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07



2013.03.31









여심을 사로잡는 카사노바의 소통기술
여심을 사로잡는 카사노바의 소통기술
여심을 사로잡는 카사노바의 소통기술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30년간 100명이 넘는 여성과 교제한 이탈리아의 문학가이자 모험가인 “카사노바”는 18C의 바람둥이와 난봉꾼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는 뛰어난 미남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절대 폭력이나 금전으로 여자를 유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책으로 쌓은 교양을 토대로 세련된 화술과 경청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그의 여심을 사로잡는 비법은 여자들의 말을 최대한 공감하면서 끝까지 들어주고 맞장구 쳐 주었다는 것. 그의 소통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벨기에 작가 리뉴공은 “그의 말은 계시가 되고, 그의 생각은 책이 된다.”고 까지 하였을까? 결국, 카사노바는 여성편력가인 동시에 여심을 사로잡는 기술이 뛰어난 소통의 달인이었다.






현명한 자는 긴 귀와 짧은 혀를 가지고 있다



신뢰감 주는 소통력으로 상대의 마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참 즐겁다. 편안한 그들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 되고, 상대를 배려하는 그의 말씨는 한 권의 책이 된다.

‘현명한 자는 긴 귀와 짧은 혀를 가지고 있다’는 영국속담처럼, 그들은 모임에서 자신의 말은 짧게 하고, 상대의 말을 길게 듣는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의 말이 무슨 다이아몬드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히 수첩에 적는다. 그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기 때문에 ‘적자생존’을 믿는 경향이 있다. 즉, 적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카사노바는 열띤 토론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상대의 말을 진지하게 공감해야 할 타이밍에는 눈을 맞추고 몰입하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상대의 말이 너무 길 때는 카사노바도 속으로는 애국가를 부르며 지루함을 견뎠을 것이라는 지인의 말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배려있는 소통을 하는 사람들은 경청의 달인!



상대의 말에 대한 경청력이 훌륭한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사람의 귀는 외이(外耳),중이(中耳),내이(內耳)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귀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듯이, 남의 말을 들을 때에도 귀가 세 개인 양 들어야 한다고.

자고로 상대방이 ‘말하는’ 바를 귀담아 듣고 ‘무슨 말을 하지 않는’ 지를 신중히 가려내며, ‘말하고자 하나 차마 말로 옮기지 못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귀로 가려내야 한다고. 결국은 상대방의 마음을 유혹하는 소통의 달인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들어가 상대방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공감능력이다.

“쥐를 잡으려면 쥐의 머릿속에 들어가 쥐처럼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영화 <마우스헌트>의 대사처럼

상대의 마음을 훔치려면 상대의 가슴속에 들어가 상대처럼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카사노바가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기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통력이 좋은 사람들의 칭찬 받는 기술



‘겸손은 속옷과 같으므로, 입기는 입되 남에게 보이게는 입지 말라.’는 말처럼 멋스러운 겸손이어서,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다. 너무 지나친 겸손은 상대를 무안하게 하기도 하므로.

예를 들어서 인상이 좋다고 칭찬한 상대에게 ‘아이고.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요. 제 인상은 좋은 편이 아니에요’라고 하면 칭찬한 입장에선 여간 머쓱한 것이 아니다.

소통력이 좋은 사람들은 우선 칭찬한 사람의 입장을 배려해서 칭찬받은 것 자체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안다. 겸손함을 잊지 않으면서도. 인상이 좋다는 필자의 칭찬에 수줍은 듯 미소 지으면서 고마워하던 지인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상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은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분을 뵈면 저도 모르게 인상이 밝아지나 봅니다.”이 말을 듣고, 칭찬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지인이 한 뼘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렇듯 소통의 달인들은 말 한마디로 사람 사이 마음의 간격을 줄이는 기술이 뛰어나다.



여심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면, 책이 주는 무한매력을 탐닉하면서 공감적인 경청기술의 소중함을 실천한 ‘소통의 카사노바’가 한번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