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가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을 위해 강연회를 개최했다. 강연회에 보통 백 명 이상 신청하곤 했는데 이 행사는 유독 맥을 못췄다. 행사가 끝난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강연의 주제는 ‘이순신’이었고, 강사는 이 분야를 30년간 연구한 고위공직자였다. 분야가 인문학이기 때문에 직장인들의 관심이 적었던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이 행사를 기획한 이유는 회원들의 자기계발 편식을 막고자 한 의도였다. 대다수 회원은 최근 많이 언급되는 용어인 ‘실용’을 선택했다. 자기계발, 경영, 재테크 등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이익과 효용성이 있는 행사는 인원이 몰리는데, 정작 숲을 보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근본 바탕인 인문은 홀대한 것이다.




‘이순신’ 강연회를 개최한 근본원인은 따로 있다. 작년 한국인이 대표로 있는 국제기구 수장의 인생이야기를 담은 책이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책에 관심이 많은지라 그 이유가 궁금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영웅’을 원했던 것이다. 국가의 큰 어른부터 정치, 경제, 재야까지 영웅이라고 불릴만한 분이 없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롤 모델’(role model)이 필요했던 것이다. 필자가 강연회를 개최한 진짜 이유는 돈이 세상의 대세가 되는 현실에서, 이순신이란 영웅을 키워드로 잠재된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우주적 포부’의 발현을 위해서다.




오래전 지인과 대학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지인 회사에 대학생 인턴을 고용했는데 문서작성 능력 등 여러 부문에서 예전 자신의 신입시절과 비교하면 인턴 학생들이 훨씬 뛰어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무엇인가 부족해 보인다는 견해가 서로 일치했다. 그것은 ‘배포’다. 인생의 목표는 월급 많이 주는 회사 취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포는 ‘학벌, 실력, 경험을 능가하는 매우 중요한 삶의 요소’라는 것이 지인의 얘기다. “이것은 비단 대학생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젊은 회사원이라면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결코 변변한 직장에 다니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배포가 적은 것, 호연지기가 없는 것, 역사의식이 적은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주적인 배포, 호연지기, 역사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만든 행사가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은 ‘80:20 법칙’이라는 세상의 냉험한 이치의 실증인지도 모른다. 최근 모 대학에서 개설한 최고경영자 인문학 과정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증가하고 있다. 성공의 키워드인 CEO들이 인문에 열광하고 일반 직장인들이 무관심한 현상은, 숲과 큰 그림을 보고자 노력하는 20% 사람만이 성공이란 열쇠를 쟁취하고 나머지 80%는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 같아 씁쓸하다.




피터 드러커 연구의 국내 권위자인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이 피터 드러커 자택을 방문했을 때 책보다 더 많은 클래식 음반을 보고 놀랐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역사에서 경영을 말하다’에서 ‘문(文), 사(史), 철(哲)’로 대변되는 인문학 중에서 ‘역사’는 그 중심에 있다고 강조한다. ‘사(史)’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미래학이기 때문이다.




이순신 강연의 강사는 학문의 영역은 학자들 몫이므로 자신은 오로지 지난 30년 동안 이순신의 내면세계에 몰두했다고 말한다. 30년은 짧은 세월이 아니다. 강연 내내 이순신에 집중하다가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낯빛이 부드럽고 온화하면서 강직함이 어우러진 인상이었다. 순간 머리를 때린 것은 그가 바로 이순신이 아닌가하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오랜 세월 이순신을 닮고자 했고, 이제는 자신의 삶과 업에서 이순신의 포부를 펼치는 모습이 존경할만한 분을 만났다는 귀중한 인연에 감사함을 느꼈다.




인문은 서양에 도전하는 동양적 경쟁력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생각의 탄생’ 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교수도 국내언론 인터뷰에서 “창조경영은 문학, 음악, 미술 등 인문학적 감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서양문화는 현상에 대한 분석, 해체의 기술이 탁월하게 뛰어나다. 그래서 분석이 필요한 영역인 과학과 이것의 응용분야인 기술부분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졌다. 서양은 소를 부위별로 해체해야 직성이 풀리지만, 우리는 소를 보고 한시를 짓고 관조하는 ‘전체에 대한 통찰’이라는 위대한 내재적 감수성이 있다. ‘글로벌 경쟁력’이란 서양의 논점인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적 인문의 바탕위에서 자신 있게 우리의 강점을 접목시키고 주장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문화를 비롯해 경영의 분야에서도 서양의 분석사조로 우리 기업과 경영풍토를 해석하고 추종하는 것을 이제는 지양했으면 한다.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는 1980년대부터 10년 주기로 책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2011년은 제4의 10년 작이 출간되는 해다. 2005년 9월 윤 교수의 32년간 교직생활을 기념하는 고별강연에 필자도 참석했다. 강연 주제는 ‘시를 통한 인생 및 기업탐구’였다. 이 날 강연에서 문학, 철학, 천문학, 물리학 등 인문과 경영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내용으로 청중의 큰 갈채를 받았다. 윤 교수가 마지막 강연 주제에 ‘시’를 언급한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영고수의 절정, 정수를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국내 경영서의 대표 명저인 그의 저서 ‘프린시피아 매내지멘타’는 집필기간 10년을 포함해 총 20년이 소요된 역작이다. 한 구절 살펴보자. “오늘날 번성을 누리고 있는 종들은 과당경쟁이 없는 황무지를 찾아 그것을 개척하는 전략을 택했다. 프런티어 정신의 반대는 ‘나도 따라 하기’다.”




필자의 경험도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하기 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과학’등 다양한 인문분야의 서적을 섭렵한 것이 비즈니스 내공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경영 영역에서 인문의 힘은 보조적 역할이 아니라, ‘기본과 본질’에 대한 근본을 성찰하게 해주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필자도 인문에 대한 학습 덕분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경우 경영적 판단 이전에 본질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선행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최근 급격한 글로벌 경제의 요동과 21세기 초스피드 시대의 대응도 오히려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본질을 성찰하는 것이 해답을 구하는 지름길이다.




인문으로 충만한 직장인을 그려보면 어떤 모습일까? 세계적 광고기업인 사치&사치의 CEO 케빈 로버츠가 전하는 직원 채용 일화에서 ‘큰 포부와 남을 따라하지 않는 자신만의 철학과 주장’이 글로벌 세계에도 통용된다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뉴질랜드 지사 면접 때의 일이었어요. 직원 한 명을 뽑기 위해 지원자들에게 카메라 한 대씩 나눠주고 두 시간 안에 ‘10년 뒤 세상을 변화시킬 그 무엇’을 찍어오라고 했죠. 그런데 두 시간 후에 서른 장의 사진 중에서 일제히 한 곳에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그것은 지원자가 자신의 얼굴을 찍어 온 사진이었죠. 그 사진의 주인공은 그 자리에서 즉시 채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