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아닌 이상 얼굴의 모습인 관상(觀相)만을 보고 귀상(貴相)과 빈상(貧相)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귀상(貴相)의 반대인 빈상(貧相)만을 보고 사람을 파악하는 방법이 있다, 관상가들은 대표적인 빈상 즉 가난한 상으로는 세 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밥을 빨리 먹는 사람. 말을 빨리하는 사람. 걸음걸이를 빨리하는 사람 등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이러한 행동거지로만 사람을 파악(把握)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빈상(貧相)이라고 이야기 하는 밥을 빨리 먹거나 걸음걸이가 빠른 것은 어쩌면 시간에 쫓기고 일에 치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이요. 달리 보면 결국 잘 살아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S그룹의 선대(先代)회장은 관상을 보고 사람을 뽑았다고 한다. 기피(忌避)했던 인사 원칙은 대머리인 사람. 키가 큰 사람. 뚱뚱한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대머리는 심중(心中)을 잘 드러내지 않고 키가 큰 사람은 싱거우며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도 평소 생활 습관을 보여주는 개인의 현재 모습인지라 공감(共感)이 가는 원칙이라 할 수 있겠다.

행여나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게는 과히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CEO의 입장에서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채용하는데 있어 한눈에 보여 지는 모습에 그만큼 큰 비중(比重)을 두었음을 알 수가 있다. 회사를 경영하는 CEO고민의 절반은 사람문제라는 갤럽연구소의 조사는 회사를 위해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평가는 다르겠지만 사람을 잘 뽑은 대표적인 사례(事例)로는 조선 제7대 왕인 세조(世祖)를 들 수가 있다.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대표적인 CEO였던 세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 아들은 물론 모든 것을 잃은 관상가 김내경은 동생과 함께 바다를 끼고 있는 시골로 내려온다. 이들을 다시 찾아온 기생 연홍에게 김내경은 파도치는 바다를 보며 한마디 한다.
” 파도를 움직이는 것은 바람인데.. 나는 저 파도에 불과했다고…”

파도는 바람이 일면 따라 일고 바람이 자면 파도 또한 잠잠해진다. 바람은 흐름을 말하며 흐름은 바로 시류(時流)를 말한다. 천재(天才) 관상가(觀相家)라고 불렸던 김내경은 숲에 있는 나무는 보았지만 숲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한명회에게 패(覇)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김내경은 시류(時流)를 읽지 못한 것이다.

수양대군(首陽大君) 측의 모든 계책(計策)은 한명회(韓明澮)로부터 나왔다.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그대야말로 나의 자방이로다”라고 후대(厚待)하였다고 한다. 자방(子房)은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공신(功臣)이자 오른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임을 받았던 책사(策士) 장량(張良)을 말한다. 장량은 그 스승 황석공에게 배운 기문둔갑(奇門遁甲)에 도통(道通)했던 사람이다.

김종서의 김내경과 수양대군의 한명회와의 갈등은 결국 수양대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역사는 결국 승자의 기록물이다. 그 만큼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시대를 읽는 흐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개인의 관상(觀相)은 저마다 타고나면서 주워지는 정명(定命)이라는 인생 방정식(人生 方程式)에 따라 귀상(貴相)과 빈상(貧相)으로 나뉘게 된다.

귀상(貴相)으로 타고 났다고 해도 마음 가는 행동이 좋지 않으면 설령 빈상(貧相)으로 타고났어도 남에게 선행(善行)을 베푸는 사람보다 못한 관상이 되고 만다. 인생살이가 아무리 꼬인 방정식이라고 해도 그 문제의 해법(解法)은 결국 마음의 상(心相)에 있기 때문이다.

관상을 바꾸고 싶다고 얼굴의 성형을 원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예뻐지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의 외형은 부득이 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굳이 손을 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관심과 노력을 자신의 내면(內面)의 발전을 위해 투자함이 옳다고 하겠다.

세조(世祖)는 칠삭둥이로 태어나고 관직에서도 보잘 것 없었던 한명회를 과감히 발탁하여 자신의 대업(大業)을 이루었다. 관상으로 보면 빈상 중의 빈상이 바로 한명회였다고 한다. 하지만 한명회는 그러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때를 준비하며 꾸준히 심상(心相)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눈에 보이는 얼굴의 상(相) 보다는 생각의 씀씀이인 마음의 상(相)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