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동물이다. 자연계의 다른 모든 동물들은 번식을 못해 안달인 데 인간은 종종 번식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한다. 생물의 본분을 망각하는 동물인 셈이다. 최근들어 이처럼 본분을 망각하는 동물들이 엄청나게 많아져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민자들이 지속적으로 아이를 낳고 있어 고령화과정을 밟고 있지 않은 유일한 미국을 제외하곤, 선진국들은 거의 모두 예외없이 고령화위기에 빠져있다. ”



요즘 신문이나 언론을 보면 자주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결혼을 하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그러면서 가족이 줄어드는 것을 고민하기 보다는 새로운 대체 가족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인터넷을 통한 공동체같은 것 말이다. 난 그런 게 정말 가족의 대안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것이야 말로 가족에 대한 몰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친족관계와 친구나 의붓관계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알고 있다. 친구와 의붓가족관계는 결국 머리굴려 고민한 주고받기의 대차대조표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두고 진화심리학은 ‘상호협력’이라 부른다. 반면 친족관계에서는 주고받기의 불균형이 허용된다. 물론 친족간에도 한쪽의 일방적인 이타주의 때문에 다툼이 있을 수있지만, 상호 교환의 불균형이 일생동안 인정되는 관계는 친족관계뿐이라는 것은 연구 결과에서도 알 수있다.”



사업을 15년 하다보니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좋은 일도 있고, 좋지 않은 일도 많았다. 그 중에는 세상 끝까지 같이 갈 듯한 사람도 어느 순간엔가 연락이 되지 않은 적도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지만 나를 이용했던 사람도 있다. 그 15년동안 굳은 날이나 좋은 날이나 여전히 나의 힘이 되는 사람들은 역시 가족이다. 힘이 빠져 있을 때는 격려해주고, 자신감을 잃지 않게 배려해주고, 힘이 너무 들어가 있을 때는 조심 조심 차근차근하라고 경고도 주었다. 물질적으로 적지 않은 손해를 끼쳤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가족이다.



친가나 처가나 모두 3남매인 가족 중에서 불화를 겪은 형제가 없는 것도 다행이다. 뭔일이 있을 때마다 형들에게 상의를 할 수있고, 금전적인 손해를 끼쳤어도 ‘우리 집에 하나쯤은 나같은 놈도 있어야 동생둔 재미가 있지 않나며, 보험든 셈 치라’고 오히려 큰 소리다. 집안의 막내로서 항상 말썽거리였지만, 난 여전히 그들의 막내동생이다. 형제는 그렇다 치더라고 내가 거느려야 할 식구는 좀 다르다. 풍족하게 살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것을 즐기지 못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난 식구들에게도 무언가를 베푼 것보다는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확인시켜주고,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세월이 갈수록 ’가족‘이라는 단어가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은 내가 나의 감정을 마음대로 털어내도 되는 유일한 대상이기도 한다. 남들에게 술김에, 또는 친한 감정에 내 감정을 함부로 털어내면 언젠가는 부작용이 온다. 그렇게 해서 놓친 친구들이 여럿이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남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가족은 어렸을 때 누나나 형에게 했듯이 하면 된다. 세월이 가도 그렇게 하는 데 어색해본 적이 없다.



가족들에게 앞으로 할 일은 우리 가족 모두가 좀 더 풍족하고 사랑스러운 환경아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난 가족기업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가족기업은 인간의 생존본능과 종족유지 본능, 두 가지의 기본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공동의 경제 생활을 영위하면서 같이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적어도 현재 가정이 품고 있는 수 많은 문제의 대부분은 해결이 될 것이다. 가족기업 가정은 부양기능을 수행하는 개인가정과 영리추구적 기업이 한 가족에 의해 운영되면서 가족의 인적, 물적 자원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관리해야 하는 경영체라고 할 수있다. 즉, 가족기업가정은 임금 노동자 가정과는 달리 자원의 획득과 배분이 한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므로, 가족의 유지가 자신의 사회적 안정성의 유지와도 직결된다. 따라서 가족기업의 구성원은 임금 노동자와 같이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외부에서 획득하는 사람들보다 가족의 유지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가족 구성원들은 기업의 유지가 각 구성원을 위하여도 최선의 방책임을 깨닫게 되면서 가족들은 서로의 사랑과 협력을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족기업’을 말하면 누군가는 꼭 하는 말이 있다. ‘유한양행을 본받으라’고. 우리나라는 가족기업을 ‘족벌기업’이라는 좋지 않은 말로 쓰면서 폄하하는 데, 유한양행이 우리나라 기업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유한양행은 소유주가 기업을 종업원에게 넘겨서 경영을 하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사례이고, 그 발전 속도 또한 매우 느려 아직도 중견기업의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삼성.현대.LG는 유한양행의 수 백배의 사회적 공헌을 하고 있다. 또 누구는 ‘재산이 많으면 형제간 싸움이 난다’고 한다. 사실 그런 경우가 많다. 현대그룹이 그랬고, 두산그룹이 그랬고, ……. 그들은 뭔가 싸울 거리가 있으니 싸웠고, 또 화해했다. 아무 것도 없다면 형제들이 서로 자기 살 길 바빠서 얼굴도 못 보고 지내는 것보다는 싸우면서라도 만나다 보면, 화해도 하고 정도 더 깊이 드는 거다. 과자 때문에 어렸을 적 형제간에 싸우지 않고 지낸 사람없다. 그게 무서워 재산을 남겨주지 말자는 건, 오히려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 나의 꿈은 윌리엄 오하라가 지은 “세계 장수 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에 나오는 기업들처럼 200년이상을 지속할 기업의 바탕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게 내가 나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