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대권주자라는 자들의 행태가 매시간 마다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이 나라 이 백성들을 생각하는 것인지, 자신의 정체와 분수를 모르고, 인기몰이에 영합하느라 들떠있는 모습들이 이젠 지겹다.-

현실은 뒤엉킨채 방향을 잃고 있지만 그래도 가을이 왔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니, 이제 단풍은 제철을 만났고, 가을은 바야흐로 절정에 이르렀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회지의 어느 구석에 서리를 볼 수 있으랴마는, 지금쯤 시골의 논길에는 서릿발 밟히는 소리가 뽀득뽀득할 것이고, 서릿발 밟으며 언덕배기 올라서면 감나무 아래엔 주황색 뾰족감이 서리맞아 떨어져 있을 것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으며, 그 청명한 햇살속에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이 가을은 만물의 성숙이 완성에 이르니, 爻位로 치자면 乾卦 九五쯤에 해당할까? 아무튼 풍요의 계절이자 계절의 왕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지난 여름의 알알이 맺힌 땀방울로, 논밭은 황금빛 이삭이 가득하고, 벌판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이제 가을걷이까지 끝내고 나면 곳간에 쌀가마니 쌓아둔 채 오래간만에 굽었던 허리도 펴고, 울긋불긋 먼산의 단풍도 바라볼 여유도 누릴 수 있으리라. 서녘에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곳곳에 쌓인 노적가리를 가져다가 군불을 때고 뜨뜻한 구들장에 지친 몸을 쉴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올 한해 1년간의 고단했던 노고가 이 가을 이제에서야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최근의 가을날씨는 내가 기억하는한 어릴 적과 한 달의 시차가 있었다. 적어도 지금보다 한 달은 더 앞서있었고, 그만큼 더 길고 한결 분명했다. 황금에 눈먼 인간들이 저지른 공해의 탓인지 아니면 지축이 바로서는 천지개벽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엘니뇨 라니뇨가 범람하고, 한반도도 점차 아열대기후로 바뀌어간단다. 이 땅에도 기변이상 탓으로 올여름 여러차례 태풍이 할퀴고 지나갔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태풍을 이겨내고 풍작을 거둘 수 있으니, 우리들 신산한 삶을 위로해주는 이 한가을의 풍요로운 天功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튼 가을의 느낌은 다른 어느 철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다.

그래서일까? 가을 노래는 많다.
과거 학창시절에 널리 유행했던 팝송의 제목에 ‘spring summer wintre and fall’ 이란 노래가 있다. 떠나간 사랑의 슬픔을 변화하는 계절에 비유한 이 노래에는 왜 가을을 마지막에 두었을까? 아니 굳이 팝송을 들 필요도 없다. 현재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한국의 대중가요사를 뒤적여보면 가을에 관한 절창은 많다.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날지언정 부디 가을엔 떠나지 말아달라’는 애절한 노래도 있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10월의 마지막 밤 노래는 정말로 10월의 마지막날에는 전국에서 불려지고 있다. 또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은 애창곡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한다. 왜 가을을 그렇게 타는 것일까?

어느 계절이고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철은 없건마는, 가을은, 깊어가는 가을은 어느 계절보다 강렬한 자극을 준다. 가을을 타는 것은 남녀가 다르지 않을 터이지만, 분명한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오히려 어릴적 歡呼雀躍하던 눈내리는 겨울이나 해가 바뀌는 설은 나이를 먹을수록 무덤덤해진다고 할까? 그러나 연륜이 더할수록 가을은 우리의 정신을 각성시킨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을은 서운하다.
추운 겨울 지내고, 올 봄이 온 것이 어저께인 듯한데, 벌써 가을이다. 벌써 또 한해가 지나는구나! 아지못하는 사이에 숨 돌릴 겨를없이 또 가버린 한 해. 입시지옥에 시달리던 고등학교시절이나, 국방부시계가 가기만 기다리던 군대에서의 1년이란 그렇게 길기도 하건마는, 1년이란 긴 시간이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아무 것도 이룬 것은 없는데, 도대체 시간은 왜 그렇게도 무정하단 말인가?

세월이란 가볍기가 쏜살의 그림자만도 못하고, 세월의 집합체인 인생 역시 한바탕의 봄꿈같을 뿐인가? 그래서 이백은 봄밤에 술에 취하는 것이 이유가 있다고 했던 것일까? 최백호는 눈덮인 겨울에 떠날지언정 이 가을엔 떠나지 말아달라고 노래했던 것일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일정한 나이를 넘어서면 갈수록 시간은 급하게 역류하는 것인가? 그렇게 세월의 비중은 급한 개울물처럼 가벼워지고 愁心은 깊은 강물처럼 무거워진다.



가을의 서리는 풍요의 절정이자, 각성의 시점이다.
주역의 坤卦 初六에서는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고 했다.(履霜堅氷至) 어머니 곤괘의 첫 말씀은 서리가 내릴 때에 대한 경계의 훈시이다. 풍요의 계절은 서리를 기준으로 절정에 이르지만, 서리가 내린 뒤엔 살아있던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땅밑으로 숨어버린다.이것이 생명의 사이클이자 세상의 법칙이다. 이 가을의 풍요로움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북쪽 산골짜기 넘어온 동장군이 높새바람을 타고 눈보라를 불러오면 세상은 온통 얼어붙는다. 그래서 이 풍요의 계절에 정신차리지 않으면 추운 겨울을 날 수가 없다. 겨울은 냉혹하다. 숨이 붙어있던 모든 것들은 대지의 품속으로 파고들어가 긴 잠을 자고, 저 먼 시베리아로부터 불어온 북풍한설이 천지를 뒤덮는다.

인류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가을걷이는 지금 당장의 포식을 누리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닥쳐올 얼음의 왕국을 나기위한 차비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으리라. 그래서 가을은 그저 풍요의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이요, 警覺의 시점이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진리라고 하기에는 당연한 사실이자 평범한 상식일 뿐이지만, 저 아득한 상고시대, 서리를 밟으면 곧 엄동설한이 닥치고 온 세상이 얼어붙는다는 이 한마디는 생명을 위한 구원의 메시지도 되었을 것이다. 춥고 배고픈 겨울을 나는 지혜를 얻기까지 인류는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했을까?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류가 겨울의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야했을까?

그들을 생각하다 문득 눈물이 어린다. 어느 청명한 가을날 아침, 미래에 대한 눈물의 준비없이 인기몰이만을 위해 마구 선심공약만 남발하는 베짱이들같은 이 나라의 대권주자들은 추풍낙엽을 보면서도 춘몽을 깨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 온세상에 서리내리는 霜降절이 된 줄을 알고나 있는지… 이 청정한 가을날, 이젠 그만 거짓과 착각과 위선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이 땅에 북풍한설 몰아치기 전에 진정으로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해 겨우날 준비를 하는 참된 이는 누구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