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해>에서는 두명이 가짜왕을 대신해 죽음을 맞이한다.

“마시거라, 마시라 했다. 뭐하느냐? 마시라는데!!!”

왕은 궁녀에게 명령한다. 음식에 넣은 은 젓가락이 검게 변했기 때문이다. 어린 기미 나인은 그렇게 머리를 조아린채 무조건 “죽여 주시옵서서”라는 말만 되뇌인다.



15살 나이에 무거운 세금과 탐관오리들의 탈취로 가족들과 헤어져 생사도 모른채 ‘기미 나인’으로 살고 있는 사월이는 힘들게 궁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짜 광해 ‘하선’을 만나게 되고, 그런 그(하선)에게서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받게 된다. 이후 왕을 암살하려는 측근으로부터 왕의 팥죽에 독이 든 사탕을 넣으라는 지시를 받게 되지만, 대신 자신이 독을 먹고 죽게 된다. 그리고 왕을 쳐다보면서 마지막 말을 남긴다.



“전하… 부디 강녕하시옵소서”

비록 나이도 어리고, 궁에서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왕이 자신에게 보여준 마음에 대한 보답이었다.



“세상을 속여도 내 눈은 속일순 없다”

왕의 호위무사 ‘도부장’은 ‘하선’의 굵은 손마디를 보고 ‘광해’가 아님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에게 칼을 대며 왕을 기만한 죄를 죽음으로 물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알지 못하는 ‘중전’은 막아서며 그의 무례한 짓을 멈추게 한다. 이 후 ‘도부장’은 ‘광해’에게 불충한 신하로서 죽여달라고 한다.



“네가 나에게 칼을 견준것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네 목숨을 하찮게 여긴것이다. 나는 네 목숨이 더 소중하다.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 앞으로는 이 칼은 나의 목숨을 지키는 일에만 쓰도록 하여라”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이때부터 도부장은 호위무사로서 책임을 다하는 정도가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왕을 따르기 시작한다.



진짜 왕이 돌아오고 하선이 궁에서 나와 무관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감지한 그는 하선에게 먼저 가라고 말한 후 자신들을 쫓아온 군사들을 막으며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에게는 가짜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진짜다!”

이렇게 두 명은 목숨을 건다. 그리고 조내관과 허균 또한 마음으로 그를 왕으로 섬기게 된다. 그렇게 허균은 돌아온 왕에게 이렇게 속죄한다.

“소신, 두명의 왕을 동시에 섬기게 됐나이다.”



광대인 하선(광해)에게 그들이 마음을 다해 섬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임진왜란 직후 상당수의 국민이 죽고, 궐은 불타고, 민심은 흉흉한데도 후금의 세력이 거세어지자 대신들은 명과의 사대의 예를 앞세워 백성들을 군사로 2만을 보내자고 한다. 그때 하선(광해)은 그들의 의견에 맞서며 이렇게 말한다.



“내 나라 내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는데 허울뿐인 명분이 그렇게 중요한가? 임금이라면, 백성들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부끄러운 줄 아시오!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곱절 천곱절 더 중요하단 말이오!”

그렇게 그는 왕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치적 맞교환보다 원칙과 사명을 이해한 군주의 길을 알고 있었다. “정치란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것입니다”라는 허균의 실제 정치론을 무시고 진짜 중요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살아가다 보면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고
눈앞에 놓인 자신의 이익만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약속을 지키고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든지 시작할 때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교환일 뿐이다.
그때는 이미 원칙과 사명을 잊어버리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여건이 어려워도 지킬건 지켜야 한다. 그것이 ‘리더(Leader)’라면 더욱 그렇다.



‘승정원 일기’에서 빠진 15일의 픽션(Fiction)은
팩트(Fact)보다 더 강한 임패트(impact)를 준다.
그건 아마도 그런 리더를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해 하는 것 때문은 아닐까?
명대사로 본 '광해 리더십' 따라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