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의 중국 내 열풍은 실로 대단하다.
지난달 중국 내륙지방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장시간 버스로 이동한 탓에 삭신이 노곤했다. 피로를 풀 겸 발마사지 업소를 찾았다.
복무원의 야무진 손아귀 힘이 발바닥, 발가락, 발등으로 전해질 즈음,
스르르 눈꺼풀이 내려앉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별빛이 반짝이던 그 어느 날/
내 심장을 멈추게 했던 그 사람/
눈 부시게 아름다운 그대의 사랑이/
하얀 눈처럼 내려왔죠~』

‘별에서 온 그대’ 주제곡이다.
나란히 앉은 동료 복무원들이 흥얼거리기에 “드라마를 본 적 있느냐”고 물어봤다.
얼굴 가득 홍조를 띤 복무원이 서툰 한국 말로 답했다.

“여러번 봤어요. 남자 주인공은 김수현, 여자 주인공은 전지현인데…”

주인공 이름부터 드라마 내용까지 줄줄 꿰며 매우 신난 표정으로 설명하더니
급기야 “김수현과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손님이 부럽다”고까지 했다.
이처럼 중국 내륙 깊숙히 자리한 소도시에서도 ‘별그대’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왕서방'과 벽을 트긴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곳곳마다 ‘별에서 온 그대’의 남 주인공인 김수현의 얼굴이 나붙어 있다.
TV를 켜도, 지나가는 버스에도, 음식점 벽면에도 김수현이 보인다.
김수현은 광천수, 자동차, 화장품 등 다양한 브랜드의 중국 광고에 등장해
2억 5천만 위안의 광고료 수입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인의 한국드라마 사랑은 각별하다.
그 여파로 한국드라마의 회당 판매가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드라마 ‘상속자들’이 회당 3만 달러의 가격으로 판권을 수출했다.
이어 ‘별에서 온 그대’는 회당 3만 5천 달러, ‘쓰리데이즈’는 5만 달러,
‘닥터 이방인’은 8만 달러를 받으며 한국 드라마의 회당 판매가는
무섭게 고공행진 중이란 소식이다.



'왕서방'과 벽을 트긴 했는데...


이 뿐만이 아니다.
“눈오는 날에는 치킨인데~”라는 ‘별그대’의 여 주인공 대사 한마디가 중국인의
식습관마저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별그대’가 방영된 이후 중국 전역에서
‘치맥(치킨+맥주)’ 문화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상해에서는 치맥을 먹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는 한류로 인해 웃을 일이 많았다. 그리하여 자신감도 생겼다.
그렇다고 마냥 넋놓고 즐거워 할 수만은 없다.
이러한 지금의 ‘중국 현상’에, 보다 냉철한 안목이 필요하다.
한류에 들떠 웃고 즐기는 사이에도 글로벌 경제의 시계추는 멈추질 않는다.
지난달 10일, ‘거대 중국’과 ‘다이나믹 코리아‘가 만나 ‘한·중 FTA’를 체결했다.
정부와 여러 분야 전문가들은 경제에 순기능이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의류업계 기상은 대체로 ‘맑음보다 흐림’이란 예보다.



'왕서방'과 벽을 트긴 했는데...


“일단 중국의 중저가 의류제품들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올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걱정은 또 있다. 글로벌 SPA브랜드들인 H&M, ZARA, UNIQLO 등의 많은 소싱처가
중국에 있어 이들이 앞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더싸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패션 브랜드들로서도 관세장벽 철폐가 결코 호재만은 아니다.
온라인 직접구매 등 국내에서 바로 중국으로 수출하는 의류들이 늘어,
중국 현지에서 고비용으로 인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나마 중고가 브랜드들은 중국 진출에 유리할 것으로 전망되나 중국 상류층들이 일부 차별화된
브랜드 외에는 딱히 한국의 중고가 브랜드들을 선호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중국에서 패션의류사업을 하고 있는 한 한국인의 얘기다.

그는 “결국 한·중 FTA체결은 가뜩이나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봉제업체들에게
또한번의 아픔을 가져다 줄 것이 예상되어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중국을 자주 오가며, 중국어 몇마디 하면서, 중국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야흐로 세계의 中心國家로 부상한 中國,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알까?
십수년 중국을 드나들며 사업상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몇몇 지인들은
“중국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자주 가면 갈수록 모르는 게 많고 두려운 게 중국이다.
중국인은 좀처럼 속을 보여주질 않는다”고 했다.

중국 내륙 소도시에서 만난 발마사지 복무원의 ‘별그대’ 사랑을 보며, 지난 7월 서울을 찾은
중국 시진핑 주석과 평리위안 여사가 ‘별그대’를 화제 삼으며 미소짓는 모습을 보면서,
생뚱맞게도 뛰어난 상술의 ‘왕서방’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향후 한·중 FTA 환경에서 저들의 뿌리 깊은 상술을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괜시리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