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항에 정박 중인 ‘이스턴드림號’가 해질녘이라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승객을 맞고 있었다. 일본 세계자연유산 ‘이와미긴잔’ 길을 걷기 위해 지난 2월초 이 배에 올랐다. ‘이스턴드림호’는 1만 4천톤 급으로 52개 객실에 458명을 수용한다. 선내에는 면세점, 히노끼탕, 나이트클럽(비록 동네 노래주점 수준이지만)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20피트 컨테이너 130개, 자동차 60대를 적재할 수 있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대한민국 동해항-일본 사카이미나토항을 오가며 화물도 실어 나른다.

저녁 6시, 거대한 선체는 미끄러지듯 동해항을 벗어났다. 경남 울산과 위도가 같은 일본 사카이미나토항까지 거리는 386km, 밤바다를 가르며 약 14시간 달려가야 한다.
배정 받은 룸 넘버는 ‘3203-1’였다. 3층 203호 1번 침대칸을 뜻한다. 항구를 벗어나자, 배의 흔들림이 정도 이상으로 느껴진다. 갑판에 서니 몸이 휘청일 정도로 바람 또한 세차다. 뱃전을 때리는 거센 파도는 연신 포말을 일으키며 하얗게 부서지고…
메스꺼운 속을 달래려고 3층 중앙계단 옆 휴게공간에 놓인 의자에 몸을 기댔다. 배로 여행하는게 처음이라 익숙치 않아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공용 샤워실로 들어갔다. 벽을 짚지 않고 서 있기 힘들 정도다. 욕조에 담긴 물이 심하게 출렁거려 탕안엔 들어 갈수가 없다. 오늘 유독 흔들림이 심한 편이라고  옆사람이 말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안내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 현 상황을 설명하며 선내 이동 시 유의사항 정도는 알려줄 만도 한데…’
安全不感...安全有感...
때마침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저녁식사 안내다. 이어 저녁 8시부터 나이트클럽에서 승무원들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니 모여 달라는 내용이다. 어이가 없다. 정작 필요한 비상시 행동요령이나 구명조끼 착용법 등 기본적 사항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아마도 룸에 배치된 구명조끼함 겉면에 착용요령이 그림으로 설명되어져 있으니 각자 알아서 그걸 참조하라는 모양이다.
샤워실을 나오자, 배 흔들림 따윈 상관치 않는 듯 객실 입구 바닥엔 이미 한 무리가 둘러앉아 그림 맞추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대한민국 독보적 놀이문화?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튿날, 호수를 끼고 있는 일본식 온천 호텔에서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커튼을 젖혔다. 간유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창밖이 뿌옇다. 호숫가에 묶어둔 쪽배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벼르고 별러 일본으로 힐링 트레킹을 온 것인데 날씨가 협조치 않을 모양이다. 체크아웃 후 버스에 올랐다. 트레킹 코스를 안내할 가이드도 날씨 때문인지 걱정스런 얼굴이다. 차에 오른 가이드는 누군가와 한참을 통화하고선 마이크를 들더니 ‘코스 일부 변경이 불가피하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安全不感...安全有感...
“걷고자 한 길이 은을 채굴하여 제련했던 지역의 옛길이다. 이 은광마을을 출발해 은을 채굴하던 갱도를 지나 산을 넘어 온천과 도자기 마을로 돌아오는 것이 예정된 코스였다. 그런데 얼마 전 폭설로 산길이 군데군데 망가졌다고 현의 담당공무원이 알려 왔다. 2시간 반 정도 옛길을 걷다가 중간지점에서 마을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한 후 훼손됐다는 산길 구간은  피해, 버스로 이동한 뒤 옛 마을길을 걷는 것으로 하겠다. 총 트레킹 거리는 13.5km인데 아무래도 4~5km는 버스로 점프하게 될 것 같다”
버스가 들머리에 닿자, 현의 공무원 2명이 미리 와서 반갑게 맞으며 “그래도 은광길을 걷는 느낌만은 충분할 것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걸었으면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지난 2월 초에 다녀온 일본 트레킹을 새삼스레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니다. ‘세월호’를 지켜보면서 여행 당시 선상에서 느낀 ‘安全不感’과 현지 공무원의 ‘安全有感’이 너무나 비교되어서다.
1층에서 3층까지 뻥 뚫린 중앙계단을 승객들이 휘청거리며 간신히 이동할 정도로 흔들림이 심한데도 안전조치를 위한 최소한의 안내방송 조차 없었다. 오늘도 ‘이스턴드림호’는 파도를 가르며 항해 중일 것이다.

반면, 트레킹 코스를 안내한 일본 공무원은 철저히 매뉴얼에 따랐다. 등로가 크게 훼손됐거나 토사가 흘러 길을 막은 것도 아니다. 산길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즉 눈 무게를 못이긴 삼나무와 대나무가 꺾여 길을 막은 정도인데도 공무원 2명이 직접 현장으로 달려 나왔다. 혹시 생길지 모를 안전사고를 사전 예방키 위해서다. 전후사정을 소상히 안내하고 양해를 구한 뒤 트레킹이 가능한 구간을 앞장 서 동행했다. 소읍의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안전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