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염천에 광주 무등산을 오르다.

독하게 무덥던 8월 첫날 이른 아침, 서울발 광주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빛고을 광주를 오롯이 품은 무등산을 오르기 위해서다.
휴가시즌이라 도로사정은 최악이다.
물밀듯 쏟아져 나온 차량행렬에 버스전용차선도 제 기능을 상실했다.

‘올 여름 휴가는 국내에서~’란 캠페인이 탄력을 받나 보다.
메르스로 침체된 내수경기를 활성화 해보자는 캠페인이다.
버스가 천안 인근을 지날 즈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도동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어요”

감격스러워하는 아내의 목소리다.
‘도동이’는 손녀의 태명이다.
찜통더위에 둘째를 출산하느라 고생했을 딸아이에게 문자를 날렸다.

“저출산 국가에 크게 이바지한 내 딸! 장하다.ㅋ”

오늘 오를 무등산엔 상서로운 돌, 瑞石臺가 있다.
瑞石의 상서로운 기운이 닿은 것이리라.

예정시간보다 1시간을 넘겨 광주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광주 역시 수은주는 36도, 도심 열섬현상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무등산 원효사로 향하는 1187번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번호 1187은 무등산 해발고도(1187m)와 같은 숫자다.

삼복염천에 광주 무등산을 오르다.

광주는 예향의 도시이다. 허름한 선술집에 들어가도
무등산을 소재로 한 그림 한 두 점은 기본으로 걸려 있을 만큼
광주사람들의 무등산 사랑은 극진하다.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 출신 화가 ‘폴 세잔’이 고향의 ‘생트 빅트와르山’을
즐겨 캔바스에 담았듯 무등산 역시 이 지역 화가들의 붓끝에서
희노애락으로 곧잘 표현되었으며 광주시민과 숱한 세월을 함께 해왔다.

3년 전 국립공원으로 새로이 지정된 ‘광주의 진산’ 무등산은
광주 그리고 화순과 담양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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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를 훌쩍 넘겨 버스는 종점인 원효사 입구에 멈춰섰다.
매스컴에서 연일 ‘일사병’에 ‘열사병’까지 들먹이며 호들갑을 떤 탓일까?
원효사에서 시작되는 무등산 옛길 2구간으로 들어서는 산객이 뜸하다.
사람들은 아쿠아 슈즈에 반바지 차림으로 산 대신 계곡으로 향한다.

날머리까지 얼추 5시간은 걸릴 것이기에 뱃속부터 채우기로 했다.
유원지 식당가라 대개 2인 이상이어야 주문 가능한 메뉴들이다.
혼자라고 했더니 메뉴엔 없지만 비빔밥 한 그릇 만들어 주겠단다.
그러면서 식당 주인이 걱정스런 얼굴로 한마디 건넨다.

“시방 오후 1시가 넘었서라. 보통 산에서 내려올 시간인디,
하필 징하게 더운 이 시간에 산을 오를라 했쌌소?”

“아, 예~ 서울서 출발은 일찍 했는데 이제야 도착했네요.”

“앗따, 여거 사람이 아니었구마이~ 서석대 올랐다가 증심사까지 가려면
바삐 서둘러야 쓰것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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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을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선 신발 끈을 조여맸다.
옛길 2구간이 시작되는 원효사 입구 이정표는 서석대까지 4.0km를 가리킨다.
무등산 옛길 1구간은 광주 산수동에서 충장사를 거쳐 원효사까지 7.7km이다.

울울창창 고즈넉한 숲길에 들어서자, 물소리, 새소리가 동행한다.
원효계곡에 자리 잡은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잦아들 즈음,
‘제철유적지’임을 알리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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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충장공 김덕령(金德齡)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다는 자리이다.
이곳에서 제철에 필요한 시설과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펜스가 둘러쳐진 채 잡초만 무성하다.
300미터 더 올라가면 주검동(鑄劍洞)유적지도 나오는데 이곳에서
쇠 화살촉 등 제철 유물들이 다수 발견된 것으로 보아 원효계곡의 砂鐵을
철의 원료로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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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동 유적지를 조금 지나면 ‘무등산 옛길 물통거리’라 적힌 팻말이 나온다.
샘터에 지붕을 얹은 움막도 보인다. 통나무 벤치의 유혹에 잠시 배낭을 내렸다.
이곳은 그 옛날 나뭇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 산길이었다.
그새 몸은 푹 절여진 파김치마냥 녹초가 되어 버렸다.
통나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벌컥벌컥 거푸 물을 들이켰다.

산길은 치마바위까지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점차 고도를 높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즈음, 시야가 탁 트이며 하늘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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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는 다섯 갈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목교 오거리다.
원효분소에서 3.5km를 걸어왔고 500m만 더 가면 ‘서석대’다.
산등성이를 넘나드는 바람이 와락 달려든다.
바람의 길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리도록 창창했다.
구름은 현란한 몸짓으로 작열하는 태양을 막아섰다.

다시 서석대 방향으로 난 숲길로 들어섰다.
이내 거뭇한 거대 돌기둥이 촘촘히 도열하듯 눈앞에 펼쳐졌다.
그토록 갈망하던 무등산의 진경, 서석대다.



