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에 출장으로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직항이 없어 미국의 뉴욕이나 워싱턴 디씨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13시간 정도를 날아가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할 수 있다. 첫 번째 도착한 공항에서 새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까지를 포함하면 36시간이나 걸리는 실로 긴 여정이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거리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한 반도에서 땅을 파고 계속 내려가면 아르헨티나가 나온다는 말도 있다. 비행기 안에서만 하루 반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왠 만큼 체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도 현지에 도착하면 파김치처럼 몸이 늘어진다. 그런 아르헨티나를 이주 전에 업무 차 다시 가게 되었다.



중남미 근대 정치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르헨티나 태생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고, 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탱고의 선율은 귀에 낯설지가 않다. 그리고 뮤지컬과 영화로 더 유명한 에비타, 전세계 축구팬의 살아있는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와 우리나라의 교역량이나 국제사회에서의 외교 관계를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살펴보면 아르헨티나는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많은 나라이다.



한반도의 13배나 되는 광활한 국토면적을 잘 활용하여 목축업과 농업을 크게 발전시켰던 아르헨티나는 1930년대만 해도 세계 4대 부국에 포함될 정도로 영화를 누렸었던 나라이다. 1910년대에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지하철이 건설되었을 정도였다. 엄청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한없이 잘 살 것만 같았던 나라이기도 했다. 물론 추후에 벌어지는 정치적 혼란과 부정 부패만 없었다면 아직도 세계 부국의 명단에 그들의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리라.



강산이 변할 만큼의 기간 만에 방문한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낡아 보이는 공항도 그대로였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십 년 전과 다를 것이 거의 없어 보였다.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표정들 조차 십 년 전과 조금도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지난 십 년간 대한민국이 이루어 놓은 수많은 외형적 변화, 그리고 사회적 변화와 견주어 생각해볼 때, 정말 오래 정체된 사회의 전형을 보는 것 같이 느껴졌다.



십 년 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 한 적이 있었다. 내 등에 토마토 케첩을 몰래 뿌리고,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서 당황하는 나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지갑 등을 순식간에 훔쳐가는 수법이었다. 현지 지리를 잘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수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똑 같은 일을 당했다. 내 등에 이상한 색깔의 물질이 뿌려지고, 십 년 전의 아찔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변화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소매치기 수법 조차 변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이상한 물질에 옷이 더러워져서 속상했지만 아찔한 순간을 잘 모면했다는 안도감을 회복하고 다음 행선지로 길을 이어갔다.



한 사회가 변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 까. 오래 전 보다 더 건강한 사회로 변화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느낄 수 있을 까. 외형적으로 많이 변해 보이는 우리 사회가 정말 더 건강하게 변할 것일 까. 건강한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일 까. 십 년 전과 똑 같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소매치기 수법과 지난 몇 대를 거치며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 대한민국 대통령 일가의 부적절한 행동은 변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한국과 정 반대쪽에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십 년 후 한국은 과연 어떤 건강한 변화를 만들어 내었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위정자들의 부정 부패로 정체하거나 몰락한 국가들을 떠올려 본다.

– 5월 4일자 서울신문 글로벌 시대 코너에 실린 본인의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