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공개세미나에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부정적인 사람, 표정이 어둡고 차가운 사람, 이유와 변명을 일삼는 사람, 자기 자신이나 업무 처리에 게으른 사람, 거짓말 하는 사람, 교양이 없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거론되었다.



잠시 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에 대해 물었다.



성실한 사람,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 희생정신이 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시간과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사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등 좋은 이야기는 모두 쏟아져 나왔다. “교양”이라는 단어는 양쪽 모두 두 번이나 나왔다.





끝으로,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표현해 보라고 했다. 뭐라고 썼을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중간쯤이라고나 할까?



다른 사람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을지 자신 없는 모습들이었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자신이 없다. 대부분이 자신을 좋게 평가하기도 하지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점 하나 없을 수 없는 건 신(神)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디트리니 슈바니츠(Dietrich Schwanitz)는 그의 저서 “교양(Bildung)”에서 교양인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사항으로,



역사와 문학, 철학과 음악, 예술과 종교 등에 대해 골고루 알고 있으며, 품위 있는 언어를 활용한 의사소통 능력과 자기 성찰, 다재 다능한 창조성과 지능 등의 소유를 주장한다.



그는 교양인이 알지 않아야 할 것도 빼놓지 않는다.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교양에 속한다는 이야기다. 알지 않아야 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경우에는 조심스럽게 그 지식(정보)을 감출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TV 프로그램을 상세히 알고 있는 것, 다양한 잡지에 대해 잘 아는 것, 스포츠(특히 축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능력 등은 교양인이 될 수 없는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예 TV가 없다고 말한다면 교양의 최고 단계라고 한다.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알고 있을 경우에는 스쳐 지나가듯 살짝 이야기 하라고 충고한다.



아마도 그가 주장하는 “교양인이 될 수 없는 조건”은 우민정치(愚民政治)의 3대 요소인 섹스(Sex),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즉, 3S를 칭하는 것 같다. 쉽고 편안하고, 즐겁고 가벼울 수 있으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때울 수 있는 3S가 가장 빠르게 번창한 나라, 대한민국은 그래서 최근 20년간 국민소득 1만 불에서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정자들의 정권 유지 전략 요소로 으뜸가는 3S에 30년 가까이 속고 있는 국민의 책임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교양과 문화, 지식과 정보, 이해와 판단력을 바르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올바른 교육을 통한 “국민 정서와 가치관의 정립(定立)”이라고 생각한다. 교양인이 되기 위한 조건도 어렵지만 교양인이 될 수 없는 요소를 거부하고 살아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