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주재 한국대사관에 연구자료를 구하기 위해 갈일이 있었다. 먼저 대사관에 전화해서 용건을 말하니, 영사관으로 가서 교민담당영사관을 찾으라고 한다. 그래도 전화를 해 본 것이 다행이다 싶어 일러준 대로 물어가며 골목길을 찾아갔다.

그런데 북경주재 한국영사관 정문앞엔 녹색제복을 입은 중국 公安(경찰) 둘이 철갑을 한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문을 들어서려니 대뜸 막아서며 중국어로 여권이나 신분증을 내놓으라고 한다. 우리 국민이 우리 영사관에 가는데 여권이 필요하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는 아차 싶었다. 탈북자문제로 그러려니 이해를 하면서, “나는 한국에서 온 한국인이다”라고 중국어로 대답을 했더니, 앞을 가로막아서며 안된다고 제지했다. 그래서 서툰 중국어로 “난 한국인이고, 교민담당영사관과 만날 일이 있어서 왔다”고 항의를 하니, 영사관과 약속을 했냐고 다시 물었다. “그래 약속했다”고 하니, 그제서야 막아섰던 문을 비켜주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현관 입구에는 또 하나의 철창문을 낸 부스가 가로막고 있었고, 그 앞에는 또 하나의 중국공안이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마 그는 정문앞의 공안들보다 계급이 더 높은 듯했다. 일단 목소리부터 고압적이었다. 사나운 눈매로 의심스럽게 노려보며 여권과 신분을 확인하지 않으면 문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나의 앞을 막아섰다.

내 명함을 보여주면서 한국의 교수이며 연구자료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지만, 명함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다.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영사관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 영사관과 약속을 했다”고 중국어로 호소했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응답은 “안돼! 네가 한국인인지 아닌지 내가 알게 뭐야!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아!”라며 죄인 다루듯 대할 뿐이었다. 중국땅이긴 해도 여긴 대한민국 영사관이 아닌가!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난 한국인이고 여기는 대한민국의 영토 안이다, 당신이 뭔데 들어가라 마라 간섭하는가?” 중국공안의 눈초리가 험악해졌다. 영락없이 일본 순사가 조선백성 노려보는 꼴이었다. 이게 우리나라의 영사관인가? 식민지의 주재소인가?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그에게 똑같이 맞섰다.

중국경찰과 소란스런 설전이 벌어지자, 마침 안으로 들어가려던 영사관 직원이 이 장면을 보고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한국인인데요, 중국공안이 여권이 없다고 이렇게 강압적으로 못들어가게 하네요.” “아 그러세요. 무슨 일로 오셨는데요?” 이렇게 해서 나는 한국인 직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탈북자가 진입(?)하듯 간신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단은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간신히 영사관 안에 들어가서 교민담당을 찾으니, 부재중이었다. 어디로 갔냐고 물으니 잠깐 출장중이라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하면서 연락을 취해달라고 하니, 연락이 안된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냐고 물으니 몇시간 뒤에 다시 와보란다. 해외에 나간 국민이이 엄마의 품처럼 찾아가 의지할 곳은 영사관뿐이 아닌가? 어릴 적 눈물로 읽던 <<엄마찾아 삼만리>>처럼 천신만고 끝에 찾아갔더니 이미 또다른 먼 곳으로 이사가버린 격이었다.

그래 좋다. 외교관이란 막중한 임무수행을 위해 몇시간 정도 자리를 비는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나의 며칠간의 빠듯한 일정 중에서 오늘 일정을 다 취소하고 영사관에서 종일을 대기해도 좋다. 그건 내 불운으로 치고 말자. 살다보면 더 불행한 일도 많은데, 세상 일이란 내 맘대로 되는게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한국영사관내에서 중국경찰의 월권은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단 하나, 시끄럽기만 하고 국익에 전연 도움이 되지도 않는 탈북자라는 골칫거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이럴 수가 있는 것일까?

동포애니 인류애니 하는 ‘감상적’인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가장 기본에서 부터 생각해보자. 외국에 주재하는 어떤 나라의 영사관은 그 나라의 영토라는 사실을 난 분명하게 알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이건 해외의 주재공관은 치외법권지역으로서, 해당국의 영토로서 인정을 하는 것은 외교적 관례이자 국제법의 규정이다. 가령 영사관안에서 불이 나더라도 허락없이는 소방차도 들어갈 수 없는 다른 나라의 영토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 경찰은 우리의 영토안에서도 바깥대문만아니라 그 마당안의 현관 출입권에 관한 한 완전한 통제력을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가막힌 것은 너무나 기세등등했다. 도대체 주객이 전도되도 유분수지, 임오군란을 진압한다고 한양땅에 온 원세개가 저랬을까? 한일합방조약에 훔쳐가지고온 옥새를 찍던 이또오 히로부미가 저랬을까? 오죽하면 나는 이민족의 능멸에 맞서서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지고 머나먼 이역땅에서 침략자를 응징하던 김구선생님이나 안중근의사가 떠올랐다.

아무리 이해하고 모두를 양보한다고 해도, 한국영사관이 어떻게 중국 경찰에게 정문출입권을 완전히 이양해버리고, 한국의 영토내에서 한국민이 중국경찰에게 감시와 통제를 받게 방치할 수 있는가 말이다. 또 어떻게 했길래 중국의 일개 경찰이 한국의 영토내에서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한국인을 종부리듯 하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말이다. 나중에 교민들에게 들어보니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처음에는 부끄러웠고 나중에는 화가 났다. 이쯤되면 그럴수도 있으려니 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한국 영사관의 담당 부영사에게 이메일로 항의를 했다. 그러자 앞으로 중국경찰과 서로 협조를 해서 최대한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는 답신이 왔다. 참 성실한 답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정도의 답변은 그야말로 외교적 修辭일 뿐 허공에 외친 꼴밖에 아무 내용도 없는 虛辭였다.

더 따지고 들어가면 아마도 인원부족과 예산부족의 답변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문제만은 아무리 예산이 더 들어간다 해도 예산타령으로 넘어갈 수 없는 국가주권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만에 하나 이런 황당한 경우가 골치아픈 탈북자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영사관과 중국경찰의 누이좋고 매부좋은 편의주의적 야합에 의한 결과였다고 한다면 스스로 주권을 포기한 당국의 처사에 나라는 한 개인 뿐 아니라 해외의 교민들과 전 국민은 분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