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정의 은행나무 아래서
요즘은 틈만나면 카메라 들고 종로로 나가 사대문안 일대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서울 변두리에서 살았지만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종로 부근에서 초,중,고를 나온 탓에 종로를 걷다보면 십대시절의 추억과 함께 그 공간에 새겨진 아주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만나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일이 자못 흥미롭다. 몰랐던 도시의 비밀이야기를 하나씩 새로 발견하는 느낌다.

얼마 전에는 모교였던 풍문여고를 찾았다. 갑신정변의 신호탄으로 개화파들이 불을지른 안동별궁터였던 모교 운동장을 지나쳐 뒤뜰로 가니 새로운 교사가 증축되긴 했어도 오랜 전부터 있었던 은행나무가 같은 자리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예닐곱명이 손을 마주뻗어야 간신히 둘러질 은행나무 둘레를 돌며 타임머신을 타고 순식간에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거슬러올라갔다.

고등학교 시절을 사로잡았던 헤르만헤세와 펄벅의 작품들을 비롯 비틀즈의 음악과 마음을 뒤흔드는 친구들과의 감성적인 신경전이 떠올랐다. 헤르만헤세의 주인공들은 알을 깨고 나와 더 큰 세계에서 방황과 방랑의 성장통을 겪으며 자아를 찾아갔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별로 변한게 없었다.한때는 한결같은 모습이 자랑인줄 알았는데 변화무쌍한 시대에 늘 그대로인게 무엇이 자랑이겠는가.
고교 교정의 은행나무 아래서
교정 뒤뜰 이른 봄이면 벚꽃잎이 아스라히 떨어지던 그 자리에 가보니 십대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전설이 있는 깊은 아우라가 느껴지는 우물도 여전한 모습이었다.
” 성문앞 그늘 곁에 서 있는 보리~수.” 고등학교 시절 많이 불렀던 노래소리가 들였다.
늘 항구에 떠 있는 배처럼 같은 자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모험담을 들으며 살아왔다.
은행나무에게 다음엔 흥미진진하고 치열한 나의 모험담을 꼭 들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미래를 향한 기대와 불안함이 공존했던 십대시절의 추억의 장소가
삶의 궤적을 뚜렷이 일깨워주었다. 어떤 점이 부족했고 아직도 어떤 가능성이 남아있는지…
고교 교정의 은행나무 아래서
후배들이 공부하는 교정을 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과 나와 관계있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감과 연대감이 느껴졌다.
살다보면 보이지 않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많다는 걸 알게된다.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의 의미를 제대로 읽고 다룰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고교 교정의 은행나무 아래서
교정을 나와 학교 담장을 따라 걷다보니 고등학교시절 은근히 신경전을 벌였던 덕성여고가 보였다.그리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분식집이 있던 부근에 비슷하면서도 업그레이드된 분식집이 보였다. 주변이 전통한옥거리로 단장되 깊이있는 운치와 추억이 담긴 문화공간과 명소로 바껴있었다. 시험때면 친구와 공부하러 자주 갔던 정독독서관도 그대로였다. 추억의 장소들이 더욱 멋진 모습으로 반겨주니 행복했다. 추억의 장소에서 만나는 십대시절 나의 모습도 무척 반가웠다. 아주 오랜전 아직의 세파에 시달리기전 나의 모습과 꿈을 돌이켜 보는 일이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가끔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그시절의 내모습과 꿈을 확인하는것도 필요한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