삼복염천에 광주 무등산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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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아닌 산정의 주상절리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가늠할 수 없는 9000만 년의 긴 세월을 지나온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그래서 더더욱 신비롭고 경이롭다.
주상절리란, 백악기에 화산활동으로 솟은 용암이 밖으로 나와 갑자기 식으면서
표면은 육각형과 같은 다각형으로 수축되면서 형성된 돌기둥을 말한다.

돌기둥 아래 전망 데크에서 평온한 광주 도심을 내려다보며
기억 속 편린으로 남아 있는 35년 전 5월을 잠시 떠올렸다.
1980년 5월 18일 이른 아침,
교생실습을 위해 광주시내 S고교로 출근 중이었다.
사실 하숙집을 나설 때 망설여졌다. 아침공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교문 앞에서 무장한 군인들과 맞닥뜨렸다.
당시 그들은 대학생으로 보이면 일단 어디론가 연행했다.
그렇게 학생들 보는 앞에서 열중 쉬엇 자세로 엎드려 코를 맨 땅에 박는
봉변을 당했다. 마침 학생들이 “우리 학교 선생님이다” 하여 학교로
들어갔지만 한가하게 교생실습을 할 분위기는 이미 아니었다.
그 길로 교생들은 넥타이를 풀고서 시내 ‘금남로’로 향했다.
그것이 내가 겪게된 광주 아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그렇게 덧없이 흘러 2015년 삼복염천에 홀로 무등산에 올라
그날을 되새기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등급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비할 데가 없다하여 ‘無等山’이라고 한다.
무등산은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여 그날의 아픔도 보듬어 삭여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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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기둥 옆 계단을 올라서니 ’40 무등산옛길’이라 적힌 팻말과 함께
‘무등산 옛길 종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들은 제 키를 낮추고 눈앞에 펼쳐진 고산초원은 끝 간 데 없다.
바로 출입가능한 무등산의 정상, 서석대(1,100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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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인구 100만 명 넘는 도시를 품고 있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무등산과 광주가 유일하단다.
무등산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콘 골짜기들이 여러 갈래로
나 있는 형세가 무등산이 광주를 품은 듯 보인다 하여 광주 사람들은
무등산을 일러 어머니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실제 무등산 최고봉인 천왕봉(1,187m)이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공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출입 할 수가 없다.
정상 턱밑에서 발길을 돌리려니 아쉬움이 크다.
천왕봉의 군부대 이전은 광주·전남 지역민의 오랜 바람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 군부대 이전 논의가 본격화 될 전망이란 소식도 들린다.
연중 한 두 차례 임시로 개방하나 산꾼들의 헛헛함을 채워주기엔 턱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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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와 함께 무등산의 또 다른 돌기둥, 입석대로 향한다.
장불재 방향으로 500여 미터 내려서면 ‘立石臺’ 표시석이 눈에 들어온다.
한자 전서체로 음각된 표시석은 여느 산정에서 흔히 보던
판박이式 정상 표시석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괜히 藝鄕이 아니다.
둘러 쳐놓은 목책을 끼고 돌아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봤다.
거대 돌기둥의 위용에 압도되어 넋을 붙들어 매야 했다.

천하 어떤 석수장이가 이렇듯 돌기둥을 정교하게 깎아 낼 수 있을까?
철옹성 요새 앞에 도열한 병정들처럼 꼿꼿하며 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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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00미터를 내려서면 드넓은 초원, 장불재(해발 900m)에 닿는다.
서석대와 입석대를 거쳐 내려선 너른 안부 고갯마루다.
말 잔등 같은 능선이라 ‘백마능선’이라고도 불린다.

서석대와 입석대의 상서로운 기운을 품고 있는 이곳 장불재에서
지난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국내 성화가 채화되기도 했다.

나무벤치도 있고 화장실도 있어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나 그늘이 없다.
가을 억새가 장관이라니 한 번 더 걸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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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불재에서 중머리재를 거쳐 증심사 주차장까지 5.1km,
아직도 하산 거리가 만만치 않다.

“아야~ 적당히 좀 하랑께, 이 더위에 죽을라고 환장했구마이~ 지금 어디냐?”
“안 죽을만큼 쉬엄쉬엄 걷는다. 지금 중머리재 통과했다.”
“그래야~ 그럼 5시 반까정 증심사주차장으르 갈텡께 거서 보드라고”

걸음을 서둘렀다.
36~7년 전 즐겨 찾던 증심사 계곡의 그 많던 닭백숙 집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씻은 듯 말끔하게 정비된 계곡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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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꿋꿋이 사수? 중인 몇몇 知己가 산 아래까지 마중 나왔다.
땀에 찌든 내 모습이 딱해 보였던가, 아니면 땀 냄새가 진동했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知己가 에어컨 빵빵하게 가동 중인 카페로 안내했다.
다행히 한가했다. 얼른 여벌옷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겉 문을 잠근 후 ‘카페 화장실 습격 냉수마찰’이란 진기록을 남겼으니….

삼복염천에 광주 무등산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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