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다.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엉뚱한 동네에 내렸다. 아무리 둘러 봐도 익숙한 곳이라고는 전혀 없는 동네. 나에게는 돌아올 차비도 없었다. 추운 날 해는 지고 거리에서서 3시간 째!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정 얘길 하려고 몇 발을 떼어 놓다 제자리에 서기를 수십 차례. 더는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저~ 제가 차비가 없어 집에 못가고 있는데 차비 좀 빌려 주실 수 있으세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까지 더듬는 아이의 눈빛이 가여웠는지 주머니를 뒤져서 100원을 건네주곤 황급히 가버렸다. 너무나 감사했고 참 많이 부끄러웠다. 그 날의 경험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내비게이션을 사면서 다짐했다. 무작정 떠나 보리라! 14년째 다짐뿐이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영화관 가기, 혼자 여행하기는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다.

아들이 즐겨보던 프로그램 중에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를 본 일이 있었다. 참 별 프로도 다 만든다 싶었지만 1인 가구가 453만 명 시대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이해가 갔다. 나도 노홍철처럼 살고 싶어요! 혼자 살지만 멋지게 꾸며놓고 재미있게 사는 모습이 부럽단다. ‘혼자 사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인식을 토대로 상업적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본다면 분명 변화된 사회상임에 틀림없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홍대 앞에는 1인 노래연습장이 성황을 이루고, 여행사에서는 싱글족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2012년 인터파크 발표에 의하면 공연 예매 자 4명 중 1명이 ‘나 홀로 관객’이었다. 멀티수납장, 1인용 미니 소파와 테이블, 맘스 오피스 등은 싱글 족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대형마트의 소포장 제품들도 전년대비 35%의 매출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혼자라는 것은 외로움이라는 강적을 피할 수 없다. ‘키덜트 족’은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즐겁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장난감, 연, 모형비행기와 같은 물건들을 수집하는 수집광들이 그들이다. 오감을 충족하기 위해 선택한 향초는 자신에게 선물하는 최고의 라운징 아이템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층이 선택하는 프리미엄 향수는 최고의 드미 쿠튀르(Demi Couture,작은 사치를 통해 기분을 내는 불황 속 작은 사치, 기분 전환 사치)를 선사한다. 이들의 즐거운 왕따 놀이는 관계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 보이고 즐거워 보여도 혼자는 외롭다. 외동인 아이는 자랄 때부터 혼자다. 놀이방을 가고 어린이집을 다녀도 든든한 내 편은 없다. 집에 오면 또 다시 혼자다. 관계를 만들어 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최고의 서비스를 받고 누리지만 공유하는 삶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상황을 견뎌내지 못한다. 삶으로 체득되지 못한 이론은 자신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2000년 저서『나 홀로 볼링 Bowling alone』을 통해 공동체의식이 무너져가는 미국사회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미국 사회가 깨진 유리조각처럼 숱한 개인들로 흩어졌다. 경제성장이나 복지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소생시키거나 인간의 행복을 도모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고민은 우리의 고민으로 심각성을 더해갈 것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지향하고 있는 N세대들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