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82013.11.08 드라마틱 대통령 VS 컨트리틱 수능생
드라마틱 대통령 VS 컨트리틱 수능생
위트 있는 매너로 영국인의 감성을 사로잡다 벨기에로 향하기 전 영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마지막 일정은 600년 역사의 길드홀이었습니다. ‘런던시티’ 만찬 참석을 위해 들어온 대통령은 짙은 남색 한복 차림이었는데요. 아뿔싸! 차에서 내리던 중에 그만 치마를 밟고 말았네요. TV화면을 통해 그 장면을 보던 필자도 무척 당황스러웠는데 박 대통령은 오히려 위트 있는 매너를 발휘했더군요. 로저 기포드 런던시티 시장이 깜짝 놀라 다가오자 환한 미소와 함께 “드라마틱 엔트리”, 드라마틱한 입장이라고 말하고, 만찬을 마치고 퇴장할 때는 이번에는 조용히 나가겠다는 뜻으로 “콰이어트 엑시트”라고 하며 센스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겁니다. 세계의 장벽이 낮아지고 지구촌 시대가 되면서 상황에 맞는 센스 있는 매너는 자신의 인격은 물론 국격까지도 높여주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는 거지요 전통적인 매너와 에티켓의 매력에 다시 흠뻑 빠진 영국 수십 년 전만 해도 영국에서는 대입시험을 마친 10대 소녀들이, 대학 진학 전후나 방학 동안 상류사회의 에티켓, 교양이나 매너 등, 다양한 문화적 적응 능력 등을 가르치는 일종의 예비학교인 피니싱(Finishing School) 스쿨에서 상류사회의 예절을 실습하고 교양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 1960∼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과 대학 교육의 확대, 그리고 상류사회의 몰락으로 인해 피니싱 스쿨은 점차 사라져 가는 듯 하다가 최근에 영국 등 유럽에서는 ‘피니싱 스쿨(Finishing School)’의 인기가 다시 상한가로 치솟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대세처럼 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전통적인 매너와 에티켓, 사회성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될 뿐 만 아니라 젊은 여성들에게 품격 높은 소양교육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서 많은 영국 부모들도 이 같은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존재감은 남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인정하는 것 어제 드디어 수능시험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수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이후를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많은 학생들은 수능을 끝낸 해방감에 자칫 귀한 시간을 허비할 수 있는데 수능은 종점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하기 위한 간이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계적인 시간 관리를 통해 자신을 계발하기 딱 좋은 시기이기도 한데요.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세련되지 못한 즉, 컨트리틱(?)한 외모를 성형으로 확 바꾸겠다는 수능생도 있던데요. 외면보다는 세련된 매너를 통해 자신의 내면 즉 존재감을 스스로 찾음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간혹 신세대들 사이에서 존재감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남을 못살게 구는 장면을 동영상에 담아 페이스 북에 올리는 등 그릇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고자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진정한 존재감은 얄팍한 기술이나 방법으로 구걸하듯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주변에서도 자신을 인정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타인의 계급과 자신의 계급을 분리하기 위해 생긴 매너 물론 매너와 에티켓이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시작했다는 시각도 있기는 합니다. 유럽의 궁정사회에서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타인의 계급과 자신의 계급을 분리하기 위해 정교화된 것이 바로 매너와 에티켓이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요. 중세 궁정기사들이 자신들을 차별화하는 특징으로 삼았던 규율과 금기가 ‘쿠르투아지’(궁정예절)였고 17세기가 되면 ‘시빌리테’(예절)라는 신개념이 급부상하는데요. 쿠르투아지가 특정 계층의 행동양식이었다면 시빌리테는 인간의 보편적 규칙으로 확장되면서 상류층은 자신들의 세련된 에티켓을 시민들의 ‘상스러움’과 구별 짓기를 원했던 경향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예절이란, 도덕적으로 또 지적으로 빈약한 서로의 성질을 서로 모르는 척하면서 비난하지 말자고 약속하는 암묵적 협정”이라고 비난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사치스러운 존재감 VS 상대를 배려해 주는 존재감 다행스러운 것은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서 수세기를 흘러 변천된 매너와 에티켓은 ‘사치스러운 존재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해 주는 존재감’을 위한 기능이 훨씬 강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테이블매너만 보더라도 가장 세련된 매너는 상대의 식욕을 높이는 자연스러운 태도입니다. 제 아무리 젠틀맨 같은 똑부러지는 매너를 발휘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부담스럽게 느낀다면 그것은 사치의 매너이지 배려의 매너라 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디저트 스푼으로 스프를 먹었을 때 ‘그 스푼은 디저트용이니 스프용 스푼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하는 상대와는 두 번 다시 함께 식사를 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오히려 아무 일 없듯이 유쾌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매너가 상대의 존재감을 빛나게 해줍니다.차에서 내리다 넘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만, 혹여 넘어지더라도 ‘드라마틱 엔트리’라고 위트있는 매너를 통해 오히려 상대의 감성에 신선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살아 있는 매너!컨트리틱 수능생들이 이 금쪽같은 자유 시간에 키웠으면 하는 매너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상황에 맞는 매너로 상대에게 여러분의 ‘존재감’의 결을 윤기 있게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컨트리틱은 countrified 즉 ‘세련되지 못한 ‘ 이라는 의미를 필자가 임의로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으로 표준어가 아닙니다.   박영실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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