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의복, 소지품, 지위, 부의 정도 등…그 중에도 그 사람의 인식 영역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언어다. 기호학 이론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옐름슬레우(L. Hjelmslev)는 ‘언어학 이론은 언어 체계만 알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어 이면에 있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이며 언어를 통해 규정되는 인식 영역을 알아내기 위한 내적인 필요에 의해서 유도되는 것’이라는 정의를 할 만큼 언어야 말로 그 사람의 내적 체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도구다.

우리말에도 언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선현들의 말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 만큼 언어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과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어에게 너무나 소홀하다. 소위 말을 잘 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신이 구사하고 있는 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전에 나는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정말 내가 아는 것일까?, 내가 하는 말이 정말 나의 말일까?’라는 자문을 한 일이 있다. 물론 이 자문은 계속 될 나의 논제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는 그 언어는 철학적 의미로 ‘사람이 사물에 대하여 갖는 그것이 진(眞)이라고 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개념이나 그것을 얻는 과정’을 통한 인식 정도가 가장 자기스럽게 표현되는 그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그 ‘내면’이라는 것은 단순히 교육으로 배운 학문적 지식의 정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인식체계를 보편적인 방향으로 정립시켜가는 과정에서 습득되는 가장 자기스러운 그 어떤 것을 자신에게 내면화 하고, 그 내면화된 것으로 삶을 통해 언어로 표현되는 것까지를 말한다.

그런 의미로 한 사람의 언어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만들어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는 그 사람의 언어에서 드러난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면 ‘언어는 인식의 문’이다. 그래서 삶을 통해 얻어진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과 있으면 친근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도 자신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며 낯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언어의 구사가 천박하거나, 가볍거나, 진실성이 없다면 우리는 바로 실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잡스러운 말, 생각 없이 내 뱉는 하찮은 말, 신중하지 못한 경솔할 말, 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만으로 말하는 허영에 찬 말, 남의 상처를 꼬집는 범죄형의 말, 자신을 포장하는 가식적인 말, 타인을 빗대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불쌍한 말… 이런 말들은 자신이 먼저 알지만 아무리 숨기려 해도 남도 다 안다. 그 사람이 정말 깊은 사고를 통해 생각하며 하는 말인지, 아는 척 하면서 남을 기만하는 말인지는 듣는 사람은 모두가 안다. 이런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또한 자신이 그러하다는 것을 타인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진실 된 말, 자신의 삶을 거짓 없이 표현하는 진솔한 말, 자신의 생각을 신중하게 표현하는 겸손한 말, 없는 것은 없다 하고 있는 것은 있다고 하는 용기 있는 말, 언제나 타인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말 없는 말.. 우리는 이런 사람을 학자라 말하고, 이런 사람을 맨토라 말하고, 이런 사람을 우리는 존경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빠진 그 무엇은 의미가 없다. 자신의 생각을 담은 말을 우리는 어렵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나를 표현해야 한다.

오늘 나는 무슨 실언을 했는지, 오늘 나는 나 아닌 어떤 거짓을 말했는지 신중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가 모여,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