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무엇가를 익히려면 먼저 ‘매뉴얼’부터 펴 봐야 한다. 일을 하는 순서와 방법 그리고 주의할 사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매뉴얼’은 업무를 제대로 이해하게 하고, 손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매뉴얼’대로 일하면 실수를 줄이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매뉴얼을 숙지하고, 그것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매뉴얼대로 일하는 사람은 주어진 ‘가치(value)’에 더 이상의 ‘부가가치(addvalue)’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매뉴얼은 생각과 행동을 일원화 하는 장점은 있지만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8년 뉴욕에 오픈한 ‘최초의 스타일 호텔’인 W호텔은 상세한 서비스 매뉴얼이 없다. 오히려 4가지 기준안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직원을 교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뉴얼이 경직성을 낳게 만들고, 오히려 진심어린 서비스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고객만족도는 상승하고, 창업 2년만에 전세계에 12개 호텔을 오픈했다. 4가지 서비스 행동기준인 ‘친근함’, ‘예측하기’, ‘신속함’, ‘신뢰’라는 간단한 기준만 남기고 매뉴얼을 없앴기 때문에, W호텔은 고객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담긴 여러가지 서비스가 가능했다.

최근 일본은 며칠사이에 지금까지 생각해 본적도 없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긴급하고 빠르지만 가장 적합한 선택이 필요할 시간들 이었다. 하지만 이번 재난상황은 일본정부의 리더십과 위기관리능력에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그동안 일본의 점진적 성장을 끌어왔던 관료조직의 절차와 매뉴얼 문화는 과감하고 신속한 대처엔 방해가 되고 말았다.

‘천안함 사건’때 우리는 “매뉴얼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에 따라 행동했는가?”로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매뉴얼(manual)’의 사전적 의미는 ‘수동’이다. ‘자동’의 반대의미로 사용된다. 스스로 움직이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매뉴얼이 작은규모의 소소한 일처리를 해내는데는 적절하지만 크고, 위험하고, 급작스런 사태에 대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지침과 규정 그리고 시스템과 매뉴얼은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시대적 발상엔 적합할지 모른다. 하지만 매뉴얼대로 일하기엔 너무나 빠르고 점진적이지 않은 일들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매뉴얼은 배움과 익힘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행동을 결정짓는 관리적 행동에서 벗어나 원칙만 남기고 스스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망가지면 버리고 새로운걸 갈아끼우는 구조가 아니라, 손가락 하나가 아프면 나을때 까지 다른 손가락이 지원하고 대체하는 것처럼 살아 움직이는 구조가 되야 한다.

옛것에서 배우면서 새로운걸 적용하려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야 한다. 정해진 길만 가려하는 우둔함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는 모험적 기질과 매뉴얼을 버리고 원칙에 입각하면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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