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인류에게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포성’이 울렸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5일(현지시간) 미국의 장기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1971년 달러와 금태환을 전격 중단한 ‘닉슨 쇼크(Nixon Shock)’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경제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은 ‘AAA(절대 안전)’라는 70년 묵은 통념이 깨졌다. 이는 미국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떨어진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19세기 말부터 100여년 이상 지속돼온 ‘팍스 아메리카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사건이다.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충견’ 역할을 해온 신용평가회사가 주역을 맡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의 전성기가 끝났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S&P의 결단은 새로운 글로벌 경제 시대의 서막을 예고한다. 단순한 경제 사건이 아니라 21세기 인류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S&P가 쏴올린 총성은 세계적인 역사가인 ‘바바라 터크먼(Barbara Tuchman)’이 쓴 명저 ‘8월의 포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인류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전쟁인 제1차세계대전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했다.

1914년 8월, 유럽은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이 터졌다. 사람들은 개전 초 새 전쟁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당시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수천만의 대량 사상자를 낸 ‘대전쟁(Great War)’의 시작이었다.

S&P가 결행한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자본주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올 게 분명하다. 이날 주가 대폭락은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세기 이상 지속돼온 미국 주도의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가 변화하는 신호탄이다. 필자는 그렇게 본다. 그 방향은 모르지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글로벌 자본주의의 출발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글로벌 금융쇼크의 시작도 제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시작됐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 불안이 다른 주요국으로 번져나가는 양상이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류 역사를 바꾸는 대사건은 유난히 8월에 많이 발생했다.

20세기 들어와서도 8월에 큰 사건이 많았다.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로부터 25년 뒤인 1939년 8월 유럽은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속에 휘말렸다. 8월 21일에는 소련과 독일이 ‘독소 불가침협정’을 체결, 연합국을 놀라게 했다. 8월 31일 아돌프 히틀러가 전차를 앞세우고 폴란드를 침공했다. 그렇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국제적인 위기가 8월에 발발하는 경향은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프라하의 봄’이 일어난 것은 1968년 8월이었다. 1989년 8월에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 맞닿은 국경을 개방해 ‘철의 장막’이 무너지는 첫 단초를 제공했다.

1990년 8월에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침공, 중동지역에 불을 질렀다. 1991년에는 소련에서 쿠데카가 일어나 구 소련 체제가 붕괴되는 계기가 됐다. 2008년 8월 러시아의 전차는 그루지야를 침공했다.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알리는 무력 시위였다.

경제적인 대사건도 8월에 많이 발생했다. 1992년 8월 투기적인 파운드 매도가 일어나 영국 경제는 물론 유럽 경제에 충격을 줬다. 또 1997년 8월에는 태국 바트화가 폭락해 아시아 금융위기를 일으켰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한국의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지금의 세계경제는 1997년이나 2008년보다 더 불투명하다. 세계의 주요 4대 경제축에서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 일본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유럽 등 해외시장 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S&P가 풀어헤친 ‘판도라의 상자’가 인류 역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우리 모두가 올 8월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