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高架, 뜨거운 감자로...


서울역 高架, 뜨거운 감자로...

사진제공=서울시

서울역 고가 위를 달리던 차량들이 사라졌다. 17미터 높이의 고가 위엔 때 아닌 시민들로 북적였다. 작년 10월 12일 ‘서울역 고가 시민개방 행사’가 서울시 주최로 열렸다. 1970년 준공 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시민들이 거닐 수 있도록 개방된 적이 없었다. 44년 만에 처음 있었던 일이다.

이보다 20일 전인 9월 23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 시장은 지난번 선거 때 ‘서울역 고가 하이라인 파크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박 시장이 찾은 곳은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였다. 귀국 후 서울역 고가를 녹지공원으로 재생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 밑그림을 구체화하기 위한 첫 이벤트로 ‘서울역 고가 시민개방 행사’를 가진 것이다.

서울역 高架, 뜨거운 감자로...


하이라인(High Line)은 미국 뉴욕 시에 있는 길이 1마일(1.6 km)의 공원이다. 원래는 화물열차가 다니던 고가철로였다. 방치되어 있던 폐 철길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했다. 이 모든 개발은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란 비영리 주민단체가 주도했다. 이들은 10년 넘게 인내심을 갖고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견은 좁혀갔다.

‘하이라인 파크’는 그렇게 탄생했다. 주민단체가 앞장서고 시 정부가 전폭 지원해 성공을 이뤄낸 것이라 더욱 값지다. 흉물의 폐 철길이 명물 공원으로 탈바꿈되면서 베이글과 커피를 든 뉴요커들이 즐겨 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뉴욕을 찾는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서울시는 바로 이 ‘하이라인 파크’를 벤치마킹해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서울역 고가 총 938m를 ‘차량길’에서 ‘사람길’로 재생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서울역 고가 공원화 프로젝트는 주민단체가 주도했던 뉴욕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는 이미 죽어 있던 철로를 복원한 경우다. 그러나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는 지역민은 뒷전이고 서울시가 주도한다. 또한 멀쩡하게 살아있는 도로를 죽여 공원화하겠다는 것이다. 마땅한 대체 도로계획은 없이 말이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는 지난해 6.4지방선거 때 박원순 후보 공약집에 처음 등장했다. 선거가 끝난 뒤로 한동안 조용했다. 그러더니 박 시장의 뉴욕 출장을 전후하여 슬그머니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서울시의 여론몰이가 본격 시작됐다. 공원 이름 짓기 공모전에 이어 고가 시민개방 행사까지 열렸다. 그제서야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지역 봉제 소공인들과 남대문 상인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이들에게서 서울역 고가도로는 단순히 도로로서의 기능을 넘어 ‘생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서부권 봉제벨트의 초토화를 우려한 이들이 부랴부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가도로 폐쇄에 따른 교통단절 등으로 주변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교통대책 등 대안 부재를 지적하며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서울시의 발표대로 서울역 고가 공원이 현실화 되면 몇 십 년 동안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에 젖줄을 대고 살아가고 있는 소규모 봉제공장들의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까진 하이라인파크처럼 존치시켜 공중 공원을 만들겠다는 장밋빛 청사진만 있지, 봉제소공인들을 위한 어떠한 대책도 찾아 볼 수 없다.

급기야 서울 서부권 봉제소공인들 스스로 생계에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공장과 근로자수 파악에 나섰다. 결과는 놀라웠다. 만리동(500개, 2,200명), 청파, 서계동(400개, 1,800명), 공덕, 소창동(140개, 680명), 아현동(65개, 290명)에 총 1,330개 봉제공장에서 4,970명이 일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서울시의 일방적 사업추진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서울역 高架, 뜨거운 감자로...

사진제공=서울시

1970년대 고가도로는 서울 발전의 상징물이었으며 서울의 골칫거리인 교통난 해소의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그 고가도로들은 안전을 위협하고 경관을 해치는 도심 속 ‘흉물’ 취급을 받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역 고가를 보행로로 만들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시 7017프로젝트’가 등장, 고가 저너머 서부권 봉제벨트를 자극하고 만 것이다. 이는 인근 봉제소상공인들과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 서울시의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도시 재생의 핵심이다. 그 지역의 삶을 모르는 전문가가 나서면 물리적 변화에 치중하기가 쉽다”고 말한 어느 도시사회학자의 일갈이 새삼 와닿는다.

‘온갖 애를 썼으나 얻는 것 없이 헛되이 수고만 한다’ 속된 말로 ‘죽 쒀서 개 준다’고나 할까,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서울역 고가 공원화’를 두고 ‘노이무공(勞而無功)’이란 고사성어가 머릿속에 맴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