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이 시작하는 ‘글로벌시대 구멍가게 경영하기(가제)’ 원고입니다.

앞으로 출간시까지 이 곳에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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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혁명의 4가지 법칙 (2-1)



한국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인 ‘다음’, ‘네이버’의 방문객 수는 2010년기준으로보면 대략 합해서 순 인원 6000만명이 방문하였다. 이는 전 한국인 거의 모두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불과 10년전만해도 상상할 수없었던 이 모든 변화의 근저에는 정보혁명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흔히들 말하는 ‘무어의 법칙’과 ‘길더의 법칙’등 2개의 기술적 혁명과, ‘메칼프의 법칙’ 및 ‘코어스의 법칙’등 기타 여러 가지 동인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1) 무어의 법칙

1991년에 처음으로 노트북 컴퓨터를 샀다.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터라, 월급이 작았던 나로서는 두달치에 해당하는 거금을 투자했다. 그 당시 노트북은 기껏해야 286급의 CPU에다가 하드 디스크 용량이 20Mb에 불과했다. 물론 인터넷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지금 내가 사무용으로 혼자서 쓰고 있는 전자제품을 보자면, 우선 데스크 탑 컴퓨터가 속도 2.4Ghz, CPU는 512Mb ram, 하드 디스크 80기가바이트, 이와 비슷한 성능에다가 멀티미디어 기능이 강화되었다. 아울러 칼라모니터 핸드폰(아직 카메라 폰은 아님), 256MB의 보이스 레코더 겸용 MP3, 32Mb의 USB메모리(아주 오래된 것을 친구에게 얻었음), 디지털 카메라용 compack flash 메모리가 1기가 바이트이다. 불과 13년만에 저장용량만 따지고 보면 무려 7,200배가 넘게 늘어났지만, 부피나 무게나 가격이 그만큼 늘어나지은 않았다. 그만큼 메모리를 이용한 전자제품의 가격과 부피가 작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나는 지식이 7,200배로 늘지도 않았다. 그러나 수만배의 정보를 찾아볼 수있게 되었고, 저장하고 있다. 또한 따로 전화를 받거나 타이프를 쳐주는 비서가 필요없게 되었으며, 사진을 찍어서 수정을 하는 일의 대부분을 스스로 할 수있게되어 사진관에 갈 일이 별로 없게 되었다. 그 밖에 시간을 절약함으로서 얻어지는 비용상의 이익도 상당하다.



무어의 법칙은 30년전 인텔의 창시자인 고든 무어가 말한 것이다.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트랜지스터 수는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하나 가격은 동일할 것이라는 예언이 지난 세월동안의 거의 맞아들어갔다. 이는 두배의 성능을 가진 컴퓨터를 같은 값으로 살 수있다는 말이다. 1950년대 후반 칩의 트랜지스터는 200개 내외였지만, 2005년이 되면 인텔은 10억개 이상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칩을 생산할 것이라고 무어는 예상했다. 이를 자동차의 성능 개선과 비교하면 일년마다 출력이 두배로 증가되고 가격이 오르지 않는 것과 같아, 지금쯤이면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달까지 갈 수 있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 자동차의 엔진 가격은 햄버거를 사면 덤으로 얹어줄 만큼 싸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연산능력의 증가로 그치지 않고, 음성.데이타 및 영상을 한꺼번에 처리가 가능하게 되어, 컨텐츠의 융합화가 가능해지고, 산업간의 파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디지털로 융합되는 디지털 경제를 가능하게 하였다. 컴퓨터, 통신 그리고 콘텐츠가 상호 긴밀한 관계를 갖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생산자에서 소비자로의 일방적인 정보의 흐름이 일반적이었지만, 생산자와 소비자간에 쌍방향으로 연결되게 하였다.



