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우리나라 사람들로부터 저평가를 받던 일본과 일본인들이 금주들어 재평가를 받고 있다. 8일 발표된 노벨 생리의학상에서 수상자를 냈기 때문이다.

일본인으로선 19번째 노벨상 수상자이며, 과학 분야에서만 16번째다.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평화상 한 명뿐인 우리나라 입장에선 부러운 일이다. 또 한번 일본과의 기술력 격차를 느낀다. 특히 기초 과학 분야는 하루아침에 기술 축적이 어렵고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iPS(유도만능줄기) 세포 연구소장(50)은 체세포로부터 iPS 세포를 만든 공로로 존 거든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79)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했다. 올해 50세로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받은 야마나카 교수는 수많은 좌절 끝에 성공해 인간 승리의 모습을 보여줬다.

야마나카 소장은 자신의 연구자 인생을 “실패만 겹쳐 20여 년 동안 계속 울고만 싶어지는 좌절의 연속”이라고 자평했다. 고베대 의대를 졸업한 뒤 국립 오사카대학 정형외과 레지던트로 있을 때는 수술을 잘 못해 선배들로부터 ‘자마나카’로 불렸다. ‘야마나카’란 성에 일본어로 방해자, 걸림돌을 뜻하는 ‘자마(邪魔)’를 넣어 만든 용어다.

결국 정형외과 의사가 되길 포기한 그는 연구자로 방향을 돌렸다. 중증 류머티즘 및 척수 손상 등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고민하는 정형외과 환자를 보면서 고민하던 터였다. 그는 199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그래드스턴 연구소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iPS세포 연구에 아이디어를 얻은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96년 일본으로 돌아온 야마나카에게 주어진 임무는 ‘쥐 돌보기’였다. 3년간 같은 일을 하던 야마나카는 결국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 승부처로 삼은 것이 나라첨단기술대학원 조교수 응모였다. 그는 당시까지 실적이 없었지만 “내가 iPS를 합니다”라고 당당하게 공언해 합격했다.

야마나카 소장의 노벨상 수상 소감은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공감을 줬다. 그는 공영방송 NHK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면서 “노벨상 수상에 만족하지 않고 마라톤을 완주하는 마음 자세로 지금부터 끝까지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어 “전 인류의 건강 장수가 나의 꿈” 이라며 “이를 이루기 위해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홉 번 실패하지 않으면 한 번 성공할 수 없다는 설명도 붙였다. 숱한 좌절을 이겨내고 위대한 연구 업적을 이룬 야마나카 교수의 끈기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일본인의 이번 생리의학상 수상으로 한국에선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과학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느니, 관련 정부 예산이 적다느니, 담당 부처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재정적 지원뿐만이 아니다. 노벨상 수상 시즌이 돼서야 문제점을 분석하고 반성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노벨 과학상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분야는 기초가 튼튼해야 결과물이 나온다. 느린 황소 걸음으로 한 발, 한 발씩 각자 자기 분야에 매진하고, 그런 전문가들을 평가하는 사회 풍토가 필요하다. 그래야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이다. 노벨상은 그 다으이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