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문제부터 하나.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게 뭘까? 답은 인문고전이다. 농(弄)을 절반쯤 섞었다. 공자 맹자가 나오면 누구나 한마디씩 거든다. 그러다 얘기가 조금 깊어지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간음한 여인을 죽이라며 아우성치던 자들이 ‘죄 없는 자부터 돌을 던지라’라는 예수의 말에 조용히 자리를 뜬 격이다. 무식이 부끄러워 꽁무니를 빼고, 죄가 부끄러워 자리를 떴다. 진짜 부끄러운 건 뉘우치지 않는 거다. 과오를 되풀이하고, 죄를 거듭 짓는 거다.

농단(壟斷)은 지난겨울을 앞뒤로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한 단어다.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은 이 말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것도 작은 농단이 아닌 ‘국정농단’이다. 한데 정작 농단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대충 그런 뜻이려니 하며 쓰고 읽는다. 적당히 모르면 적당히 통한다. 물론 농단의 어원을 모른다고 ‘무식’을 붙이는 건 어불성설이다. 사실은 나도 일 년 전쯤에 그 뿌리를 알았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에 세금이 부과된 연유가 ≪맹자≫ 공손추편에 나온다. 맹자가 말했다. “누군들 부귀해지기를 원하지 않겠는가마는 ‘유독 높은 곳’에서 혼자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자가 있다.” 농단은 바로 여기서 언급된 ‘유독 높은 곳’이다. 언덕 농(壟) 끊을 단(斷), 즉 깎아지른 듯이 높은 언덕이 농단이다. 맹자의 말을 더 풀어보자. 옛날 시장은 남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모자란 물건과 맞바꾸는 장소였다. 시장 관리는 그 교환이 바른지를 지켜보는 정도였다.

한데 한 사내, 맹자의 표현을 빌리면 한 천부(賤夫)가 시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壟斷)에 올라가 사람들의 움직임을 꿰고 시장 이익을 그물질하듯 거둬갔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고, 그 이후로 시장에는 세금이 생겼다. 농단은 본래 가파른 언덕 꼭대기란 뜻이었지만 높은 곳에 올라 정보를 독점하고, 그 정보를 이용해 이익을 독식한다는 뜻으로 쓰임이 옮겨갔다.

인간은 높아지기를 바란다.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이 강해지고, 인기가 오르기를 꿈꾼다. 아파트 또한 아찔할 만큼 높아진다. 내려보려는 건 인간의 본능적 욕구다. 누구나 산 정상에서 쾌감을 느낀다. 높은 곳에선 두루 보인다. 정보가 보이고, 이익이 보이고, 사람이 보인다. 그러니 누구나 높이 오르려 한다. 높은 곳에선 내려다본다. 인간은 지그시 내려다보면서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한다. 한비자의 말처럼 한 자 나무도 높은 꼭대기에 서 있으면 천길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다. 그건 나무가 높아서가 아니라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장 높을 때, 그리고 가장 낮을 때 민낯을 드러낸다. 높은 곳에선 거만하고, 낮은 곳에서 비굴해진다. 높은 곳에서 낮추는 게 진정한 인격이다. 그곳에서 군림하지 않고, 이익을 독식하지 않고 아래를 굽어살피는 게 진정한 리더다. 낮은 곳에서 비굴하지 않는 게 진정한 자존이다. 스스로 일어서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게 진정한 용기다. 우리 모두 높아지자.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가고, 조금 더 올라가자. 하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본래의 그 자리에 그대로 두자.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바람난 고사성어] (2) 농단(壟斷)-높이 올라 이익을 독식하려는 탐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