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보고 싶으면 삼신봉에 오르라<下>






이튿날, 평소보다도 일찍 잠에서 깼다.
흡입한 주량에 비해 컨디션은 양호했다. 고질적인 腸 트러블만 빼곤.
해발 1,600미터 청정 고원에서 편한 山友들과 파안대소하며
자연을 마신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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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침상을 빠져나왔다. 새벽안개가 자욱하다.
조식 메뉴는 라면이다. 물을 넉넉히 잡아 누룽지도 넣어 끓였다.
라면국물과 누룽지의 궁합이 딱 좋아 속풀이로 그만이다.
달달한 스틱 커피로 입가심까지 깔끔하게…

하동 쌍계사까지는 17km, 얼추 8시간은 걸어야 한다.
출발에 앞서 산우 넷이 머릴 맞댔다.

“폭염에 먹을거리 마저 탈탈 털어버린지라 17km는 무리다. 삼신봉까지만
갔다가 청학동마을로 탈출하자. 오후부터 비도 시작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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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청학동마을까지 10km만 걷기로 했다.
대피소에서 500m를 내려서면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왼쪽은 거림(5.5km), 몇해 전 세석대피소에서 억수 비를 만나
주능선 종주길이 폐쇄되는 바람에 종주를 포기하고 탈출했던 길이다.
이번엔 오른쪽 청학동(9.5km)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등로는 질척거렸고 숲 속은 눅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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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수 샘터(해발 1,450m)에 이르자, 잠깐 숲이 열렸다.
겹겹 능선의 마루금이 너울처럼 일렁인다.
다시 숲속 길로 접어들었다.
남부능선은 주능선에 비해 산꾼들의 발길이 뜸하다.
신발도 바지도 이슬에 젖어 후줄근한 행색이나 기분만큼은 뽀송뽀송하다.
웃자란 산죽이 성가시게 덤벼들어도 반갑다는 몸짓이려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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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을 지나 시야가 탁 트인 능선에 이르러 잠시 배낭을 내렸다.
먹을거리를 비웠는데도 여전히 배낭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그만큼 체력이 소진되었음을 알리는 시그널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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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깊은 첩첩 산군 위로 비구름이 서서히 드리우고 있다.
산죽의 성가심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듯 멈추지 않는다.
산죽과의 신경전은 삼신봉 아래 고사목지대에 이를 때까지 계속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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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서 어느 산꾼을 추모하는 詩碑를 만났다.

산이좋아 산을찾아
산이좋아 산에올라
산이좋아 산에누워
삼라만상 벗을삼네

동료를 떠나 보낸지 사반세기가 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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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보고 싶으면 삼신봉에 오르라<下>






지리한 숲길을 빠져 나오자 서늘한 바람이 온 몸을 감싼다.
눅눅한 숲 속을 헤쳐나오느라 욕봤다는 것인가?
저만치 지리산의 변방, 삼신봉(1,284m)이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산우 넷은 지리산 남부능선 한 가운데 위치한 삼신봉에 섰다.



지리산이 보고 싶으면 삼신봉에 오르라<下>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왔다.
비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있으나 시계는 좋아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누군가 ‘지리산이 보고 싶다면 삼신봉에 오르라’했다.
괜한 말이 아니다. 옹골찬 지리 주능선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지리 주능선 상의 영신봉에서 분기한 남부능선은 이곳 삼신봉을 정점으로
지맥이 둘로 갈라지면서 ‘청학동마을’을 품고 있다.
그 청학동마을을 내려다보며 삼신봉을 내려섰다.

 

지리산이 보고 싶으면 삼신봉에 오르라<下>






세석대피소에서 예까지 7.6km, 이제 2.4km만 내려서면 청학동.
허기가 밀려왔다. 이른아침에 먹은 라면에 누룽지가 전부다.
온몸이 꿉꿉했다. 땀범벅인 몸을 물휴지로 세신한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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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友 넷은 오로지 씻고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걸음을 서둘렀다.
청학동 이장님의 안내로 청정 계곡물에서 알탕?도 즐기고
청학동 이장님의 추천으로 토종닭백숙으로 배도 채웠으니…

언제 또다시 지리산 병이 도질지 모른다.
천변만화의 지리산은 시시때때로 배낭을 꾸리게 하는 ‘끌림’ 강한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