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와 함께 꽤 유명한 뮤지컬을 보러 갔다.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작품이어서 언젠가는 꼭 보려고 했던 공연이었고, 공연장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마음이 설렜다. 한국 배우들이 번안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영국에서 온 오리지널 팀이 직접 연기를 하는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공연 시작 십 오분 전부터 극장 안으로 관객이 들어 갈 수 있도록 문이 개방되었다. 좌석표를 확인하고 내 자리에 앉았고 드디어 화려한 음악과 함께 연기자들의 멋진 춤이 시작되었다. 화려한 조명과, 밴드가 직접 연주하는 음악, 그리고 연기자들의 노래가 어우러져 감동의 도가니로 들어서려는 순간, 어떤 사람의 엉덩이가 내 뒤통수를 툭 치고 지나갔다. 부딪힌 부위가 엉덩이인지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짐작하건대 늦게 들어 온 관객이 내 등뒤로 들어가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 몇 분간 불쾌한 기분이 지속되었고 공연의 재미는 반감되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이번에는 내 앞줄로 남녀 한 쌍이 앞을 가리며 자리를 찾아 들어 갔다. 몇 초 동안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역시 내 눈에서 공연의 장면은 사라지고 말았다. 불쾌를 넘어 짜증이 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배우나 가수의 공연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극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어쩌면 너무나 익숙한 것이어서 우리의 감정은 이런 광경에 이미 무뎌져 있는 거 같다. 관람시간에 늦으면 입장을 안 시키거나 1부가 끝나고 주어지는 휴식시간에 입장시키는 선진국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관람시간을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약속이다. 불특정 다수와 하는 아주 중요한 약속인 것이다. 다수와 하는 약속이기 때문에 한 개인과 하는 약속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이 약속을 어긴다면 많은 사람들이 불쾌해질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나 하나쯤은 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공연을 관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약속은 개인하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와도 할 수가 있고, 이렇게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불특정 다수와 서로의 편의를 위해 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약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약도 참으로 중요한 약속이다. 내가 지정한 날짜의 특정한 시간에 지정된 장소로 가겠다고 하는 약속인 것이다. 이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약속위반이 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예약 부도율이 아주 높은 나라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모두가 예약을 한다라는 행위를 약속한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약을 하는 사람과 예약을 받는 사람 모두 예약을 한다라는 행위가 약속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예약 취소를 위해 미리 연락을 해야 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고, 그 예약이 아직 유효하다라는 확인절차를 갖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인데, 예약이라는 이름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화에서 살다 보니 회사차원에서 해외 거래선과 한 약속도 아무런 사전통보도 없이 변경되기 일수였고 심지어 취소된 적이 많이 있었다. 10년 동안 해외영업을 한 나로서는 이런 경우를 아주 많이 보아왔다.



우리가 글로벌 시대를 외치면서 외국어를 배우고 해외연수와 시찰을 다녀도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늘 있게 되는 관람시간 지키기와 예약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글로벌 시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글로벌 경쟁력이란 외국어를 잘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해외연수를 다녀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남을 배려하고 불특정 다수와 한 약속도 잘 지키는 것이 글로벌 인재의 경쟁력이다.



글로벌 시대에 국가를 초월해서 본인의 능력에 맞는 조직에서 세련되고 멋진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싶다면, 우리의 감정이 무뎌져 다분히 사소하다고 느껴지는 예약과 관람시간 지키기를 먼저 생활화해야 한다. 쉽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습관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