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문 밝은 밤에 광화문에 홀로 서서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발아래 세월 천막이 남의 애를 끊나니~



이래저래 광화문 ‘이순신’께서도 시름이 깊으신게다.
세월호 싱크홀에 빠져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대한민국,
그래서일까, 추석을 맞아 저마다 발걸음은 부산하나, 가볍지만은 않은 듯.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원만, 성취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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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아침,
‘천수경’을 빌어 ‘세월’의 業을 씻어 보며, 수리산으로 향한다.
‘수리수리~’와 ‘수리산’은 하등 관계 없다.
산이름이 수리산이라 ‘천수경’의 첫머리가 떠올랐을 뿐.
추석날 하루쯤은 배낭 내려 놓으란다.(옆지기께서~)
명절 아침 댓바람부터 홀로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 게
청승맞고 찌질해 보인다나 어쩐다나^^

완만한 숲길, 수리산으로 가을마중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전철로 환승해 수리산역에 이르는 동안
배낭 멘 인간들은 가뭄에 콩나듯 드문드문 눈에 들었다.
아닌게 아니라 내가 생각해도 청승맞긴 하다.
옆지기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했는데…

4호선 수리산역 2번 출구로 나오면 가야주공5단지가 보인다.
이 아파트 517동과 도장초등학교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쪽문을 통과하면 곧바로 산길로 이어진다.

길은 완만하다. 임도오거리까지는 산책하기 그만인 숲길이다.
수리산은 안양, 시흥, 군포, 안산을 경계하고 있으며
어느 방향으로든 길은 막힘없이 통한다.
그래서 인근 주민들은 물통 하나 달랑 들고 산책하며,
접근성 좋은 체력단련 코스로 즐겨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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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오거리에 이르러 이정표를 올려다보니 사통팔달, 맞다.
수리산역 들머리를 6시 방향으로 기준하여 12시 방향은 슬기봉,
11시 방향은 수리사, 9시 방향은 덕고개, 3시 방향은 용진사 가는 길이다.

임도오거리를 기점하여 수리사 방향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15km를 돌아 걸어 다시 이곳으로 원점회귀할 수도 있다.
지난 5월초에 걸었던 수리산 ‘수릿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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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오거리를 지나 슬기봉 오름길로 접어들었다.
한남정맥이 지나는 구간이다. 비로소 산에 든 느낌이다.
한남정맥은 한반도의 13정맥 중 하나로 속리산에서 시작하여
슬기봉을 지나 김포 문수산에 이르는 산줄기이다.
길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거친 된비알이며 가파른 계단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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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오거리에서 슬기봉까지는 930m, 가파르긴 해도
쉼없이 올라붙을 수 있을 정도로 거리는 짧다.
가쁜 숨 몰아쉬며 정상부에 이르자, 철조망이 쳐져 있다.
슬기봉엔 군부대가 들어서 있어 접근금지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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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을 비껴나 20여 미터 우회하여 능선에 올라서면 조망이 으뜸이다.
수리산의 주봉인 태을봉이 주위 산군을 호령하고
희끗한 수암봉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왼쪽 바위벼랑에 설치된 난간길은 수암봉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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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태을봉으로 향한다.
나뭇잎을 스치는 골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숲을 파고든 조각난 햇살 또한 밉지가 않다.
한치를 나아가지 못하는 대한민국과는 달리 계절은 어김없다.
여름은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가을은 배시시 고갤 내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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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봉 가는 능선에는 칼바위와 병풍바위 구간도 있다.
骨山의 암릉에 비하면 싱거우나 그래도 암릉이라 방심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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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에서 6km 남짓 걸어 태을봉 정상(489.2m)에 닿았다.
시골집 앞마당 만한 봉우리에 돌고래가 연상되는 미끈한 정상석이
한가로이 가을빛을 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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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봉(489.2m)은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내리는 형상을 닮았다.
그런 봉우리를 풍수지리에서는 天乙 또는 太乙峰이라 부른다.
하늘 향해 곧고 품위있게 솟은 태을봉은 군포시내를 말없이 굽어보고 있다.
봉우리 둘레 나무그늘 아래 서너개 나무벤치가 놓여 있다.
추석날이라 산객 발길이 뜸해 아이스께끼? 장수는 벤치에 드러누워 있다가
인기척이 나면 자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아이스께끼’를 외친다.

맞은편 벤치에 앉은 젊은 여성분은 스맛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갖은 표정에 포즈를 바꿔가며 홀로 셀카놀이에 열중이다.

1,500원을 주고 아이스께끼를 사 입에 물었다. 꽁꽁 얼어 돌덩이 같다.
흔히 알고있는 브랜드의 아이스바가 아니다.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아이스께끼’다.

조용하던 봉우리가 갑자기 왁자지껄해졌다.
덩치 큰 대여섯명의 서양인들이 땀에 전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르르 아이스께끼 통으로 몰려가 코를 박는다.
이들에게 벤치를 내어주고 인근 관모봉으로 향했다.

태을봉에서 관모봉까지는 740m로 만만하다.
태을봉을 막 내려선 안부에 빈 나무벤치가 다시 발목을 잡는다.
이렇게 벤치가 쉬어가길 원할 땐 들어주는게 예의?다.
벤치를 침상 삼고 배낭을 베개삼아 드러누웠다.
나뭇잎 사이로 드러난 하늘은 시리도록 높고도 푸르다.
스르르 눈꺼풀이 절로 내려 앉았으니…

‘툭’하고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꿀잠을 깨운다.
가을이 영글어가는 소리다. 땀이 식어 몸이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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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숲길, 수리산으로 가을마중


태극기 휘날리는 관모봉(426m)에 이르니 조금전 만났던 서양인들이
좁은 암봉을 차지한 채 땀을 훔치고 있다.
꿀잠 자는 사이 소생을 앞질러 간 것이다.

‘카 메 라 부 탁 해 요’라며 내게 스맛폰을 건넨다.
단체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이다.
대여섯명이 제각각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모여 섰다.

여러 이유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들 역시, 추석연휴 중일 것이다.
그들에게서 우리의 추석은 어떤 의미일까?
어쨌거나 산에 오른 그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아 보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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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모봉의 ‘관모’는 갓 冠(관), 모자 帽(모)를 합친 말이다.
이 봉우리의 모양이 관모를 닮아 관모봉이란다.

이곳 관모봉에서 날머리로 염두에둔 현충탑까지는 2.56km다.
그러나 수리약수터까지의 거리는 0.98km다.

단거리를 택했다. 곧장 수리약수터 방향으로 내려섰다.
현충탑 방향으로 걷고 싶었지만 날이 날인만큼
서둘러 귀가해 늦은 오후시간만이라도 옆지기와 함께 해야겠기에…

수리산 지형은 청계산(618m), 광교산(582m), 관악산(629m), 백운산(564m) 등
광주산맥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산지 중의 하나이다.
군포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큰 산이다.
태을봉(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슬기봉(451.5m),
북쪽으로는 관모봉( 426.2m) 북서쪽으로는 수암봉(395m)이 연해 있다.
***수리산역-임도오거리-슬기봉-태을봉-관모봉-수리약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