃이 피어나다.


人食飯(인식반) : 사람이 밥을 먹다.


相與(상여) : 서로 더불어, 함께. / 居人(거인) : 사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 / 盈(영) : 가득하다, 가득 차다. / 四垠(사은) : 사방의 경계, 온 세상.


何須(하수) : 어찌 반드시 ~, 어찌 꼭 ~.


忽(홀) : 문득. / 拔(발) : ~을 뽑다, ~을 빼다. / 一星(일성) : 하나의 별, 별 하나. / 投(투) : 던지다. / 靑冥(청명) : 짙푸르고 아득한 곳, 푸른 하늘.


作音(작음) : 소리를 내다. / 響亮(향량) : 소리가 맑고 낭랑하다. 쨍, 쨍그랑. / 素秋(소추) : 가을. 오행설(五行說)에서, 가을이 금(金)에 속하고 색은 흰색이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 鳴(명) : 울다.



【직역】


별도의 사랑



더욱 자유롭고자 꽃은 피고


더욱 자유롭고자 사람은 밥을 먹는다


함께 살아갈 사람들 세상에 가득한데


어찌 따로 사랑이 있어야 하랴!


문득 별 하나 뽑아 하늘에 던지면


쨍 소리를 내며 가을이 운다.



【漢譯 노트】


식물이나 사람이나 최소한의 기본적인 요건이 충족되었을 때만이 비로소 자유로울 수가 있다.


식물에게 자유를 얘기하는 것이 우습게 들릴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식물들이 꽃을 피운 후에 최종적으로 열매를 맺기 위하여 주변의 악조건들과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식물들은 그렇게 열매를 맺고 그것을 성숙시킨 뒤에 얼마간의 자유를 누리다가 생을 마감하거나 다음 해를 준비한다. 그러므로 꽃이 꽃을 피우는 것은 자유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


사람은 어떨까? 밥도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유와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얘기한다는 건 한 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다행스럽게도 사람에게는 함께 살아갈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그리하여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외롭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신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 외로움은 피해가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곤고하게 사는 사람들의 서글픈 고독사와 같은 것이 그런 외로움의 극단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 세상에 있어 ‘또 다른 사랑’은 필요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 그 ‘또 다른 사랑’은 ‘함께 살아갈 사람들’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냐고 따지며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다. 역자가 보기에 그 ‘또 다른 사랑’은 이성(異姓)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또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또 다른 사랑’은 로망(roman)이나 꿈, 이상(理想) 등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한역시에서는 일단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情人(정인)’으로 번역해두었다.


그런데 그 ‘또 다른 사랑’이 있으면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시인은 이에 대한 언급 없이-언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소 엉뚱하게 별을 뽑아 하늘에 던지면 가을이 운다고 하였다. 역자는 별을 뽑아 하늘에 던지는 행위를 외로움의 한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2행을, 내가 외로움을 표시하니 가을(하늘)이 여기에 응답하더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이 대목에서 시인이 설정한 최소한의 인과관계는, 역자에게는 ‘또 다른 사랑’이 필요하다는 역설(逆說)로 들린다. 역자의 이러한 해석 때문에 시인이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는 시인이 쓰는 것이지만, 감상은 독자가 하는 것이니까…… ^^


3연 13행으로 이루어진 원시(原詩)를 역자는 6구의 칠언고시(七言古詩)로 재구성하였다. 한역시는 매구(每句)마다 압운(押韻)하였지만 각 2구씩 운(韻)을 달리 하였다. 이 시의 압운자는 ‘綻(탄)’·‘飯(반)’, ‘垠(은)’·‘人(인)’, ‘冥(명)’·‘鳴(명)’이다.


2019. 10. 8.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