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매스컴에서는 매스컴 이야기로 시끄럽다. 영향력 있는 TV프로 진행자들이 정치적 외압에 의해 도중하차를 했다는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방송국의 어떠한 해명도 프로그램을 중간에 그만두게 할 정도의 이유로서는 타당하지 않은 것이기에 정치논리가 작용했음을 더욱 의심하게 만든다. 아마 당사자들은 이번 조치에 무척 서운하고 화도 났으리라.
그러나 거두절미하고 악법도 법이고, 불합리한 명령도 명령이라면 명령이다. 정치적 관점이나 배경을 뒤로하고 공적인 측면에서 어쨌거나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도 조직을 움직이는 명령인 걸 어떡하랴

필자의 동생 또한 비슷한 일을 겪었다. 동생은 이름 있는 큰 병원의 간호사이다.경력도 제법 있어 간호사들의 언니노릇도 하고 있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만큼 영향력도 있다. 이를 병원측에서는 견제한 것인지 아니면 부담을 느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지방 관계병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출근거리가 도보로 10분에서 승용차로 1시간 40분 거리로 바뀐 것이다. 일 잘하던 병원 간호사실이 발칵 뒤집혔다. 앞의 억울한(?) 진행자들의 경우처럼 불만여론도 들끓었다. 그러나 모두의 항변에도 발령조치는 번복되지 않는다.
명령인 걸 어떡하랴

동생에게 위로 겸 한마디를 했다.“그래도 인생은 흘러간다. 새로운 명령지(命令紙)를 받게 될 때까지 참아보는 거다” 동생은 현재 중고차를 장만하여 장거리 출퇴근을 검토하고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께처럼 내 삶을 짓밟는 황당하고 냉혹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명령이라도 일단 차분하게 받아들여야 함이 현명하다. 분개하고 저항을 하면 후에 더 큰일을 도모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일 수록 현실에 순응하여 후일을 기약하도록 하자. 다시 때가 올때까지 조용히 칼을 갈든지.

세상은 언제나 특수한 상황론이 존재한다. 말도 안되는 변수가 말도 안되는 온갖 명령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것도 이런 명령시스템에 의해서 이다. 조직이 그 대표적 시스템이다. 때문에 명령에는 단순하게 대처해야 한다.
불합리한 명령이 파생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령(令)이 서야 모든 것이 바로 설 수가 있다. 가정은 가장의 령(令)이, 회사는 사장의 령(令)이, 나라는 통치자의 령(令)이 있는 것이다. 이런 체계가 무너지면 혼돈이 온다. 평가는 나중의 몫이다. 일단 따르고 보자.

지금의 명령이 영원히 나 자신을 무너뜨리고 인정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도 아니다. 현재상태의 한시적인 명령이니 잘 대응해서 건전하고 합리적인 명령으로 다시 컴백하면 된다.
행여 퇴직명령을 받았다고 인생이 끝난 건 아니지 않는가? 능력이 있다면 더욱 다행스러운 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무엇을 하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며 주변에서 나를 알아주고 걱정 해주고 후원 해주는 사람들이 불합리한 명령의 울분을 달래주고 새로운 도약을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물 흐르듯 명령(命令)에 순응해 보자.
이는 분명 소인이 아닌 대인의 길이다.

시간이 지나서 상황이 바뀌면 두 방송진행자와 내 동생은 분명 다시 멋진 모습으로 재입성 할 것이다.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