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유럽의 부자 나라로 꼽히는 스위스나 스웨덴보다 국민소득이 높아 세계 4대 부국으로 군림했던 아르헨티나. 굳이 한 때 부자나라였던 것을 논하지 않더라도 아르헨티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참 많다. 죽은 후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부인이 된 Eva Peron, 탱고의 발상지 La Boca,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최고의 축구선수 Diego Maradona 와 남미 최고의 축구구단 Boca Juniors, 영화 미션의 촬영지였던 이과수 폭포, 그리고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Evita와 수많은 가수들로부터 리메이크 되어 불렸던 Don’t Cry for me, Argentina.

엄청난 자연 자원의 힘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라틴 아메리카의 미국으로 불렸던 아르헨티나는 그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13배에 이른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만한 소떼가 움직인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광활한 국토를 자랑한다. 소의 수가 인구수보다 많아서 그런지 소고기 요리가 유명한데, 아르헨티나의 카우보이를 일컫는 Gaucho가 직접요리해주는 Asado의 맛은 맛보지 못한 사람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굳이 비교해서 말하자면 우리의 숯불구이와 비슷하지만 양념을 전혀하지 않고 굵은 소금으로만 간을 맞춰 먹는 것이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미각을 만들어 낸다. 인공적인 맛을 거부하는 그들의 전통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말하자면 끝이 없을 거 같은 나라 아르헨티나로 출장을 떠나기 위해 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누군가가 묘사했듯이 남미의 파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유럽적인 분위기로 가득차 있고, 도시 이름이 우리 말로 ‘좋은 공기’ 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름답고 맑은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기 위해서는 장장 34시간이나 걸린다. 말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 서른 네 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출장지의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머리가 멍해져 침대에 푹 쓰러졌던 기억이 새롭다.

도착 다음날, 긴 비행의 여독으로 그저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한국과 12시간의 시차를 극복하려 무진 애를 썼지만 다음 상담 장소로 가기 위해 탄 택시 안에서 난 꾸벅꾸벅 졸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나 잠이 쏟아지는 지 택시 기사의 말에 짧지만 깊은 잠에서 겨우 깨어날 수 있었다. 비몽사몽인 내가 택시에서 내려 십 미터 남짓을 걸었을 때, 인디오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나에게 말했다.

“ 어이 친구, 당신의 어깨에 케첩이 묻었군요.”

난 당황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정말 내 옷 위에 토마토 케첩이 묻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당황하며 멀건히 서 있을 때, 그 인디오 청년이 다가와 말했다.

“ 걱정 말아요, 내가 닦아 줄 터이니.”

어느덧 내게 가까이 다가와 능숙한 솜씨로 나의 어깨를 닦는 청년. 난 그냥 멍하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약간의 소동 아닌 소동을 겪은 후에 내 양복 주머니에 있었던 지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안 것은 거래선과의 상담을 마친 후였다. 나는 부랴부랴 국제전화를 걸어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해야만 했지만, 해외 여행의 기본인 가진 돈을 분산해서 보관하라는 철칙이 몸에 익었던 나인지라 가진 돈을 모두 잃지는 않았다.

나중에 현지인들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이인조 소매치기가 많다는 것이었다. 낮은 빌딩 위에서 한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을 정확히 조준하여 케첩이나 겨자를 뿌려 묻히고 다른 한 사람은 접근하여 케첩을 닦는 척하다가 지갑을 빼간다고 했다.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마음 아프고 화가 나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능숙한 솜씨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빌딩 위에서 지나 가는 사람의 어깨나 등에 정확히 케첩을 뿌리는 것도 대단했으며 수건으로 케첩을 닦으면 돈을 빼가는 사람의 기술도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분업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둘의 팀웍을 다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경주했을 가를 생각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 보면 일을 나누어서 해야 할 경우가 많음을 발견한다. 서로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보충하고 보완하면 의외로 업무를 쉽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서로간의 아집과 오해, 그리고 편견 때문에 일을 나누지 않는 경우도 참 많다.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도 부서간의 이기주의 때문에, 개인 간의 독선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 또한 많이 보아 왔다.

소매치기도 실전에서는 분업으로 그들의 성공을 이루어 내는데 하물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인재들에게는 자신의 강점을 남에게 이해시키고 남의 강점을 잘 받아들여 업무를 효율적으로 해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누어 한다는 것, 말로는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부단히 연습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능력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난 이인조 소매치기에서조차 효율적 분업의 원리를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