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4대 왕 선조는 무능했다. 겁쟁이에다가 울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전쟁대비도 제대로 못했고 전쟁이 나자 도망가기에 바빴다. 질투심은 또 왜 이렇게 많았는지 자신보다 명성이 높은 일선장수들과 의병장들의 평가에는 인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뿐이면 다행이게. 오히려 전쟁에서 진정 나라를 지킨 이들의 은공을 모르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 행동했다. 상황을 보며 자기주장에 꼬리를 뺏다가 은근슬쩍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잔머리는 그의 주특기였다. 그러고도 40년 80개월의 최장 재위기록을 세웠으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반면, 당시의 국민들은 훌륭했다. 풍전등화의 운명 속에서도 살아나는 조선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순신 장군의 무적수군과 의병들의 맹활약으로 일방적인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호국의 의지를 불태웠다. 불교탄압을 일삼아온 유교국가임에도 많은 승려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는 쥐뿔도 없음에도 위기가 닥치면 떨쳐 일어나는 독특한 유전자를 우리 민중들은 가졌다.



무기력하고 뻔뻔한 조정과 능동적인 용력(勇力)을 보여준 대다수의 백성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장면은 타임머신을 거꾸로 거슬러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다. 위정자들은 각종 게이트와 4류정치로 혼탁함이 극에 달했고 이에 염증 난 국민들은 말없이 본업에만 충실하고 있다.



유성룡이 눈물과 회환의 징비록(懲毖錄)을 통해 뼈아픈 과거를 반성한 것이 당시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지만 지금은 이런 징비록을 쓸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세월호 같은 비극을 또 당하고 그때 쓰려는 것인가?



위정자들은 지금 당장 또 한번의 징비록(懲毖錄)을 써야한다. 이젠 나라를 짓밟히고 쓰는 징비록이 아닌 또다시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예방징비록’을 써야 하는 것이다. 다시는 헛발질 정책으로 서민들 가슴에 대못질을 하지 않겠다는, 부정부패로 일반의 분노를 사지 않겠다는, 경제와 고용 불안으로 더 이상 심려를 끼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어지럽고 혼란한 틈을 타고 굴절된 역사는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도 양쪽에 칼날을 품은 부메랑으로 다가 올 것이다. 위정자들은 후안무치(厚顔無恥)의 망령에서 벗어나 단 한 페이지라도 진정한 징비록을 써서 미래의 유발가능 한 악재에 방어하길 바란다. 힘없는 국민들이 간절히 고하는 바이다.

다시 징비록(懲毖錄)을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