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칼럼은 산 이야기 입니다. 요즘은 등산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고, 전문가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산’을 주제로 글을 쓰려니 망서려지기도 합니다.

지리산과 후지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제주도 한라산 제외)이고, 후지산은 일본에서 가장 높습니다. 지리산은 1915m로 2000m가 조금 못 됩니다. 후지산은 3776m로 지리산보다 두 배 가량 높습니다.

하나는 한국의 산이고, 또 하나는 일본 산이지만 국민들이 신령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습니다. 후지산이 훨씬 높아 올라가기가 힘들지만 산세의 아름다움에선 지리산이 한수 위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근무할 당시 밤을 새워 후지산 정상까지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후지산은 ‘보는 산’이란 얘기가 있습니다. 만년설을 머리에 쓰고 있는 후지산은 멀리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산 중간 윗 부분부터는 풀 한포기 없어 썰렁합니다. 정상 부근은 한 여름에도 기온이 영도 이하여서 7,8월 두 달 동안만 일반인들에게 등산을 허용합니다.

두 산 모두 자국 국민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들거나 괴롭거나 또는 중대한 결심을 앞둔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오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장 출마를 앞두고 야간 산행을 했다고 화제가 됐었는데, 혹시 지리산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인 31일 지리산에 올랐습니다. 평소 산을 좋아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에 산을 찾고 있습니다. 새 해를 앞두고 지리산 등산 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생각에 겨울산행을 결심했습니다. 좋아하는 선배 두 분과 함께 갔습니다.

평소 등산에서 많은 위안을 찾기 때문에 1년의 마지막 날을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 정상에 오르고 싶은 욕심에 야간 산행에 도전했습니다. 지난해 세 번째 지리산행이었지만 한 겨울에 지리산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금요일 밤 12시 동서울터미날에서 경남 함양행 심야 버스를 탔습니다. 산행에 나서기 며칠 전부터 다소간 심적 압박을 느꼈습니다. 겨울철 혹한 산행은 위험한데다 연말연시 술자리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무사히 ‘천왕봉’에 오르고 귀경을 할 수 있을지 다소 걱정이 됐습니다. 산행에 동행하기로 한 선배들과는 한달 전 약속을 했기 때문에 취소하자고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덜덜 떨면서 밤 11시 반께 동서울터미널의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버스 터미널 대합실 안에 들어선 뒤에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자정을 앞둔 시간이지만 대합실에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걸 보니 큰 탈이 없을 듯 하다고 안심을 했습니다.

새벽 3시40분부터 등산을 시작해 오전 10시께 천왕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국내외 언론들은 올해 세계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보도를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좋아진다고 하는 해는 사실 별로 없었습니다.

올해가 더 힘든 해가 될 것이란 국내외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가게 해달라고 천왕봉 정상에서 빌었습니다. 내가 속한 회사, 국가가 잘 돌아가야 개인의 삶도 편안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의 예상이 맞았던 기억은 별로 없었습니다. 모두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올해야 말로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개인은 물론 회사나 국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겨울 천왕봉을 올라가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한발짝씩 걸어갈 것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에게도 겨울 지리산의 신선한 정기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올 한해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이 만드시길 기원합니다.

이웃 나라 일본의 방송들은 신년 특집 프로그램으로 ‘부활’을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3월 동일본대지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조금씩 정상을 찾아가자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봅니다. 한일 두나라의 보통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좋은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