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혼자일 때가 있습니다.

이 다음에 늙어서 할아버지가 되면 그런 시간이 더 많아질 겁니다. 그 때의 삶도 중요한 시간의 합(合)으로 가꾸어져야 할 겁니다. 그래서 혼자일 때 행복한 연습을 합니다.



천안 근처 S社의 연수원에 강의가 있어 아침 일찍 내려가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렀습니다. 난데없는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가 흘러 나왔습니다. 그 중 2악장은 제가 자주 듣는 “기가 막힌 선율”입니다. 거기서 식사하는 모든 분들이 그 음악을 좋아할지는 잘 모르지만, 식사를 하면서 음악을 들으면 소화가 잘 되는 곡(曲)으로 “아침의 마음”을 정리해 주기 위해 그런 음악을 선곡했다고 생각하니, 그런 시간과 장소에 그런 음악을 준비하는 “인간을 위한 배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전, 저녁에는 근처 미용실에 들렀습니다. 평소 시끄러운(?) 신세대 음악을 억지로 들으며 머리를 자르고 감는 30분은 곤혹스러웠지만,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미용실을 찾은 저에게 죄가 있기에 참았지만,

그 미용실에는 보케르니의 미뉴에트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순서없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머리를 깎는 기술보다 음악을 선곡한 기술이 더욱 뛰어 나다”며 칭찬을 했더니, 머리를 감겨 준 다음에도 정성들여 마무리 손질을 해 주었습니다.



가끔 국악을 듣습니다. 기악의 형식이나 제목을 잘 알지 못하는 국민의 죄를 감추고 “느림의 철학이나 한(恨)풀이, 정겨운 농경생활의 추억”을 전해 주는 목소리와 고전 악기의 조화는 민족의 역사를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합니다.

회심곡이나 농부가를 들으며 익숙하지 않은 어휘와 가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답답한 만큼의 큰 의미가 심금을 울리기도 합니다.



혼자 있을 때, 아주 바쁠 때, 일에 치어 정신없이 어지러울 때, 일부러 시간을 내어 책을 읽습니다. 사두고 읽지 못해 아쉬웠던 고전이나 위인전, 평전 등을 골라 펼쳐 봅니다.



너무 두껍고 어려워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느리고, 몇 시간을 읽어도 읽은 표시도 나지 않아 답답하고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가끔 발견하는 삶의 철학과 사고력의 애쓴 흔적을 발견하며, 행간의 의미에 공감하게 될 때 더 큰 기쁨도 느낄 수 있습니다.



단 몇 줄이라도 소중한 뜻을 발견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을 겁니다.



억지로 쓰는 글이지만, 이런 칼럼을 맡아 글을 올리면서도 감추어진 기쁨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시키지 않은 일이라서, 얼떨껼에 대답해 놓고 쩔쩔매는 일이라서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약속해 놓고 제 때에 좋은 글 올리지 못해 늘 미안하고 초조하지만, 막상 한 손으로 건반을 두드리듯 독수리 타자를 치면서 “생각을 글씨로 옮기는 시간”도 행복의 마디마디이며 중요한 소절들입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오감(五感)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기쁜 겁니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작은 책을 눈에 가까이 대고, 키득거리는 사람을 볼 때나, 무거운 책 한 보따리를 사 들고 차가운 거리를 바쁘게 걸어 가는 사람을 마주 할 때면, 그들을 바라 보는 저도 저절로 기뻐집니다.



“한 인간이 기뻐서 날뛰는 순간을 곁에서 바라보는 기쁨”도 중요한 의미가 있으니까요. 가끔은 “군중 속의 고독(Crowded Solitude)”을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언제든지 혼자만의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독일의 학자 라인하르트 슈프랭어는 “개인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인이다. 각 개인의 역량과 품질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 가정과 집단을 이루고, 사회와 기업을 구성하며, 국가의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들이 모두 행복한 모습으로, 혼자의 시간을 즐길 수 있고, 한데 모였을 때 더욱 기쁠 수 있는 삶이, 올 연말연시에는 더욱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