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창신동' 有感
골목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오토바이, 정신없이 얽혀 있는 전선과 전봇대,
환기구로 쉼없이 뿜어져 나오는 하얀 수증기,
그리고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미싱 돌아가는 소리…

우리나라 의류패션의 시발점이자, 메카인 동대문패션타운에 무수히 내걸린 옷들을
마법처럼 뚝딱 만들어내는 곳, 바로 동대문 의류시장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창신동 봉제골목 풍경이다.
'메이드 인 창신동' 有感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서민들 삶터이다.
얼추 3천여 개의 소규모 봉제공장이 밀집되어 있다.
동대문 의류시장의 배후 생산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그런 동네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으나 다세대 주택 곳곳에 간판 없는 봉제공장에 빼곡히 들어 차 있다.
동대문 의류시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주문이 들어오면 하루 만에
원하는 물량을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창신동의 존재는 화려한 동대문 패션타운에 가려져
그동안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 낙산 채석장에서 돌을 캐내 조선총독부와 서울역을 짓는데 사용했다.
해방이 된 후엔 지방에서 올라 온 이주민이, 6.25 전쟁 직후엔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판잣집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곤궁했지만 온기가 있던 판자촌은 1962년 창신동 대화재에 이은 대대적 철거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판자촌이 헐린 자리에 낙산, 창신, 동대문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이 들어선 것이다.
'메이드 인 창신동' 有感
이후 창신동은 동대문 의류시장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탓에 시장 제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봉제공장이 하나둘 들어서게 되면서 자연스레 봉제촌으로 변신을 거듭,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한 창신동의 변천사가 오롯이 한 전시공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하여 ‘메이드 인(Made in) 창신동’ 展이다.
오는 7월 2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전시실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서울 의류산업의 발전을 이끈 창신동에 새삼 주목하고
지역사회에 대한 인식의 장을 넓혀 보고자 마련했다.

창신동 주거지역에 봉제공장이 본격적으로 밀집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말부터이다.
원래 동대문 의류시장의 생산 공장들은 평화시장 일대에 밀집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활발해진 노조활동 탓에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렇듯 인력확보 등 생산여건이 팍팍해진 청계천 주변 평화시장 일대 소규모 봉제공장들이
인근 지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창신동은 그 대표 지역이었다.
'메이드 인 창신동' 有感
‘메이드 인(Made in) 창신동’ 전시장을 찾았다.
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난 ‘Made in 창신동’은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창신동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함께 창신동 곳곳을 돌아보는 ‘창신동 골목을 걷다’와
창신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신동 사람들을 만나다’로 구성해 놓았다.

‘창신동 골목을 걷다’ 코너엔 창신1동에 있는 문구, 신발, 인장골목의 옛 사진과 자료를
전시하고 봉제공장과 ‘쪽방’ 모습도 재현해 놓았다.
‘창신동 사람들을 만나다’ 코너엔 이름을 알만한 역사적 인물, 예술가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 지역 원주민들의 평범한 삶을 소개하고 있다.

과거 봉제공장에는 10대 소녀들로 넘쳐 났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자리는 머리가 희끗해진 50대 중장년 층이 대신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역 연계 전시인 만큼 박물관 기획전시실과 창신동 현지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전시 준비과정에서 지역 주민 및 예술가들의 협조가 컸다.
재활용 수집물은 서울봉제산업협회가 주축이 되어 창신동 10여 개 봉제공장에서
두달 여 동안 모았다.
그만큼 ‘Made in 창신동’ 展은 봉제인들의 참여가 큰 힘이 됐다.
'메이드 인 창신동' 有感
전시장을 나서며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과거’와 ‘현재’만 있었지
‘미래’에 대한 조명은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동대문패션타운의 배후생산기지, 창신동의 일상은 매우 치열하고 역동적이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만난 창신동은 추억과 애잔함에 갇혀 있었다.
창신동 토박이 봉제인 C씨 역시 이렇게 푸념했다.

“과거도 중요하지만 창신동 봉제의 미래도 부각시켜 줄 것을 주문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과거와 추억에 머물러 있다.
전시기획 주체가 ‘역사박물관’이라 그랬겠지만 창신동 봉제의 희망도 담아주길 기대했는데 아쉽다”
'메이드 인 창신동' 有感
최근 창신동 일대의 뉴타운 지구 지정도 해제됐다.
더불어 창신동 봉제에 대한 서울시의 관심 또한 지대하다.
머물러 있는 창신동이 아니라 박차고 나가는 창신동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