일부에서는 반도체의 물리적 특성 때문에 한계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2003년 9월말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70나노미터의 공정을 적용한 4Gb낸드 플래시메모리 양산기술을 개발함으로써, 2002년 말 90나노미터 공정의 2Gb 낸드 플래시 메모리의 용량을 2배로 늘림에 따라 무어의 법칙도 무너뜨렸다. 삼성전자는 99년 256메가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 개발을 시작으로, 2000년 512메가, 2001년 1Gb, 2002년 2Gb, 2003년 4Gb를 생산하여 4년 연속 무어의 법칙을 깨뜨린 것으로, 언론에서는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 길더의 법칙

96년도 인터넷을 처음 설치했을 때 조그만 그림을 다운 받으려면 20분은 족히 걸렸고, 화질도 선명하지 않았다. 한번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10분이상을 이런저런 명령어를 쳐야지만, 겨우 접속이 되고, 접속된 후에도 상당한 인내력이 없으면 자꾸만 끊어지는 인터넷을 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무실에서 쓰는 4대의 컴퓨터가 동시에 사용하면서도, 인터넷 음악방송을 듣고, 각자 인터넷을 동시에 쓰면서도 영화를 다운받을 수있을 정도의 속도가 되었다. 물론 끊김현상이 없어진지는 오래되었다. 메신저를 이용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바이어와 동영상 카메라를 이용하여 화상 채팅을 할 수있다. 이제 인터넷의 속도는 초당 6Mb로 영화도 볼 수있을 정도가 되었다. 불과 6년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빨라진 속도이다. 사용료도 전화선을 이용하여 사용 시간에 따라 사용료를 지불하던 그 때와 달리 이제는 훨씬 빠른 속도에 다양한 내용을 받아들이면서도 더 싸진 일정액만 지불하면 얼마든지 사용해도 된다.



이같이 인터넷을 빠른 속도로 안정되게 사용할 수있게 된 것은 정보전달 선로가 전화를 이용한 구리선에서 광섬유로 바뀌었기 때문이고, 광섬유가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조지 길더에 의하면 ‘광섬유의 대역폭은 12개월마다 3배로 증가’한다고 하였다. 이를 우리는 길더의 법칙이라고 한다. 광섬유 케이블은 전기신호대신 빛을 전달시켜주는 매체이며 전송 대상이 빛이라는 특성 때문에 전기적인 간섭이나 감쇄현상등의 문제점이 거의 없다. 아울러 임피던스 매칭이나 저항의 문제도 없기 때문에 빠른 전송속도를 보장한다. 광섬유는 너무나 투명해 112킬로미터 밖까지 내다볼 수있을 만큼 순수한 유리로 만들어진다. 레이저 기술로 구리선의 수천분의 1밖에 안되는 지름에 수백만배의 정보를 실을 수 있다. 광섬유를 통한 통신의 역사는 1966년 Kao 가 빛과 광섬유를 통한 통신의 가능성을 입증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후 실제로 상용화되기까지 는 약 10년후인 1970년대후반 50-100Mbps의 전송속도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서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약 2.5Gbps의 초고속 광통신 전송에 적용되고 있다. 참고로 1Gbps는 1초에 200자 원고지 250만매를 전송하는 속도이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전달의 속도는 이미 초당 8.6페타비트(petabit:100조비트)나 되는 정보를 단일 광케이블에 담을 수있다고 한다. 이는 1999년의 월간 인터넷 정보 소통량과 맞먹는 수치이다. 정보통신의 총아로 각광을 받던 반도체에 기반한 정보처리 산업은, 느려터지고 비싼 장비로 버림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 스위스에 있는 유니페이스 연구개발부의 책임자 크리스 하더는 이렇게 설명한다. “반도체를 보면 칩하나에 든 트랜지스터의 개수가 많아질 수록 모든 것이 좋아진다. 그러나 통신에서는 칩 하나에 레이저가 많이 들어가기 바랄 필요가 없다. 광섬유에 더 많은 광파를 흘려보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집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지 길더는 미래의 정보처리 산업은 현재의 전자공학이 아닌 광학에 기반을 둘 것이라고 예측하고, 새로운 “인텔”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초고속 통신망은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을 180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전에는 책이나 디스켓등 물리적 매체를 통해야만 이루어지던 정보의 배포가 대용량의 광통신을 통해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도 이용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 심지어는 교육마저도 가능하게 되었다. 광케이블을 기본으로 한 인터넷의 등장은 멀티미디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으면,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을 만들어 가고있다. 이제 빛은 실험실의 물리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아주 깊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